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문예] 두벌 능금

<2018 쇠부리토크 사우문예 공모전> 당선작을 소개합니다

쇠부리토크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우문예를 공모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심사점수 동률로 2명의 ‘올해의 작가’가 탄생했습니다. 당선자는 <두벌 능금>을 쓴 김용수(포항공장 봉강압연부) 사우와 <안전시그널>을 쓴 이건호(인천공장 생산기술팀) 사우입니다.
작품들은 12월에 발행되는 쇠부리토크를 통해 차례로 소개됩니다. 당선자 외에도 사우문예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벌 능금
글_김용수

해마다 겨울이 오면 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는 추억 한 페이지가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갈피처럼 다가온다.

내 고향 흥해는 과수원이 많았다. 작년 이맘때 큰 지진으로 건물이 내려앉은 D아파트를 비롯해 부근의 아파트 단지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과수원이었다. 학교 가는 길도 쭉 과수원 사이로 걷는 길이었는데 양쪽 빽빽이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길은 수레 한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고 긴 탱지나무 터널이었다. 인적도 드물어서 여자 아이들은 혼자서는 무서워서 잘 다니지 못해 둘 셋이 같이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개구쟁이였던 우리에게는 능금서리를 하기에 천혜의 조건이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의 등하굣길 책가방은 그야말로 능금 망태였다. 가방 가득 능금을 넣어 학교에 가면 과수원이 없는 읍내 애들에게는 단연 인기짱이었다. 더욱이 유달리 달고 빨갰던 홍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데다 아이들 고사리 손으로 쪼개도 쩍 갈라져 인기였다.
우리는 능금 서리 중 가장 흔한 방식을 선택했다. 끝에 못을 박은 탱자나무 작대기를 울타리 틈새로 집어넣어 지천으로 깔린 능금을 콕 찍어낸다. 이 방식은 위험하지는 않지만 못 자국 찍힌 하품능금을 건진다. 그래서 간 큰 놈들은 울타리에 개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서 대형사고를 치기도 한다. 능금서리계의 지존 스무 살 정도의 큰 형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의 서리를 했다. 굵고 긴 PVC파이프를 갖고 와서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능금을 톡 건드린다. 그러면 씨알 좋은 능금이 파이프 속을 타고 뚝 떨어져 못 자국이 없는 최상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

친구 영수 아버지가 생각난다. 굵고 호탕한 목소리로 “야들아 능금은 껍질에 양분이 많은기라. 깎을 거 뭐 있노” 하시고는 저고리 섶에 쓱쓱 닦아 TV광고에 나오는 배우처럼 큰 입으로 능금 즙이 튀도록 베어 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영수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영수마저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과수원 안에는 능금나무가 꽉 들어차 있지만 복숭아 살구 자두 따위의 다른 과일도 많았다. 또 딸기며 수박 참외 같은 과일도 있었으니 먹을 것이 귀했던 그 당시 우리에게 과수원은 그야말로 천혜의 보물창고였다. 하지만 그 보물창고도 눈 내리는 겨울에는 겨우 숨바꼭질이나 하는 곳이었다. 겨울은 그 어떤 과일도 나지 않는 혹한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음지치기 불놀이 따위의 신명나는 겨울 놀이가 많았지만 먹을거리가 궁한 우리에게 겨울은 그야말로 시련기였다. 그런데 그 혹한의 겨울 과수원에 보물이 발견될 때가 있다. 바로 두벌능금이다. 수확을 끝낸 능금나무에 겨울철에 작은 열매가 다시 열리는데 아마 두 번 열린다는 의미에서 두벌능금이라 불렀으리라. 두벌능금은 주로 국광나무에서 열리는데 먹을거리가 귀한 겨울철에는 꽤 매력있는 간식거리였다. 가을능금에 비하면 맛도 떨어지고 씨알도 작았지만 눈 헤치고 나온 두벌능금은 아삭한 맛이 있었다. 한 살 어린 동익이 녀석은 두벌능금을 잘 따먹어서 별명이 두벌능금이었다.

지구 온난화와 개발붐 때문에 능금나무가 서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서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서있던 그 곳에 콘크리트 담벼락이 대신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됐다. 이제는 두벌능금을 볼 수도 없고 과수원도 청송 등지의 북쪽 산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요즘 아이들에게 두벌능금을 줘도 손사래를 치겠지만 먹을거리가 귀하던 그시절에는 눈 내리는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달콤한 보너스였다. 찬바람이 불 때면 두벌능금이 떠올라 그 때의 추억을 타임머신처럼 불러내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소감

김용수 사우 포항공장 봉강압연부

“좋은 결과가 나와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어느 정도 기대는 했었지만 최우수상을 수상하리라곤 예상 못했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특별한 취미 없이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SNS에 글을 쓰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매우 뿌듯하고 자신감마저 생깁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또 도전해보고 싶어요.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심사평

추억의 갈피 속에 접혀 있는 능금 서리를 감칠맛 있게 표현한 문장력과 능금 서리 요령에 대한 서술이 흡인력을 발휘한다. 특히 가을 능금에 비하면 맛이 떨어지지만 두 번 열린다는 의미의 두벌능금을 겨울 과수원에서 따는 대목은 추억의 아늑한 정서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으며 글을 읽는 동안 사과를 한입 베어 문 듯 한 생생함이 인상적이다.
오래 전 사라진 풍경의 아름다움과 유년의 순수함이 서려있는 김용수 님의 두벌능금을 기꺼이 최우수작으로 선정한다.

심사위원
박형준 교수(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최경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