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여 근속한 지 37년, 서예를 배운 지 40여 년.
일과 함께 꾸준한 취미생활을 해 온 끝에 내년에 퇴직을 앞둔 한규식 사우는 서예가로서도 그 명성을 알리고 있다. 18년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현재 한국서예협회 심사위원, 인천광역시 서예협회 부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취미생활을 통해 인생의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한규식 사우를 만났다.
서예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5살 때 시작한 한문 공부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배운 지는 37년 됐습니다. 어릴 때 종조부(할아버지의 형제)님이 한학자셨고 또 집안 어르신 중 서예를 하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집안 분위기를 따르게 된 것이죠. 무엇보다 서예가 좋았습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겠죠.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구요. 제가 남매를 키우면서 서예를 가르쳐보려 애썼지만 아이들이 적성에도 안 맞고 관심이 없어서 일찍 관두었어요. 무엇보다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손주가 있는데 나중에 크면 한번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좋아하는 서체가 있습니까?
서예는 문자 예술입니다. 문자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선과 형태를 개성있게 표현해 내는 것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서체는 추사체입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서체라고는 입을 모으지만 정작 일반인들이 추사체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는 힘들 것입니다. 미술을 시작할 때 맨 처음 데생부터 배우듯 서예도 ‘임서(臨書)’라고 해서 똑같이 베껴 쓰는 연습부터 하게 됩니다. 기본기를 익히기 위함인데 이를 통해 붓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것을 창작해낼 수 있어요. 추사체는 그 절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다다르진 못하겠지만 저도 계속 노력해서 저만이 가질 수 있는 서체를 남기고 싶군요.
서예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입니까?
출렁출렁한 붓을 잡고 묵향을 맡아가며 한 획 한 획 흐트러짐 없이 써 내려갈 때의 몰입감은 정말 최고입니다. 잡념을 없애고 집중력을 기르는 데 좋은 작업이죠. 학생은 물론이고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예 덕분에 회사 생활도 안정감있게 잘 할 수 있었고 일에 대한 몰입도 더 잘 됐던 것 같아요. 반대로 좋은 회사를 다닌 덕분에 마음이 안정되어 서예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여맥(如麥)’이라는 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리밭을 뛰어다니며 보리 냄새를 맡으며 자라서인지 보리가 무척 좋아서 ‘보리 같은 촌놈’이라는 뜻으로 제가 지었습니다.
회사 근처에 작은 작업실을 하나 갖고 있는데 제 호를 사용해 ‘여맥서예연구실’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내년이면 퇴직을 하게 될텐데 앞으로 연구실에서 후학양성도 하면서 서예가로 열심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사내동호회를 만들지 못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활동했더라면 좀 더 의미있는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퇴직하기 전에 큰 서예를 써서 회사에 남기고 가고 싶군요.
현대제철 사우 여러분,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여러분들께서도 즐거운 취미생활로 일상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