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鐵 – 鐵이 만든 한국사 명장면 #2

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고려, 금속공예의 꽃을 피우다
고려는 금속공예 기술의 최전성기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수많은 철불좌상은 반짝반짝 빛났던 당시 공예 문화의 수준을 말없이 보여준다. 귀족 문화의 발달로 유난히 화려한 것을 선호했던 시대, 고려인은 철을 비롯해 각종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그때는 ‘장야서’라는 관청에서 철공과 야금에 관한 일을 담당해 각종 생활 도구와 화폐, 무기, 금속 공예품을 이곳에서 만들었다. 철로 만든 화폐인 건원중보를 비롯, 철로 만든 날개를 단 화살인 철령전, 화포에 넣어 쏘는 탄알인 철탄자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철이나 동으로 만든 금속에 선과 홈을 파서 그 안에 금이나 은을 채워 넣는 입사(入絲)기술은 화려했던 고려 귀족 문화의 꽃으로 불리는데, 이를 만드는 입사장 역시 장야서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고려 불교문화의 정수, 철불과 <직지>는 철을 다루는 고려인의 솜씨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철불은 통일신라시대 말에 처음 제작되기 시작해 고려 초까지 활발하게 제작된 불상이다. 철은 표면이 거친데다 녹는점이 동보다 높고 온도가 내려가면 금세 굳어버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철로 불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섬세하고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다고 한다. 보물 제512호인 단호사 철불좌상, 보물 1527호 충주 백운암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해 지장사철불좌상, 보원사철불좌상 등이 대표적인 철불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은 고려를 넘어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백운화상이란 스님이 쓴 불교 서적을 그 제자들이 널리 알리기 위해 금속활자본을 만들었다. 이 금속활자의 재료는 철과 구리. 구리는 주조의 편리성이 있지만 내구성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점차 철제 활자가 널리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아직도 <직지>의 정확한 주조방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논란이 분분하니 철을 다루는 고려인의 기술은 아직도 베일에 쌓인 채 그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로부터 내려온 발달된 금속문화를 바탕으로 화려한 귀족문화와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의 찬란했던 공예문화의 중심엔 철이 있었다.

 

#철갑을 두른 거북선, 조선을 구하다
“조선에서 패한 것은 지리에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 배는 고래의 배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쉽게 대적하기 힘들었다” “적선은 전부 철로 꾸려져 있어 우리 화포로는 깨뜨릴 수 없었다”

임진왜란에서 철저하게 패한 왜의 수군은 본국으로 돌아가 위와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잘 기록하지 않던 분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삽화와 기록을 통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심지어 거북선을 ‘괴물 배’로 부르면서 이를 가토 기요마사라는 장수가 퇴치한다는, 현실과는 정반대의 연극이 에도 막부 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해전사에서 거북선만큼 독특한 외모와 압도적 기량으로 전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배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왜군들은 거북선의 기괴한 외모에 기겁을 했다. 괴물인지 배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바다 위에서 달려오는데 병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노는 저절로 움직이고, 몸통에서는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왜적들은 배와 배를 가까이 붙인 뒤 상대편 갑판에 올라가 칼싸움을 하는 방식의 해전에 능했다. 그런데 거북선은 그런 식의 싸움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철로 단단히 두른 갑판에 오르면 빼곡히 꽂혀 있는 창과 못에 찔려 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거북선의 특징 중 핵심은 바로 둥근 모양의 철로 만든 상판이다. 그런데 이 상판을 비롯해 거북선의 몸통 전체가 철로 된 철갑선인지 상판에 철판만 붙인 장갑선인지, 그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분분하다. 정조 때만해도 40척, 순조 때도 18척이나 있었다는 거북선은 알 수 없는 어느 시기 연기처럼 사라져 정확한 모양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란 당시 왜군은 철갑선이라 증언했지만 학자들은 일본이 패배를 변명하기 위해 거북선의 외양을 과장했을 것이라고 본다. 목재 갑판 위에 창과 송곳을 깔고 겉옷 격으로 얇은 철판을 깔았다는 것이 우리 학계의 정설.

어떤 설이 진실이든 거북선의 위력이 표면을 덮은 ‘철’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두려움과 놀라움의 존재이자 논란의 중심인 거북선. 그 핵심에 철이 있다.

「쇠부리토크」 편집팀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식

참고 도서
「재미있는 우리나라 철 이야기」 한국철강협회 철강홍보위원회 홍대한 지음
「철과 함께하는 시간 여행」 한국철강협회 철강홍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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