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쇠부리토크 사우문예 공모전> 8월의 당선작 2편을 소개합니다.

8월 응모작 중 선정된 첫 번째 작품은 박재영(당진제철소 기술지원팀) 사우의 에세이 ‘유곡리 정(情) 아저씨’입니다.  8월 두 번째 작품 김수일(순천공장 도금생산부) 사우의 시(詩) ‘형(兄)’ 은 8월 28일 발행될 쇠부리토크(1031호)에 게재됩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다. 토요일 저녁에 아내가 동태탕을 끓이면서 고춧가루가 다 떨어져가니 동네 앞에 있는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사오라고 하길래 문득 며칠 전 당진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보았던 고춧가루 판매글이 생각났다. 판매하시는 분이 적었던 글귀 중에 가능하면 우리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하자는 이야기에 공감이 가서 기억이 난 모양이다. 그 게시글을 찾아내서 문자를 드리니 다음날 오전에 찾으러 오면 된다고 하셨다. 주소를 받아보니 우리 집에서 왕복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사신단다. 아내가 통화를 듣더니 고춧가루 값보다 기름값이 더 나오겠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지만 ‘중간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농민을 위한다’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사명감(?)으로 다녀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매일 일요일이면 함께 다니던 아빠가 혼자 채비를 하고 있으니 큰 아이가 얼른 달려와 바지를 잡고선 놓아주질 않는다. “간만에 두 부녀 오붓하게 데이트 하구 와~”하며 아내가 아이까지 딸려 보낸다. 이미 딸아이는 현관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이와 단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가며 꼬불꼬불한 논길을 지나 어느 집 앞에 다다랐다.
“계세요?”하며 집안에 들어서니 낯익은 작업복이 눈에 띈다. 우리 회사 협력업체에 근무하시는 분 같았다. 작업복 너머로 늙은 호박, 고구마, 말린 고추들이 소담스럽게 툇마루를 지키고 있었다.
“누구세요?”하며 아저씨 한 분이 나오시더니 우리 부녀를 보고는 고춧가루 사러 오신 분이냐며 물으셨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고춧가루를 받아 나서는데 고구마가 가득 들어있는 검은 봉지 하나를 더 내미신다.
웬 거냐고 물으니 고구마 농사도 같이 짓는데 한번 맛이나 보라고 하신다. 몇 번의 손사래 끝에 마지못해 받아든 고구마에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차로 오는데 딸 아이에게 몇 살이냐 묻고는 본인도 딸을 키우신다며 갑자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집 앞의 호박 넝쿨에서 애호박 하나를 따주시며 가서 아이들 애호박 된장국 끓여주라면서 손에 또 들려주신다.
만 원어치 고춧가루를 사러 왔다가 손이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미안해서 안된다고 하는데 “우리 집 애호박이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최고에유”라는 흥겨운 충청도 사투리에 더 이상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딸과 함께 돌아오는 길.
차 뒷자리에 실려있는 고춧가루, 고구마, 애호박을 보니 괜스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온다. 마치 명절날 고향집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받은 농산물들을 집에 들고 가 아내가 말한다. “당진도 사람 살만한 곳이네”
아내와 나 모두 ‘당진’은 물론 충청도는 와 본적도 없는 곳이었다.
입사 초기에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마음 둘 곳 없는 당진 생활에 힘들어한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랬던 당진에서 오랜만에 ‘사람의 정’을 느낀 것 같아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가끔씩 그분의 집 근처를 지날 때면 그날의 푸근한 정과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그 날, 그 분이 주신 것은 단순한 고구마와 애호박이 아니라 앞으로도 당진에서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줄 ‘비타민’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어젯밤에 찬장을 열어보니 고춧가루가 떨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그 집 아이들이 좋아할 빵이라도 사 들고 고춧가루를 다시 사러 꼭 가야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볼 수도 있으실 그분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글_박재영(당진제철소 기술지원팀)


심사평 소설가 조현
고민 끝에 선정한 박재영님의 에세이 <유곡리 정(情)아저씨>에는 고춧가루를 사러 다녀오면서 체험한 따뜻한 인심이 당진이라는 지역의 포근함과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분이 안겨 주신 것은 단순한 고구마와 애호박이 아니라 앞으로도 당진에서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줄 ‘비타민’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언젠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방금까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던 것이 붓을 들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전부 사라져 버립니다.”라며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적은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만큼 어려운 글쓰기에 도전하신 사우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소설가 조현
소설가 조현은 ‘2008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11년 발표한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민음사)는 문화관광부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6 이상문학상’에 「그 순간 너와 나는」이 우수상으로 선정됐고 이 밖에도 ‘2012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7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외 다수의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많은 단편소설이 선정되었다.

8월 심사위원: 양승모(시인), 이은용(동화작가), 조현(소설가), 최경실(시인)


7월부터 시작된 사우문예 접수 기간은 오는 11월 5일까지이며, 선정된 작품들은 12월까지 <쇠부리토크>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이메일 접수, talk@hyundai-ste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