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입양한 날, 나는 ‘미니미’를 따라 네 이름을 ‘미니광’으로 정했지. ‘베란다 형 미니 태양광 발전기’는 너무 길고, 뭣보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네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않겠냐. 나는 너처럼 손이 안 가는 존재는 정말이지 처음 본다. 사실 널 입양한 후 전기세의 비포·애프터를 비교할 꿈에 젖어 있었어. 그런데 너를 설치하고 얼마 되지 않아 누진세가 개편되고 말았다. 6단계의 가정용 전기 누진세가 3단계로 줄면서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1단계 가정의 부담이 높아지자, 해당 가정에 4000원씩 감면해주기로 한 거야. 물론 네가 생산한 전기는 컨버터에 킬로와트로 기록되지만 내게 킬로와트는 미적분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아니겠냐. 계절에 따라 5000~8000원이던 전기세는 별안간 970원~5000원이 됐어. 그 사이 우리 집에 없던 에어컨, 전기 청소기, 전기밥통이 생겼는데도 전기세가 줄어든 것은 정부가 감면해준 ‘필수공제’ 외에 네 덕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정확히 비교가 안 되네.
암튼 올해 전기세는 얼마 냈냐고? 7월에는 1000원을 냈는데 8월에는 밤마다 에어컨을 틀었더니 세상에나…. 역대급 전기세 10000원을 찍었어. 미니광, 너도 어쩔 수 없었겠지. 사람들은 이제 ‘에어컨’은 생존인데 전기세 무서워서 어디 켤 수나 있냐고 해. 그래서 전기세가 한시적으로 감면됐지만, 여전히 에어컨이 없는 600만 가구들이 존재하고 있어.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에어컨을 돌리면 이산화탄소가 늘어나고 지구는 더 더워지고, 그러면 에어컨을 더 돌리고 지구는 더더 더워지고… 뫼비우스 띠같은 순환이 일어난다는 거지.
미니광, 실은 너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 내심 ‘대한민국 가구당 월 평균 225킬로와트를 쓰는데 저는 그 25퍼센트만 사용해요.’라는 잘난 척을 했었어. 체감하는 전기세가 워낙 싸서 내가 정말 전기를 적게 쓴다고 믿었지. 근데 로마에서 콜로세움 주변이 죄다 어두워서 현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전기요금이 비싸서 불빛을 최소한만 켜서 그렇대. 그래서 우리 집 월 평균 전기 사용량 50킬로와트를 해외 전기요금으로 환산해봤어, 한국에서 이 정도 쓰면 3300원 나오는데(TV 수신료 제외), 미국서는 16000원, 일본서는 24000원이래. 독일은 더 비싸. 독일서 우리나라 평균 전기사용량만큼 쓰면 약 3배를 더 내야 해.
올 여름 가정용 전기세로 시끄러웠지만 이미 2016년에 누진세 개편이 돼서 3단계 이상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구는 많지 않아. 누진세 적용이 안 되는 산업용, 상업용 전기의 경우 가정용 전기세가 거의 오르지 않았던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뛰었고. 국가유공자, 장애인,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는 이미 전기세 할인이 되고 말이야. 사실 가정용 전기세는 원가회수에도 못 미쳐. 300킬로와트 이하를 사용하는 가정은 원가의 50~90퍼센트만을 전기세로 내고 있어. 물론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퍼센트를 사용하는 산업용, 상업용 전기를 놔두고 맨날 가정용 전기만 아끼라는 건 잘못이지만, 우리 몫의 책임은 있지 않겠어?
지난 2002년부터 ‘에너지시민연대’가 시민참여형 절전 캠페인을 벌인 결과 신고리 3호기급 원전 5.2개 이상의 전기를 아꼈다고 해. 대기전력차단 멀티탭 보급, 조명전력 LED 교체, 에너지 매니저의 상담과 교육 등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이런 결과가 나왔어. 여기에 더해 미니광, 네가 곳곳에 설치된다면 얼마나 좋겠냐. 대략 계산해보니 미니광 너를 5개쯤 설치하면 우리 집 전기를 자급할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설치할 공간도 없고 한 가구당 보조금도 한 대만 지급돼서 다른 방법을 찾았어. ‘태양광발전협동조합’에 조합비를 내거나 태양광 펀드에 투자해서 다른 곳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난 배당금을 받는 거지. 오늘도 베란다 창을 통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널 본다. 미니광, 세상에 망조가 든 것 같은 폭염 앞에서 우리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줘.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