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힘, 성취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활동이다.
그리고 그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취’의 과정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부단한 인내와 노력으로 성취의 가치를
중요한 유산으로 남긴 다산 정약용과 화가 프리다 칼로.
당진제철소 중앙설비팀 신승용 사우가 두 명사를 만나 성취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성취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정진하려는 습관입니다”

신승용 사우(1980~)
당진제철소 중앙설비팀에 근무하는 신승용 사우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늘 즐겁다고 한다.
이러한 성취감을 열정의 원동력 삼아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된다는 그는 언제나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과 보다 편리한 업무수행을 위해 고민하고 개선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현대제철 사우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신승용 사우 안녕하세요. 당진제철소 중앙설비팀에서 벨트컨베이어 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승용입니다. 저는 2017년 당진제철소 사내 제안왕으로 선정되어 대표이사 표창장을 받은 일이 있고 또 올해에는 전국 품질분임조 제안사례분야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제가 갑자기 수상 내역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번 호 주제가 바로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에 처한 상황 속에서도 나태함을 모르고 우리에게 도전과 성취의 가치를 일깨워주신 두 분께서는 성취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산 정약용 ▶ 말씀처럼 어떤 일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긴 시간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하며 보낸 시간들은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오늘날 여러분들께는 <목민심서>와 같은 저서나 수원 화성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 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물인 것이고, 과정에서는 커다란 역경이 있었죠.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낸 시기가 기억나는군요. 유배를 떠날 때 나이가 마흔 살이었지요. 유배 생활 중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같은 시기 흑산도에서 유배 중이시던형님(정약전)을 잃어야 했던 일은 커다란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것을 바탕으로<목민심서>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마침내 18년의 귀양살이가풀리게 되었지요. 그러한 시련의 세월들 틈에서 더욱 제 자신을 엄격하게 단련시키지않았나 생각됩니다. 성취는 그럴 때 더욱빛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프리다 칼로 ▶ 신승용 사우님께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상을 받으신 얘기를 들으니 저 역시 처음으로 미술전람회에서 <모세>라는 작품으로 5천 페소의 상금을 받고 기뻐한 일이 생각납니다. 제 그림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기에 많은 분들이 제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고 계신데 사실은 아닙니다. 하반신 마비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마추어로 그림을 시작했거든요. 원래 의사가 되려고 공부를 시작했던 제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은18세에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척추와 골반, 그리고 다리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을 석고로 고정하고 고통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때 시작한 게 그림이었죠. 침대에 누워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공중에 화판을 고정하고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에 석고를 두른 채 첫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게 순탄하지만은않았어요. 다산 선생님께서 유배지에서 사랑하는 형님을 잃은 것처럼 저 역시 그 시기에 첫사랑을 떠내 보내야 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있는 성취는 역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성취의 근본은 성실함입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정치적 탄압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성취를 이뤄낸 그의 인내와 성실, 용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전한다. 왕정시대에도 주민자치가 실현되기를 소원한 그의 정치관은 민본에 바탕을 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본인의 역량을 다해 목표를 이루는 힘이 성취이다
신승용 사우 ▶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에너지를 창조적인 작업에 쏟으신 두 분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두 분에 비하면 감히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고난이라 표현하기에도 부끄럽습니다만 그 고난과 역경의 무게만큼이나 가치 있는 성취의 의미는 무엇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께서는 창의적인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성취의 원칙을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사내 제안을 고민하면서 ‘업무의 편리성과 안전’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 저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다른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목수나 사냥꾼, 대장장이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냈었지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전통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창의적인 사고방식이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훗날 관직에 진출해 나라의 명을 받아 수원 화성을 축성할 때도 노동의 양만큼 품삯을 지불하자고 정조께 건의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낡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노동을 시키는 게 당연했던 그 시대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답니다. 유배생활을 할 때도 서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근처의 농민과 어민, 그리고 스님에 이르기까지 당시 조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이때 저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문우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은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식인의 학문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편지로 주고 받은 것이지요. 이런 소통을 바탕으로 관리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백성의 입장에서 정리한 책들을 펴냈는데 이게 오늘날 여러분들께도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하찮은 일, 천대받아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는 저의 원칙이 작용한 것입니다.

프리다 칼로 ▶ 저 역시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당시 멕시코의 어려운 민중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산 선생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신 애민 정신과 일맥상통하겠지요.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슬픔, 행복과 절망을 그림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 그림이 시대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제가 장애를 극복한 화가라는 점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제가 그린 그림에 당대 민중의 애환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이 또 있어요. 당시에도 민중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은 많았지만 제가 그린 그림이 특히더 인정을 받았던 것은 제 모국인 멕시코의전통과 감성을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죠. 이 점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걱정하고 개선시키는 혁신이야 말로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는 가장 큰 원칙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신승용 사우님의 ‘업무의 편리와 안전’이란 원칙도 같이 생활하는 동료의 안전을 걱정하고 업무를 개선하려는 의지라는 점에서 저나 다산 선생님의 원칙과근본적으로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승용 사우 ▶ 지금까지 두 분께서 해주신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다산 선생님은 수원 화성을 축성할 때 공사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노고를 줄이면서도 오히려 안전은 확보하려는 뜻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인 거중기를 고안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시죠.
그리고 멕시코의 전통을 초현실주의라는 매우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림에 도입한 프리다 칼로님의 창의성도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을 하며 관습적인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업무 수행을 위해 고민해왔기에 두 분의 창의적인 성취에 더욱 공감을 하게 됩니다. 오늘 대담을 계기로 우리 회사의 모든 분들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 무엇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개선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성취를 이룹니다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 출신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필생의 예술적 주제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고 할 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화상을 남긴 매우 특이하고 예외적인 화가이다. 루브르박물관이 작품을 구입한 최초의 멕시코 화가이자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인 프리다 칼로.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삶의 고통을 멕시코적 전통에 실어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작품들은 멕시코의 국보가 되어 치열한 에너지로 살았던 한 여인의 숭고하고도 감동적인 성취의 기록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