[사우문예]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2017 쇠부리토크 사우문예 공모전> 10월의 당선작을 소개합니다.
10월의 두 번째 당선작은 나재홍 사우의 수필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맥락으로 작성된 한 편의 수필을 통해 더욱 성숙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보시길 바랍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얼마 전 잠실 놀이공원에 놀이기구가 멈췄다는 뉴스를 라디오로 듣게 되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잠시, 오래전 우연찮게 시작된 흥미와 열정의 계기가 그 놀이공원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회상해본다.
송파구 놀이공원 근처 석촌호수 모퉁이에는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그 비석에 관한 검색을 하다 찾아낸 문장이 연유가 되어 석촌호수 맞은편 큰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았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삼전도청태종공덕비’
일명 삼전도비는 소외된 위치만큼 우리 역사의 수치의 표본으로 놀이공원 변방터로 밀려나 우두커니 서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갇혀 결국 청에게 항복을 하고 삼배구고두례(三
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한 인조와 그 결과로 청 태종의 공덕을 기리는 비는 그렇게 세워진 것이다.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문헌을 찾고 역사소설을 읽고 흥미를 느끼게 된 사연이 저 비석에서 기인한 듯 하다. 역사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은 하나의 책을 묵독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서적을 읽고 사전적 지식을 습득한 후 어렵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선조 대에 이르러 훈구의 소멸과 붕당의 시작, 임란을 거쳐 군주가 된 광해는 북인에만 의존한 채, 대명 대청 중립외교의 정치적 사안이 맞물리면서 서인 세력의 반정의 빌미가 되고,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전쟁을 막지 못한 무능한 군주로 후대의 평가를 받게 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소설 남한산성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말(言)로 표현한 문장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47일 동안 성안에 갇혀있는 내면적 심리의 절정을 표현하는데 작가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싸우자고 하고 내일은 화친하자고 하는, 성(城)밖의 적을 두고 성(城)안에서 서로 싸우는, 말향으로 돌아간 것이 비록 지조가 높으나, 또한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열어놓은 남한산성의 문으로 나왔다.」
대립의 구도가 어쩔 수 없는 화합의 구도로 변화한 상황을 격조 있게 표현한 문장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지는 것을 ‘자득’이라고 한다. 역사 속의 개별적 삶은 현실에 투영되어 개별적 자아의 삶에 녹아 자득의 긴 성숙을 낳아낸다. 수치의 역사는 체념이나 관념의 과거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희망으로 미래에도 꾸준히 되살아나 성숙으로 영글어진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 자득이 어쩌면 삶의 교훈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만 소현세자가 임금이 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이 가장 아쉬운 역사적 사실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꼽는다. 소현세자의 집권이 이어졌다면 과연 후기 조선의 역사는 어떠하였을까. 이 부질없는 자문은 허망한 물음에 그치지 않고 현명한 자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개별적인 노력의 몫일 것이다.
놀이공원터로 쫓겨난 비석에서 시작한 이 작은 스토리는 과거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절박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삼전도의 겨울을 상상하게 하는 지금, 경술국치일이 여름에 있는 것은 계절적 교차감으로 대비되는 역사의 부조화일까?
올해 여름이 그렇게 지금 지나가고 있다.

글_나재홍(당진제철소 가스기술팀)


심사평  동화작가 이은용

최근에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되면서 김훈의 원작 소설과 그 배경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나재홍 님의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역시 역사와 소설 사이에서 지나간 시간을 담담히 환기하고 있는 글입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이나 ‘만약’이라는 가정을 뒤로하더라도 남한산성에서의 47일은 뼈아픈 역사의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는 과거인 동시에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나재홍 님의 글은 그런 각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므로 10월의 두 번째 당선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동화작가 이은용은 200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동화 『열세 번째 아이』, 『어느 날 그 애가』와 청소년소설 『내일은 바게트』,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  심사위원: 양승모(시인), 이은용(동화작가), 조현(소설가), 최경실(시인)


7월부터 시작된 사우문예 접수 기간은 오는 11월 5일까지이며, 선정된 작품들은 12월까지 <쇠부리토크>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이메일 접수: talk@hyundai-ste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