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를 돌보는 친환경 한가위 보내기

어릴 적 봤던 영화 중 ‘데블스 애드버킷’의 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주인공 역의 키아누 리브스가 아무도 없는 도심의 한복판을 홀로 걷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사람이 증발하고 스산한 안개만이 고층 건물을 휘어 감싼다. 하지만 내가 명절 때마다 그 장면을 복기하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모두 고향으로 떠난 텅 빈 서울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길고 지난한 이동 과정, 기름진 음식, 통장 잔고 등을 생각하면 명절은 좀 부담스럽달까.
이렇게 불만을 투덜거려 봤자 아까운 연휴만 허비하는 꼴이라 좀 간소하고 편안하게 명절을 보낼 방법을 생각해봤다. 풍성한 한가위에 더부룩하지 않게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는 팁들. 친환경 명절을 보내는 방법으로 제격이다.
우선 명절 계획표를 만든다. 품목, 금액, 구입처, 필요한 양, 남은 음식, 자기 돌보기 등 항목별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계획적으로 장을 볼 수 있고 구입처 별 금액을 비교할 수 있다.
특히 매년 명절을 준비해야 한다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다. 남은 음식 항목을 보며 음식 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 이외에 자기 돌보기 항목은 명절 연휴 때 꼭 하고 싶은 자신만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적는 칸이다. 예를 들어 한밤중 족욕, 마사지 받기, 동네 산책, 시집 한 권 읽기, 가족과의 여행 등 정말로 좋아서 하는 사소한 일을 해보자. 작년 명절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홀로 영화관에 가서 심야영화를 보고 오는 시간을 보냈다. 그랬더니 다음 날 가족들에게 좀 더 관대한 사람이 되었다나 뭐라나.
두 번째는 명절 전 냉장고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냉장고에 묵혀둔 음식 양을 보면 냉장고에 코끼리라도 넣을 수 있을 듯하다. 냉장고에 든 음식만으로 일주일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 그러니 장을 보기 전 냉장고에 쟁여둔 음식들을 먹어서 냉장고를 비운다. 이 과정에서 명절 때 구입할 식재료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명절 후 남은 음식을 보관할 공간도 생긴다. 냉장실은 덜 채울수록, 냉동실은 채울수록 전기가 줄어드니 보관할 음식은 차라리 냉동하는 것이 낫다.
마지막으로 음식은 먹을 만큼 적당히 준비한다. 너무 많은 음식과 가짓수는 맛없는 뷔페나 마차가지다.
평소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과감히 생략하자. 차례상의 고갱이(핵심)는 정성이지 음식 가짓수가 아니다. 먹을 만큼만 요리해서 명절 후 남은 음식을 몇 끼에 걸쳐 밥상에 올리지 않도록 양을 조절한다.
1인당 음식물 쓰레기 20% 감축 시 하루 4900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줄어든다. 내 건강에도, 지구 건강에도 좋다는 지당하신 말씀.

Tip 친환경 한가위를 보내는 그 밖의 방법

1. 한 그릇 뚝딱 ‘일품요리’ | 대가족이 모여서 밥 차리기가 힘들다면 곤드레 나물밥, 콩나물밥, 월남쌈, 샤브샤브 등 차리는 수고를 줄이고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을 수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2. 플러그를 뽑고 천천히 | 명절 동안 집을 비울 때는 가전제품 플러그를 뽑는다. 노트북, 휴대폰, 텔레비전 등 네트워크에 연결된 삶을 잠시 꺼버리는 것.

3. 친환경 이동 | 명절 때는 버스가 빠르다. 또한 승용차에 비해 버스는 7배, 철도는 5배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다면 짐을 줄이고 내리막에서 엑셀을 밟지 않고 급정거를 줄이는 친환경 운전을 실천한다.

4. 1회용품 거절하기 | 성묘 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 용기를 이용한다. 또한 플라스틱 소재 대신 종이나 식물성 소재를 사용한 대안제품도 나와 있다.

5. 과대포장 선물 사지 않기 | 명절 선물은 포장으로 허례허식을 부리기 쉽다. 받는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과대포장 제품은 구입하지 말자. 올 추석을 맞아 한 대형마트는 추석선물 포장재를 수납상자로 쓸 수 있는 포장재를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