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는 힐링입니다
포항공장 봉강압연부 장진수 사우

울창한 숲속은 보물창고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산속의 보석, 약초에 푹 빠진 장진수 사우다.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는 산삼과 각종 약초들이 둥둥 떠 있는 투명한 술병. 약령시장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한 모양의 각종 버섯. 정체를 알기 힘든 말린 풀. 포항시 북구 장량중앙로에 자리한 장진수 사우의 거실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그는 포항공장 봉강압연부에서 주야불문 바삐 일하는 성실한 사우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군복과 커다란 가방을 멘 채 야산을 돌아다니는 ‘약초꾼’이자 ‘심마니’로 변신한다. 약초를 사랑하는 아내, 직장 동료, 지인들과 함께하기에 더욱 행복하다는 그의 약초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포항공장 봉강압연부에서 조압연을 담당하고 있어요. 조압연 또는 중간압연이라고 하는데 소재의 굵기를 점차로 줄이면서 완제품의 모양과 치수에 가깝게 만드는 일로 압연의 중간 공정이죠. 1987년에 입사했으니 어느덧 32년 차가 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약초수집’이라는 독특한 취미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요?

햇수로는 한 십 년 넘었어요. 처음에는 같은 부서의 최장욱 사우를 비롯한 ‘약초 스승’을 따라다니는 정도였지요. 그러다 조금씩 재미를 붙여 이제는 삶의 큰 낙이 되었습니다. 동호회 같은 곳에 가입한 것은 아니고 아내, 최장욱 사우, 아는 형님 부부와 주로 다니고 있어요.

김광하-김경순 부부, 봉강압연부 최장욱 사우, 정민숙-장진수 부부는 함께 산을 누비며 약초를 캔다.

Q 산삼을 비롯해 술과 효소로 담가 놓은 약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 보입니다.

산삼과 산도라지가 많은 편이고 그 밖에도 송근봉, 꼬리겨우살이, 붉은겨우살이, 창출, 삼지구엽초, 하수오, 한입버섯, 송상황, 오가피, 천마 등 종류는 많지요. 울창한 숲은 우리의 보물창고예요. 여기 진열장 말고도 수납장과 창고 안에 담금주와 효소들이 가득하죠. 대략 200~300여 병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작년 11월 포항에 지진이 크게 났잖아요? 그때 진열장의 유리병들이 떨어져 깨지면서 100병 넘게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놓았어요. 일 년간 부지런히 다니면서 다시 채우기도 했고요.

Q 약초를 캐기 위해 그동안 어떤 산들을 누볐나요?

약초를 캐는데 일반 등산로를 다닐 수는 없고 국립공원도 출입하면 안 되죠. 그래서 우리 소유의 산이나 이름 없는 야산을 찾아다녀야 해요. 백두산에 다녀온 적은 있지만 대부분은 가까운 경상도 지역의 깊지만 이름 없는 산들 위주로 다닙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약초를 캐러 온 사람들을 전보다 많이 볼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저마다 자신만의 장소와 노하우들을 익히게 되지요.

장진수 사우가 캔 버섯과 약초들.

Q 그 노하우란 어떤 것들인가요?

처음에는 하루 종일 다녀도 뭐 하나 캐기가 어려워요. 산세를 봐가면서 다녀야 하는데 초보자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산세를 잘 보는 전문가와 함께 다녀야 해요. 지도를 보고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 캐려고 하는 약초의 성질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맞춰서 찾아가는 거죠. 이를테면 더덕이나 도라지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에 많다거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이런저런 이유로 처음엔 스승의 존재가 필수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독초를 캘 수도 있으니까요.

Q 진열장을 보니 산삼주가 아주 많아요. 심마니처럼 산삼까지 캐실 줄은 몰랐어요.

산삼 장소는 영업 비밀입니다(웃음). 산삼 지역은 부모자식 간에도 안 가르쳐준다는 농담이 있지요. 알려지면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가 그 장소가 금방 황폐해질 수도 있거든요. 산삼은 한번 발견된 장소에서 계속 발견되는 성질이 있어요. 아무래도 한번 뿌리를 내린 터에 같은 씨가 또 뿌려지니까요. 다니다 보면 그런 장소들을 몇 군데 알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캐서 내려오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지혜예요. 우리는 약초를 캘 때 씨를 뿌리며 다녀요. 훗날 제가 아닌 누구라도 그 약초를 캘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죠.

Q 약초의 매력과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저에게 산과 약초는 힐링이에요. 좋은 약초는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건강에 좋지요. 게다가 등산도 몸에 좋잖아요? 씨를 뿌리고 약초를 찾으며 이 산 저 산 누비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큰 힐링이에요. 실제로 함께 산을 다니며 즐겁게 지내다 암을 이겨낸 지인들도 있어요. 의사가 아니니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분명히 좋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우리는 믿고 있지요.

산삼주, 도라지주 등 직접 담근 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진수 사우.

Q 산속에서의 힐링이 회사 생활에도 활력을 주었겠군요?

그럼요.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왜 스트레스나 답답함이 없겠습니까. 회사 안의 이런저런 일을 산에 다 뿌리고 오지요. 산은 너른 품으로 다 받아줍니다. 특히 같은 부서 최장욱 사우가 산을 함께 다니는 동료이기도 해서 서로 큰 의지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사내에 저를 부러워하는 사우들이 많은데 한 번 따라오곤 힘들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약초를 수집하고 있는 사우들이 사내에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약초 수집 취미를 원하는 사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면 시작하기 어려워요. 또 욕심을 버려야 해요. 처음엔 한 번에 많은 양을 캐려고 산 속에 너무 오래 머물다 해가 지고 길을 잃는 경우도 많으니 길잡이가 돼주는 스승과 꼭 함께해야 하고요. 그렇게 천천히 욕심을 내려놓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삶의 활력을 선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대진(지니스튜디오)
섭외 조동관(포항공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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