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쇠부리토크 사우문예 공모전> 11월의 당선작을 소개합니다.
11월의 당선작은 박정수 사우의 ‘부적 그리고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부적과 함께 되살려낸 한 편의 수필을 읽으며, 추운 날씨 속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온기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부적 그리고 할머니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부적을 썼었다. 그렸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능력이 대단하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점집이나 그런 건 아니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할머니께서 그 중 하나, 항상 연초가 되면 부적을 쓰셨다. 경면주사라고 하는 붉은 가루가 있는데 이걸 들기름과 섞어 붓으로 그림인지 글자인지 모를 그런 것들을 그리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이 드시고 노안이 오니 더 이상 부적을 쓰기가 힘드셔서 내가 중학교 때 쯤부터 부적 책에 기름종이를 올리고 베끼기를 시작하며 부적쓰기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날 기름종이에 붉은 주사가 묻은 얇은 붓을 조심스레 따라 그리는데 얼마나 힘든지 30분 하고 더 이상 못한다고 손을 놓고 일어나려니 용돈을 주신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용돈을 위해 2시간을 꼼짝없이 잡혀 부적을 썼다. 책에 대고 그렸는데도 그림이 참 볼품 없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하시고 내일도 하자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제 절대 안 한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다음날도 난 그렇게 부적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1년에 연초 3일정도 썼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손에 좀 익었는지 책을 대지 않고 보고 따라 그리게 되었다. 이건 가정의 화목을 가져다 주는 ‘가화만사성부적’, 이건 올해 행운을 가져다 주는 ‘행운부적’, 이건 올해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 그리고 이건 부부 관계를 좋아지는 ‘애정부적’… 등. 부적의 종류가 많았고 또 같은 의미의 부적이라도 그림 자체가 전혀 다른 것들도 많고 새 그림, 달마 그림 같은 진짜 그림 또한 책에 담겨 있었다. 내가 부적을 다 쓰고 나면 문지방에 붙여져 있던 작년 부적들은 다 떼내고 새로 적은 부적을 붙였다. 그러면 나는 기분 좋게 처다 보곤 했다.
할머니께서는 이 부적을 파시는 게 아니고 우리 가족과 친척 그리고 주변 지인들께 매해 연초에 나누어 주셨다.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 그러셨던 거다. 처음에는 용돈과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부적을 쓸 때마다 점점 정성과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그런데 그 정성이 부족했는지 다들 가정의 평안과 부부의 애정과 삼재의 나쁜 기운을 피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가정이 그런 것처럼 부부싸움도 하고, 사고도 나고 다들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지금은 나도 부적을 적지 않는다. 지금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동안 그린 부적에 담긴 모든 기운이 다 내게 온 것일까? 미신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정성은 믿는다. 할머니가 부쩍 보고 싶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글_박정수(당진제철소 후판1부)
심사평 시인 최경실
이번 우수작으로 부적을 만들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에세이 박정수님의 <부적 그리고 할머니>를 선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는 마음으로 부적을 쓰던 할머니를 살뜰히 기억하고 기록한 글이 부적처럼 다가옵니다. 부적을 모사하는 옛일을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글쓴이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부적으로 완성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시인 최경실은 충남의 시골학교에서 교사로 지냈다. 시 전문계간지『 시와 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작품집으로는『 그물눈』,『 나팔꽃 잔치』 등이 있다. 현재는 충남도교육청 기획관실에서 학교혁신 관련 일을 하고 있다. |
※ 심사위원: 양승모(시인), 이은용(동화작가), 조현(소설가), 최경실(시인)
7월부터 시작된 사우문예의 원고 접수는 11월 5일에 마감됐습니다. 12월에 발행되는 쇠부리토크에는 5개월동안 선정된 10편의 작품 중에서 장원을 선발해 해당 작가의 인터뷰와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사우문예에 보내주신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