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의 유약함, 우유부단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고 일에 대한 성취 동기가 높으며 타인이 느낄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할 줄 아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동력이 된다. 이번 호에선 작가 루이스 캐럴과 대중가수이자 음유시인인 밥 딜런과 함께 당진제철소 보건관리팀의 오현숙 사우가 감성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감성은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
오현숙 사우 ▶ 안녕하세요. 저는 당진공장 보건관리팀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오현숙이라고 합니다. 이번 호 주제는 감성인데요, 저로서는 아픈 환자의 어려움을 항상 지켜보고 있어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사실 간호사란 직업은 환자의 질환 증상보다 아픔 그 자체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치료가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점에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해 환자와 정서적 관계를 맺는 감성적 코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화와 대중음악 분야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분께서는 감성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루이스 캐럴 ▶ 타인과 소통할 때 감성적 코드가 중요하다는 사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 앓았던 볼거리로 인해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또 지독한 말더듬이에 안면인식장애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소통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그런 점 때문에 성인이 되어 수학자로 자리 잡은 후에도 상대방의 입장을 깊게 고려하게 되었고 결국 어린이의 입장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건 상대방과 공감을 중요시하는 감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뮤지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밥 딜런께서는 감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밥 딜런 ▶ 저 역시 대중음악을 했던 입장에서 감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활동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가요야말로 청중과 정서적인 교류가 절대적이니까요. 감성에 기반한 교류와 관련해 젊은 시절의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끈 *우디 거스리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게 생각나네요. 전 쇠약해진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그분께 그가 쓴 노래를 부르며 위로했지요. 간호사님도 잘 알고 계시듯 그분께는 자신의 병보다 외로움이 더 큰 고통이었을 거예요. 음악을 통한 감성의 교류는 그분께 큰 위안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1912 ~1967)
밥 딜런에게 큰 영향을 준 미국의 포크송싱어송라이터.
대공황에 고통받는 노동자의 감정을 노래함

“정서적 관계는 감성적 코드가중요합니다”

오현숙 사우(1966~)
2009년 당진제철소 보건관리팀에 입사해 부속의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인 오현숙 사우는 약품조제 및 응급처치, 건강상담 등을 통해 현장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오현숙 사우는 환자의 입장에서 아픔을 공감하고 치료하는 전인적인 간호를 지향하며, 평소 색소폰동호회 활동으로 감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덧붙여 감성역량이 간호사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감성이 일을
행복하게 만든다
오현숙 사우 ▶ 감성이 마음까지 위로한다는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 역시 아버님의 건강 악화를 계기로 갑작스럽게 진로를 변경해 간호학을 공부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인적인 간호를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극적으로 회복하여 가족 분들과 함께 일부러 인사를 와 주셨을 때는 커다란 보람을 느낍니다. 그 후로 간호는 제 업무임과 동시에 저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두 분께서도 감성이 본인의 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루이스 캐럴 ▶ 사실 저는 작가가 되기 이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연구하며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 제가 동화작가가 된 것은 즉흥적으로 해준 이야기를 아이들이 정말로 재미있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어쩌다 출판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던 거죠. 그 당시 동화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주로 담고 있었던 반면, 저는 호기심에 불타는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의 환상적인 모험을 얘기해줬죠. 그 후 “당신은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당신 말고도 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동화는 오직 당신만이 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정말로 요정들과 알고 있어서 요정들이 당신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준다고도 말해요”라는 편지를 받기도 했어요. 이런 찬사는 모두 제가 동화를 일이자 행복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밥 딜런▶ 저는 어려서부터 그저 노래하는 게 좋았습니다. 물론 독서도 좋아했죠.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합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책에서 배운 표현을 노래 속에 집어넣는 놀이를 한 거죠. 이렇게 가사를 직접 쓰고 노래를 부르며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불리웠으니 저는 행복한 인생을 산 셈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요. 처음 포크송 ‘Blowin’ in the Wind’로 성공한 뒤 하루 종일 이 노래만 수십 번씩 부르는 날들이 계속 됐습니다. 전 그게 너무 지겨웠죠. 제가 노래하는 기계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래서 록 음악을 도입해 첫 공연을 했는데 포크송을 기대했던 관중들의 거친 야유를 받았습니다. 미처 세 곡도 부르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지요. 하지만 결국 전 제 예술적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생각하면 감성이 시키는 대로 추진한 일이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감성을 가지고 좋아서 한 일은 반드시 행복과 성취감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감성을 갖고 좋아서 한 일은 행복과 성취감을가져옵니다”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 1832~18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 동화 작가. 유머와 환상이 가득 찬 작품으로 근대 아동문학의 확립자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그는 옥스퍼드에서 수학, 신학, 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수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성직자의 자격을 얻었음에도 내성적인 성격과 말더듬이 때문에 평생 설교단에 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소설이나 시는 현대의 초현실주의 문학과 부조리문학의 선구자, 넌센스 문학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빅토리아 왕조의 대표적인 기인(奇人)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감성은 기를 수 있 다
오현숙 사우 ▶ 저는 감성 역량을 키우기 위해 독서와 함께 클래식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 회사 색소폰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요.
색소폰 연주를 통한 재능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감성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두 분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루이스 캐럴 ▶ 감성은 공감의 노력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훈계나 늘어놓는 동화를 좋아하겠어요? 제가 살았던 시대의 동화작가들과 제가 달랐던 건 제가 어린이의 마음을가졌다는 점이겠지요.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펴낼 때 작은 인쇄 결함 때문에 판매할 수 없는 책들을 버리는 대신어린이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지요. 제 책이다만 몇 시간이라도 어린 환자들의 고통을잊게 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제가 죽은 후에 어린이들이 돈을 모금하여 런던의 아동 병원에 저를 기념하기위해 ‘루이스 캐럴의 집’이란 이름을 붙인침대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밥 딜런 ▶ 흔히 감성은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면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새로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감성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들이 포크송에 만족하고 있을 때 포크송과 록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도 감성인 것입니다. 제가 죽은 후에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제 모든 곡을 아이튠즈에 직접 올리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시인이자, 뮤지션 그리고 개인적으론 저의 영웅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영광스럽게도 저의 감성이 가진 적극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우님께서 자신의 질환을 비관하는 환자의 우울에도 공감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공감을 환자와 함께 하기도 하겠죠. 그게 감성의 능동적인 면입니다. 이는 회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같이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모두 능동적 감성이 가진 힘일 테니까요.

“상대방과의 공감은 감성의 힘입니다”

밥 딜런
(Bob Dylan, 1941~)
미국의 대중음악 가수이자 작사가·작곡가. 고교시절부터 로큰롤을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나가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운동에 뛰어들었다. 1962년 ‘바람에 실려서(Blowin’ in the Wind)’를 발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이 노래는 딜런 자신의 본의와는 달리 공민권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는데, 딜런은 이렇게 되는 것을 싫어한 듯 1965년부터는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한 ‘미스터 탬버린 맨(Mr.Tambourine Man)’ 등으로 음악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노래의 전통에서 시적인 표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로로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