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의 지혜] 정희성 ‘지금도 짝사랑’ 중에서

지금도 짝사랑

사람을 사랑하면
임금은 못되어도
가객은 된다.

사람을 몹시 사랑하면
천지간에 딱 한 사람이면
시인은 못되어도
저 거리만큼의 햇살은 된다
가까이 못 가고
그만큼 떨어져
그대 뒷덜미 쪽으로
간신히 기울다 가는

가을 저녁 볕이여
내 젊은 날 먹먹한 시절의
깊은 눈이여

정희성 시집,「 지금도 짝사랑」 중에서

시원스레 고백 한번 못해보고 끙끙 앓다가 만 짝사랑.
그 아쉬움을 햇살에 비유한 시다.
시를 읽으며 재수생 시절 첫사랑이 생각났다.
우린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꿈에서… .
그녀는 싫다 좋다 응답이 없었다. 나만의 짝사랑이었으니까.
덕분에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없었다.
다만 나는 현실에선 불가능했던 그녀와의 추억을 꿈을 통해 쌓았고, 그것이 첫사랑이라 여겨질 만큼의 애틋함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당시 나의 시선이 그녀의 뒷덜미에 내려앉은 햇살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빛 바랜 사진이지만 산뜻한 이미지로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글_나채림 사우(당진제철소 제강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