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위한 비움의 시간, 휴식

에너지를 다시 채워 넣을 시간이 필요할 때 우리는 휴식 시간을 갖는다.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평소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보다 큰 틀과 넓은 관점에서의 생각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휴식을 통해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포항공장 ROLL생산부에 근무하는 김태이 사우가 조선시대의 천재 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동화 작가 타샤 튜더를 만나 휴식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가족이 있는 곳이 쉼터입니다”

김태이 사우(1981~ )
김태이 사우는 2남 2녀를 둔 다동이 아빠다.
일곱 살 된 큰아들부터 두 살 막내아들까지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잠시도 쉴 틈은 없지만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몸은 바빠도 정신적인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가족은 그에게 있어 그 자체로 쉼터이고, 모든 것을 보상해주는 에너지 원천이다. 김태이 사우는 휴식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알차고 풍요롭게 만드는 충전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의미가 커진다고 말한다.

휴식,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기
김태이 사우 ▶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공장 ROLL생산부에서 근무하는 다동이 아빠 김태이입니다. 저는 평소 네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지내는 일상이 가장 행복하며 그것이 휴식이나 다름없습니다. 가끔 아내와 아이들 재워놓고 맥 주 한 잔 하며 대화하는 시간 또한 꿀맛 같은 휴식이지요. 저에게 휴식은 거창하게 멀리, 오랫동안 여행하며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쉬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휴식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타샤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타샤 튜더 님과 해학 넘치는 풍속화로 우리에게 친근한 단원 김홍도님을 모셨습니다. 두 분 명사님은 휴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타샤 튜더 ▶ 저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낙천적인 성격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전 처음 동화작가로 벌어들인 인세로 뉴햄프셔 주의 시골에 있는 농가주택을 구입했어요. 무려 17세기에 지어진 농가였지요. 물론 제가 인세로 벌어들인 돈을 대도시의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사실 어떤 사람은 왜 하필이면 시골의 농가주택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저는 보랏빛 라벤더와 레몬빛 수선화가 피어있는 정원을 맨발로 걷고, 푸성귀와 감자를 기르는 생활을 좋아합니다. 염소젖을 짜서 내가 먹을 치즈나 빵을 직접 만드는 일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기, 그것이진정한 휴식이 아닐까요?

김홍도 ▶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신분이 낮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다행히 강세황 스승님을 덕분에 그림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겨우 스무 살에 도화서 화원이 되어 영조 임금의 잔치 그림을 홀로 그렸고 스물아홉살에 임금의 어진과 나중에 정조가 되는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으니 그림에서만큼은 인정받은 셈이죠.
그러나 오늘날 제가 여러분께 인정을 받은 것은 다소 딱딱한 문인화보다는 해학 넘치는 풍속화 때문이겠죠. 사실 제가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하더라도 도화서 화원이 풍속화를 그리면 점잖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때였어요. 하지만 전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에 흥미를 가졌고 그들의 유머와 여유로움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몰두했다는 점은 타샤 튜더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인생의 여유를 즐겼다고 생각합니다.

“편견에서 벗어날 때 마음의 휴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
미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동화작가이자 삽화가로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힐링을 상징하는 정원사이자 요리사로 더 유명한 그녀는 책『타샤의 정원』으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또한 시간을 담은 따뜻한 요리법인 『타샤의 식탁』을 통해 진정한 힐링과 휴식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일생 동안 100여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으며 원본 그림책들은 소장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어 미술관, 도서관, 전세계의 많은 개인 수집가들이 소장하고 있다.

