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오랫동안 한길로 개그맨 생활을 해 온 것은 축복이었어요. 내게는 다른 사람보다 웃을 시간이 더 많이 주어졌으니까요. 저는 유독 많이 웃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내가 많이 웃어야 주변 사람들도 편안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우스운 삶이 아닌, 웃는 삶을 살되 웃을 때 10퍼센트만 더 웃자고 권하는 개그맨 이홍렬.
인생의 즐거움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해 내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 그의 삶 속에는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익살스런 개그와 인간적인 감동이 가득하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던 젊은 날의 이홍렬도 좋지만 여전한 입담으로 편안하고 담백한 웃음을 주는 지금의 그가 더욱 근사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근황이 어떠신지요?
요즘 강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강의는 저에게 있어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신바람 나는 일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드는 우리 개그맨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거든요. 사실 저는 강의에서 얼마나 즐겁고 유쾌하게 웃음을 드렸는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답니다.
● 강의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0년, 놀이동산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개그맨 경력이 막 10년을 넘었을 땐데 처음엔 강의 경력도 없고 엄두가 나지 않아 정중히 사양했었죠. 그런데 인생 선배로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며 용기를 북돋워달라는 말을 듣고 지난 시절 어려움을 겪고 개그맨이 되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해주자는 마음으로 강의를 준비했었죠. 첫 강의를 하던 날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보통 떤 게 아니었거든요. 그날 저는 ‘내가 다시는 강의를 하나 봐라’하고 다짐을 했었습니다만, 그 다음 강의는 2년간 일본 연수를 다녀온 후에 또 이어졌죠.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강의요청이 들어오면 계속 하게 됐는데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일선에서 물러난 연예인들이 방송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강의하러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강의를 하면서 차차 적응했고 강의의 완성도도 높아졌어요. 그리고 결심했죠. ‘내가 하는 강의 내용대로 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이죠.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강의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주로 어떤 주제의 강의를 하십니까?
처음엔 그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이제는 개그맨 생활을 하며 느낀 ‘즐겁게 사는 법’에 대해 조금씩 제시하고 있습니다. 감히 내가 즐겁게 사는 법이 있다고 정의 내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에 대한 것들만 40년 가까이 접해보니 사람들이 놓치고 사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긴 하더군요. 하지만 정작 강의를 하면서 즐겁고 행복해지는 사람은 제 자신입니다. ‘나의 개그 무대’라 생각하고 마음껏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좋아요. 그럴 때 저는 희열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객석에 떨어져있는 웃음 조각들이 좋아요. 사람들은 위트, 해학, 코믹, 유머 이런 것을 구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저 실컷 웃으면 됩니다.
앞으로도 강의를 통해 열심히 공부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무대를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자기 복은 자기가 찾는다는 말이 있죠. 자기 웃음도 자기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아는 의사선생님이 인간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사랑의 호르몬 양으로 결정된다고 하더군요.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폭넓은 지인들과의 교류,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와 여러 사회 활동의 참여가 행복을 결정하는 관계 호르몬의 분비를 높이는 방법이고 그것이 즐겁게 사는 방법인 셈이죠. 제일 위험한 경우가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는 일이에요. 사람과의 교류는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사실 즐거운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죠.
저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기념 사진을 찍어둡니다. 옛날 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선택해서 같은 멤버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죠. 올해는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이들이 각각 1살, 3살 때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올해 12월에 그곳에 가서 기념촬영 할 예정이에요. 우리 가족은 벌써부터 사진 찍을 일을 이야기하며 매일 매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대화를 많이 하시를 권합니다. 그 가운데서 자신도 모르게 즐거움은 찾아지는 것이니까요.
● 나눔 활동으로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계기가 있으신지요?
우연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마련한 행사에 초청돼 사회를 보았어요. 행사비로 봉투를 받아왔는데 돈을 바라고 출연한 것은 아니어서 양심상 받기가 어렵더군요. 저도 사람인지라 갈등을 하던 끝에 재단에 대해 알아봤고 최불암 선배님이 후원회장으로 계신 곳이라 신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연료로 어려운 국내 어린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 정기후원자가 되었고 그 수를 늘려가며 동참하다 보니 어느새 후원 활동 30년, 홍보대사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군요.
● 앞으로의 계획은?
제게는 버킷리스트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였던 국토종단은 지난 2012년에 실행했고 그 수익금으로 자전거를 구입해 아프리카 남수단에 보냈어요. 남수단에 가서 제가 보낸 자전거를 받은 아이를 만났습니다. 저를 보더니 고맙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더군요.
“자전거를 줄 정도이면 키가 클 줄 알았어요. 당신은 키는 작지만 마음이 크군요. 내가 당신을 잊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말이 제 발목을 잡은 거죠.
이후에 남수단 옆에 있는 에티오피아에도 다녀왔습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유일한 아프리카 참전국이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23시간만에 에티오피아에 갔는데 그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돕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21일만에 배를 타고 왔어요. 어떤 기자로부터 병상에 누워계신 참전용사 한 분이 “한국이 잘 살게 돼서 참 고마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얘길 전해 듣고는 먹먹해지더군요. 죽기 전까지 나도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이 생긴 거죠.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제게 주례를 봐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처음엔 고사하다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주례를 볼 테니 에티오피아 어린이 한 명을 후원하라고 권했죠. 신랑 신부는 물론 양가 부모님께서도 기꺼이 후원하시게 된 것을 보고 슬슬 주례 보는 일에 신이 났습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6307명을 파병했고 121명이 전사했습니다. 536명이 부상을 당했고요. 저의 목표는 앞으로 121쌍의 주례를 보고 혼자 536명의 후원자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현재 23쌍의 주례를 봤으며 214명의 후원자를 모았어요.
좋은 일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거기다 다들 칭찬까지 해 주시니 몸 둘 바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아요. 이 나이에 칭찬받을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더 하고 싶고 계속 할 겁니다.
▲ 결혼 1주년 기념사진(1988년)
▲ 1991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 올해 12월 결혼 30주년을 기념해 똑같은 장소에서 가족과 함께 촬영하기로 약속했다.
이홍렬 |
행복해지기 위해선 세 가지 기(氣)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기소침(意氣銷沈), 기고만장(氣高萬丈), 의기양양(意氣揚揚)이다. 우리는 항상 균형을 맞춰 살아야 한다. 의기소침하면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어렵다. 반면 그 기가 지나치게 충만하여 기고만장하게 되면 거만을 떨다가 탈이 생긴다. 우리가 늘 갖고 있어야 할 것은 의기양양이다. 의기양양하게 활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찾아온 행복의 원천도 안다는 얘기다. 주목 받지 못한 위치에 있어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비교하지 않으며 시기하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한 가운데 새로운 의기양양은 다시 찾아온다고 믿어야 한다.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난이 축복이었다. 가난을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오기와 근성,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고 축복이었다. 물론 가난은 가난의 고리를 끊어야 축복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들 중 가장 나쁜 것은 나태한 습관이다. 그 습관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 가난을 물려받은 자식이 부모를 원망한다면 또다시 대를 이을 수밖에 없지만 가난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오기와 근성을 갖고 성실하게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면 그것은 결국 축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가난이 축복이냐 아니냐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알고 가난을 이유로 쉽게 자신의 꿈을 버리는 핑계는 대지 말자.
성공이냐 아니냐는 스스로 평가할 수 없다. 하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나름대로 정한 성공의 고지에는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도 잠시, 성공했다고 인정받고 자부하는 이가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예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살아있는 사람이 섣부르게 자기가 성공했다고 말하기보다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평가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했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적인 삶’이다.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가꾸어나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