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있는 풍경, 일본 도쿄

일본 도쿄는 오사카에 이어 한국인들이 두 번째로 많이 가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가깝고 방문하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는 점이 도쿄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도쿄에 새롭게 정착한 커피 문화 역시 그 매력 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


▶ 블루 보틀 커피 도쿄 1호점은 도쿄의 동쪽 기요스미시라카와에 있다. 주택과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갤러리, 공방, 개성 있는 가게들, 스페셜티 카페들이 공존한다. 카페 거리로도 통하며 독특한 정취로 발길을 끄는 지역이다.

도쿄 카페의 역사
도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메이지 시대인 18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에노에 문을 연 ‘가히사칸(可否茶館)’에서 커피를 판매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사교를 위해 커피하우스를 찾았다. 1911년엔 유럽 카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카페 프렝탕’, ‘카페 파울리스타’ 등이 생겨나 지식인들과 문인,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최초의 메이드카페인 ‘카페 라이온’도 문을 열었다.
이후 도쿄엔 무려 1000여 개의 카페들이 성업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사치품으로 여겨진 커피 수입이 제한되어 카페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커피 수입이 조금씩 재개되었다. 경제 호황 무드를 탄 60년대 이후로는 샹송, 재즈 등의 라이브 연주가 곁들여진 음악 카페가 날개를 달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생계를 위해 7년 간 운영한 카페 겸 재즈 바 ‘피터 캣’이 영업한것도 이 시기였다. 80년대에는 커피에 주류메뉴를 결합한 형태의 카페 바가 유행하는한편, 1989년 시부야에 ‘드 마고 파리’가 탄생하며 오픈 테라스와 가르송(웨이터)으로대표되는 프랑스식 카페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도토루 커피의 성공과 스타벅스의 상륙은 가벼운 커피와 달콤한 음료를 일상으로 끌어내 주었다.


▶ 노르웨이어로 ‘새’라는 뜻의 푸글렌. 북유럽 스타일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도쿄로 밀려드는 커피의 물결
언제 어디서든 획일적인 맛을 내놓는 프랜차이즈 커피에 대한 반작용일까? 21세기의 도쿄 카페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섬세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서드 웨이브, 즉 제 3의 물결이 있다. 미국식 인스턴트 커피가 제 1의 물결을 만들어냈다면, 스타벅스처럼 에스프레소 기계로 추출한 커피가 제 2의 물결을 몰고 왔고, 원두의 개성과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천천히 추출하는 스페셜티 커피가 제 3의 물결을 이룬다. 평범하고 특색 없는 커피가 뛰어난 품질에 디테일을 더하는 커피로 전환되는 셈이다. 기요스미시라카와의 커피 거리나 골목 곳곳에 자리한 소규모 로스팅 카페들의 인기를 보면, 이미 오래 전에 도쿄에 새로운 커피 문화가 뿌리내렸음을 엿볼 수 있다.


▶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프랑스의 스페셜티를 판매하는 커피 코튬

도쿄의 새로운 콘텐츠 커피
‘마루야마 커피’, ‘노지 커피’, ‘오니버스 커피’ 등 크고 작은 개인 카페들은 특색 있는 원두를 고르고, 정성 들여 로스팅하고, 솜씨 좋은 바리스타의 손을 통해 서서히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블루 보틀(미국)’, ‘푸글렌(노르웨이)’, ‘코튬(프랑스)’ 등 해외에서 날아온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도 가세해 도쿄의 커피 시장이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카페마다 고유한 철학과 스타일은 유지하되 함께 공생하면서 신선한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일본인 특유의 진득한 장인정신과 개인의 취향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성향에 비추어볼 때, 도쿄의 커피 문화는 계속해서 진화해나갈 전망이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카페 탐방만으로도 도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매년 4월, 오모테산도 근처 파머스마켓에서는 도쿄 커피 페스티벌이 열린다. 소규모 로컬 커피 로스터들이 주로 참여하며, 커피 시음은 물론 원두 및 커피용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