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은 역량개발과 리더십개발, 조직개발 분야의 전문가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인력개발과 조직개발을 전공했다. 인적자원개발 및 조직개발 컨설팅 전문기업 ‘팀과 리더이야기’ 대표이다. 현재 국내 유수 기업과 여러 매체에서 개인과 조직 역량 향상에 관한 활발한 강연과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따뜻한 변화 에너지』,『소통, 팀으로 일하라』,『앞으로 뭐하고 살지?』등이 있다.
자유와 자율
최근 직원들이 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데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근무 복장, 출퇴근 시간, 근무 형태나 근무 환경, 정보 공유 방법, 직위직급 시스템, 평가 제도 등 경영 전반의 영역에서 자율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자유로운 일터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자발적인 참여가 일어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직원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노력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책임의식이 선행돼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유와 자율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따져보면 반대말에 가깝다. 자유는 사전적 의미로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라는 뜻이다. 반면 자율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수의 회사들은 구성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자유를 주기보다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조직의 룰을 지키며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모습이 바로 자율인 것이다. 쉽게 말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이야말로 조직이 필요로 하는 자율적 인재이다.
자율과 책임의식
구성원들에게 자율적인 행동을 요구하게 될 때 나타나는 문제중 하나는 적당히 일하고 자유롭게 놀면서 진정한 ‘자율’의 가치를 흐리게 만드는 소수의 ‘무임승차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무시한 채 권한만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자율은 강한 책임의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구현되는 것, 구성원들에게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수반됨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1978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된 친환경 농산물 유통업체인 홀푸드마켓은 2015년 기준 154억 달러(약 18조8600억 원)의 매출액과 직원 9만여 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얼마나 직원들을 괴롭혔으면 이런 성과를 냈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홀푸드마켓은 경제전문지 포천이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1998년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홀푸드마켓의 이 같은 성공 비결은 직원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조직 문화에 있다.
홀푸드마켓은 점포 내 각 팀 단위별로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각 매장은 약 8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팀은 가격 결정이나 주문, 채용, 매장 내 제품 홍보 등 운영상 중요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 본사에서 내려오는 규칙도 최소화하여 운영되고 있다. 대신 각 팀은 수익으로 평가를 받으며 그에 대한 직접 책임을 진다. 각 팀의 노동생산성은 분기마다 평가된다. 홀푸드마켓은 4주마다 한 번씩 모든 상점의 팀들을 대상으로 노동 시간당 이윤을 계산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을 넘는 성과를 낸 팀은 다음 급여 일에 보너스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각 팀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신중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각 팀원들이 갖고 있는 채용 권한의 예를 보자. 각 팀원들은 함께 일할 동료를 채용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친분이나 개인적 선호에 의해 채용을 하지는 않는다.
신입 동료가 제 역량을 발휘하고 제대로 일해야 팀의 성과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엄격하고 꼼꼼하게 신규 인력 채용을 검토하게 된다. 자율권과 함께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홀푸드마켓의 이러한 시스템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동기 부여를 높이고 관료적인 통제는 더욱 줄어들게 하며,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율적 인재가 가득한 구글
전세계 기업 가운데 직원들에게 자유를 가장 많이 부여하는 회사 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구글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정보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회사는 불과 15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최고의 일 하기 좋은 기업(Great Workplace)’으로 선정되고 있다.
구글은 사내 통신망인 ‘MOMA(Message Oriented Middleware Application)’를 통해 회사 내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검색하고, 구성원들과 상호 의사소통하고 자유롭게 피드백을 얻거나 도움을 부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구글의 모든 연구원들은 1주일마다 개인 활동과 성과를 요약하여 사내 웹사이트에 올리게 되어 있다. 어떤 구글 직원이든 목록을 검색하여 비슷한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동료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추세를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프로젝트를 연구한 동료들에게 자문이나 도움을 자유롭게 구할 수 있다. 구글은 개방성과 자유로운 의사소통 시스템이 구성원들의 자율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회사가 마냥 직원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회사는 철저히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만을 선발한다. 그래서 구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채용에 공을 많이 들이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얼마나 직원 채용에 공을 들이는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일단 직원 채용에 들이는 비용이 평균 기업의 두 배 이상이다. 채용 단계에서 거쳐야 할 절차만해도 5~6단계에 이르며 통계 등 다양하고 검증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채용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무리 부족하고 채용이 급하다 하더라도 섣불리 채용하지 않으며 최고 수준의 직원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최고의 직원이란 똑똑하기만 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무 분야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은 기본이며 회사와 주변 사람들까지 성공하도록 만들어줄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글은 자유를 부여하는 회사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일하는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율적 환경, 회사와 구성원간 믿음으로 구축해야
구글과 같은 방식의 시스템 구축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율성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서 회사와 구성원간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다 하더라도 상호간의 신뢰가 없다면 진정한 자율권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또한 자발적으로 헌신하기보다 자율성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기업은 구성원들을 인간적으로 믿고, 구성원들 역시 능동적인 주체자로서의 자세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작은 것에서부터 구성원들의 역량을 믿고, 자율성을 부여하여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고 자발적 헌신을 유도해내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상호간에 더 높은 신뢰를 쌓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강화하게 되어 결국 신뢰 경영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경영은 이제 몇몇 앞서 가는 소수의 특이한 기업들만이 실천하는 경영방식이 아니다. 권한 위임을 통한 자율경영이야말로 직원들을 성장시키고 성과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권한 위임을 통한 자율경영은 창의와 혁신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경영기법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리더가 조직 구성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철학이자 조직문화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창의와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21세기, 무엇보다 구성원의 자율을 강화하는 경영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율경영은 회사와 구성원간 믿음과 존중에서 시작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문화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Success Code
자율이 넘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조건
1. 비전과 철학의 공유
자율성은 기업의 철학이나 가치 범주 안에서 발휘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제각각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이 아니며, 오히려 조직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구성원 자율성 부여가 회사 전체 목적에 걸맞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회사의 경영 철학이나 가치를 깊이 공유해야 한다. 구성원들은 무엇을 위한 자율인지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면서 최소한 회사에 누가 되는 행동은 스스로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2.작고 유연한 움직임이 필요
자율성이 강한 기업은 대부분 작고 유연한 조직 운영을 실천하고 있다. 부서가 커지면 계층이 생기고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하락하며 동기를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 팀 안에서도 소규모 그룹을 운영하면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높이고 구성원들의 창의성 발현이 더 쉬운 환경을 구축 할 수 있다.
3. 협력 시스템의 구축
자율은 구성원들의 능동성을 강조한 것이지 ‘혼자 알아서 해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논리나 편협한 사고에 빠질 수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 따라서 올바른 자율이 시도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스스로 고민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되, 구성원들간의 원활한 협력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집합적 창의성을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화마다 모두 큰 성공을 거둔 픽사 또한 다양한 소통 창구인 ‘두뇌위원회(Brain Trust)’를 운영하고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뛰어난 감독 여덟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두뇌위원회를 통해 영화 제작 감독과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얻고 언제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