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아그라의 타지마할

인도 북부의 아그라(Agra)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중심 도시이다. 야무나 강 연안의 평야지대라는 이점 덕에 농업과 각종 제조업, 교통이 두루 발달한 아그라는 16~17세기 무렵 북인도를 점령했던 이슬람 왕조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인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져 있는 타지마할(Taj Mahal)은 그 당시 지어진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연못에 비쳐 좌우 대칭 뿐만 아니라 상하 대칭을 이루며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타지마할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 황제의 로맨스
1628년, 아그라에서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제위에 올랐다. 그는 ‘세계의 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동쪽의 아삼, 서쪽의 칸다하르, 남쪽의 데칸 고원, 북쪽의 파미르 고원까지 무굴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한 군주였다. 칭기즈칸의 후예로서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선대에 반해 샤 자한은 문화와 예술에 심취했고, 종교적으로도 관용을 베풀어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꾀했다. 그런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있었다.
샤 자한은 ‘궁전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내릴 만큼 뭄타즈 마할을 아꼈고, 그녀 역시 임신 중에도 전장까지 따라 나설 정도로 내조에 충실했다. 그러나 뭄타즈 마할은 서른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깊은 충격과 실의에 빠진 샤 자한은 사랑하는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22년 후 완성된 건축물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의 완성
샤 자한은 인도, 페르시아, 유럽 등지의 수많은 건축가와 장인들을 아그라로 불러 들였다. 동원된 노동자들만 2만 명 가량이었고, 각종 석재와황금, 보석 등의 진귀한 건축자재들을 천 마리의 코끼리들이 실어 날랐다. 타지마할 건설에 국가 예산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건축 비용이들었는데,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약 528억 루피(한화로 8천억 원이훌쩍 넘는 금액)로 추정된다. 그러니재정적으로 큰 타격이 왔음은 당연지사였고, 곳곳에서 원성이 쏟아졌다.
1648년, 드디어 타지마할이 완공되었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나랏일을 팽개치고 타지마할 축조에만 매달렸던샤 자한은 이미 민심을 모두 잃은 터였다.
십 년 후,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의 손에 폐위당해 아그라 요새 탑에 갇힌그는 창밖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후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가 잠들어있는 타지마할에 함께 묻힘으로써 황제의 순애보는 막을 내리게 된다.


샤 자한이 폐위당한 후 유폐된 아그라 요새

세기의 사랑이 낳은 세기의 건축물
인도의 이슬람 왕조라는 무굴제국의 특성 상, 타지마할은 힌두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섞인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붉은 빛을 띠는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코란에서의 천국을 상징하는 연못과 나무, 정원이 펼쳐지고 그 끝에 흰색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건축된 타지마할이 보인다.
대형 돔을 둘러싼 네 개의 돔을 네 개의 미너렛(원형첨탑)이 호위하고 있는 형상이다. 정원과 건물 모두가 완벽한 대칭을 형성해 정갈한 통일감과 균형미가 느껴지며,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빛깔로 변하는 모습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신비함을 자아낸다.
샤 자한은 아내를 잃은 상심에 젖어 백성을 등한시한 암군으로 기록되겠지만, 그 때문에 걸출한 유산인 타지마할을 남겼다. 인도를 대표하는 시인 타고르는 그의 시 ‘타지마할’에서 샤 자한을 향해 이렇게 읊조린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했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화환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죽음을 전혀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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