비울 때 진정한 휴식이 온다
김태이 사우 ▶ 휴식과 여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두 분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하거나 미술관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지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가족이 없는 휴식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타샤 튜더 ▶ 맞습니다. 가족은 정말 중요해요. 말씀드린 대로 전 뉴햄프셔 주의 농가에서 네 아이를 키웠는데 처음에는 수도도 전기도 없는 곳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이가 네 명이고 아들 둘에 딸 둘인 것이 김태이 사우님과 똑같네요.
전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접 정원을 가꾸고 수확한 농산물로 요리를 했지요. 아이들이 성적표를 잘 받아와도 저는 머리를 쓰다듬겠지만 연잎꿩이다리와 수염패랭이꽃을 구분할 줄 알 때 더 기뻤답니다. 한번은 집 앞 돌담에 사는 뱀이 다쳤을 때 우리 가족은 이 녀석을 데려와서 길이가 한 자나 될 때까지 키웠지요. 여러분은 뱀의 얼굴을 찬찬히 본 적이 있으신가요? 얼마나 낙천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답니다. 늘 배시시 웃고 있지요. 우리가 인생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들에서 벗어날 때 인생은 더 고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김홍도 ▶ 저에게는 강세황 스승님이 가족 같은 분이셨죠. 언젠가 스승님은 저에게 “너는 인생에서 항상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했구나. 저잣거리, 나루터, 가게, 시험장, 연회장 등을 그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구나”라고 격려해 주셨지요.
이 같은 격려야말로 진정한 힐링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까도 말했다시피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이 백성들의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는 것은 꽤 모험이었어요.하지만 그들을 그리면서 저는 삶의 여유를 만끽했어요.이렇게 꾸김없는 사람들이 마치 제게는 가족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응원과 격려도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
그림과 아무 연관 없는 집에서 태어난 중인 소년이 당대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탁월한 재능 덕이기도 했지만 강세황이라 훌륭한 스승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홍도는 ‘젖니를 갈 때부터’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그의 그림에는 옛 사람들의 삶, 서민들의 노동과 놀이, 자연 등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구도와 선의 강약, 시선의 방향 등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서정적인 김홍도의 그림은 그 자체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같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조건 없이 좋아하자
김태이 사우 ▶ 최근에 저는 “아이들을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걸어온 길이다. 어른 너무 무시하지 마라. 앞으로 내가 갈 길이다”라는 인상적이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회사생활에도 “후배들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내가 걸어온 길이다. 선배들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 앞으로 내가 갈 길이다”라고 적용해 볼 수 있겠지요. 앞으로 기능장을 꿈꾸는 저로서 항상 새겨보는 말이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일과 휴식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타샤 튜더 ▶ 사실 저는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일터가 바로 집안에 있었거든요. 전용 화실은 없었지만 부엌의 창 옆에 앉아서 무릎에 화판을 놓고 그림을 그렸지요. 물감, 붓, 펜 등이 항상 손 닿는 곳에 있었어요.제 삽화를 본 사람들은 제 그림에 창의력이 풍부하다고칭찬했지만 사실 전 수선화 구근을 사거나 헛간의 선반을 고칠 돈을 벌기 위해 그렸답니다.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했던 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말을 탈 때 어느 쪽으로 올라타야 하는지, 건초더미는 어떻게 만드는지 훤히 알고 있어요. 적당히 어림짐작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정원에 놀러 온 사람들은 말하지요. “어머나, 삽화에 나오는 꽃이 바로 여기에 있네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일과휴식이 한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좋지요. 그런데 그게 안 된다면 일터를 가정으로, 동료를 가족으로 여기는 것도 좋아요. 제 작품 속에 나오는사람은 모두 저의 아이들과 손자들, 손자들의 친구들이죠. 어쩌면 이건 일과 휴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연결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홍도 ▶ 저 역시 대부분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일과 휴식이 일치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화가들은 방안에 앉아 상상으로 인물이나 풍경을 그리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나 전 바깥으로 나가 공부하는 선비, 시장에 가는 장사꾼, 나그네, 규방, 농부, 누에 치는 여자, 거친 산, 들의 나무를 직접 보고 그렸습니다. 그리는 것 자체가 일이자 그 과정이 휴식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현대인들의 불행은 일과 휴식을 너무 기계적으로 분리하려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터에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가족처럼 여기며 조건 없이 좋아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으로 서로 배려하고 일한다면 여러분의 일터야 말로 휴식 같은 직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