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봄 바람이 불던 서울의 한 스튜디오. 인터뷰 준비를 마친 제작팀은 기분 좋은 설레임을 안고 쇠부리토크의 네 번째 멘토를 기다렸다.
호쾌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주인공은 스튜디오 한 켠에 마련된 피아노에 관심을 보였다. 멘토의 피아노 실력을 알고 있었던 제작팀도 내심 그의 연주를 기대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고 곧이어 귀에 익숙한 피아노 곡들이 늦은 오후 봄바람을 타고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쇠부리토크 네 번째 멘토 인터뷰의 주인공은 현대차의 연구원이자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다. 장동선 박사는 tvN의 교양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전문 패널로 출연했고 국내외 다양한 강연을 통해 청중들과 소통해 온 과학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과학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초청해 과학의 원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과학쇼’ 형식의 강연 대회가 있는데,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이 쇼의 진행자와 같다.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학업을 이어온 장동선 박사는 독일의 막스플랑크뇌공학연구소에서 인간 지각, 인지 및 행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에는 독일의 과학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을 하며 유럽에서는 인정받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자리매김했다.
뇌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장박사가 자주 활용하는 강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피아노다. 뇌과학이라는 다소 난해한 학문에 대해 그의 음악적 재능을 활용해 대중과 더 가깝게 소통해오고 있는 셈이다.
장동선 박사의 또 다른 역할은 미래 자동차 산업이 가야할 방향을 연구하는 일이다. 현재 현대자동차 전략기술본부 미래모빌리티개발팀 소속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동 수단의 미래를 예측하고 연구하고 있다.
인정받는 뇌과학자이자, 커뮤니케이터가 된 자양분은 양극단을 오간 경험이다. 7살까지는 독일에서 살고 초등학교 시절은 한국에서 홈스쿨링으로 보냈으며, 검정고시 과정을 거친 10대 후반에는 질풍노도의 반항기를 겪었다. 다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그의 뇌는 누구보다 폭발적인 변화를 감당해야했다. 어느 환경에서든 그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편견의 시선,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인간의 뇌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일종의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겪고 극복해야 할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들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장동선 박사가 전하는 뇌와 사람 이야기, 인생에 대한 조언을 통해 그 해답의 힌트를 얻어보자.
Q. 뇌과학자로서 현대자동차에서 하는 일은?
현재 현대자동차 전략기술본부 미래모빌리티개발팀 책임연구원으로서 모빌리티UX그룹의 그룹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어떤 이동 수단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게 될지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죠. 앞으로는 기술 개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뇌과학자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죠.”
Q. 어린시절 독일에서 생활했는데, 한국과 독일 교육의 차이점은?
개인적으로 독일의 교육제도를 좋아합니다. 독일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는 나이에 기술을 익힐 것인지 공부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 반 이상이 기술 공부를 하겠다고 선택합니다. 독일에는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제도가 있는데요. 이들은 대학에 간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장인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Q. 학창시절 양극단의 경험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나?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뒤 대학교 조기 입학을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청소년 시기에 2~3년 가출을 하고 반항을 했죠. 특수 교육의 한 측면, 문제 청소년의 한 측면을 모두 경험한 거죠. 공부를 잘하건 문제 청소년이건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더라고요. 그것이 어린 시절의 나를 힘들게 했고 ‘왜 남들과 다르면 안 되지?’ ‘왜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지?’ 이런 의문을 가지게 했어요. 뇌과학을 공부하고 나서는 모든 뇌가 특별하고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에 위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내용에 대해 강연 등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Q. 뇌과학은 무엇인가요?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주제는 사람이 아닐까요? 뇌 과학은 다름 아닌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 생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어떤 것들에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모든 작용들이 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뇌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Q. 뇌의 편향과 이것을 없애는 방법이 있나요?
인간의 뇌는 수없이 많은 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이것이 뇌 편향의 영향입니다. 이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내 생각의 틀을 깨는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뇌가 오랫동안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발견들을 하는 것입니다. 늘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고 내가 아는 게 맞다’ 고 고집하는 사람의 뇌는 빨리 늙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들을 업데이트해 나가는 뇌는 오랫동안 치매도 걸리지 않고 건강한 뇌로 지낼 수 있습니다.
Q. 뇌의 용량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첫 번째는 새로운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시카고 대학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뇌를 연구해 봤는데 주변에 친구가 많고 가족관계가 좋은 사람들일수록 몸도 건강하고 뇌도 건강했습니다. 두 번째는 운동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체력이 좋아지면 뇌의 체력도 올라갑니다. 세 번째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만 있는 병이 ‘화병’입니다.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안고 있는 것은 뇌에 좋지 않습니다. 내 감정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며 감정을 해소해야 뇌가 건강해집니다.
Q. 뇌과학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기계를 활용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 인간의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죠. 서로 차별하고 괴롭히고 억누르고 갈등을 일으키죠. 이러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에게 아름다운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상대에 대한 평가, 감정을 알아내는 뇌과학이 있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사회적으로 살아야 행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뇌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 상태의 뇌로 진화했습니다. 우리 뇌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행복하게 장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았던 분들입니다. 우리의 뇌를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람 사이의 스트레스입니다. 인간은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Q. 사우들에게 하고 싶은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을 들려주세요.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는 나 혼자만 보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서 남을 챙길 여유가 없고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공감으로 서로가 연결되면 힘든 감정이 점차 해소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슈퍼파워를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다 같이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글 「쇠부리트크」편집실
영상 제작 LIM FRAME 임민수
사진 촬영 ARCFACTORY 박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