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을 풍미했으나 어느 새인가 잊혀져 있던 과거의 산물들이 다시 ‘핫한 것’으로 재등장 하는 요즘이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레트로(retro)와 뉴(new)를 조합해 ‘뉴트로’라 하는데 과연 뉴트로는 어떻게 등장해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혼성그룹 전성시대를 재현한 싹쓰리. 사진 출처 유튜브 캡쳐
#대세는 뉴트로
백곰을 보고 더 이상 밀가루를 떠올리지 않는 요즘 세대에 위기의식을 느낀 대한제분은 각종 컬래버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뉴트로의 상징이 됐다. 사진출처 CU제공
바야흐로 뉴트로 열풍 시대다. 뉴트로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에 ‘뉴(New)’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로 중장년층이 즐기고 소비한 과거의 레트로가 1020세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먼저 대중문화계를 살펴보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음악, 드라마 들이 다시 활발히 소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정현, 터보, 소찬휘, 듀스 등 이른바 ‘탑골공원 가수’들의 음악이 유튜브를 점령한지 오래다. 재밌는 이야기의 힘은 세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과거 엄청난 시청률을 올렸던 드라마들의 재활약도 눈부시다. <허준> <대장금> <주몽> <야인시대> <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사랑과 전쟁> 등 레전드로 꼽혔던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재편집 돼 유튜브에 노출되거나 아예 화질을 향상해 풀 버전으로 VOD 서비스에 공급되고 있는 것.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1020대들이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OST “복수할거야”나 <다모>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 같은 대사를 꿰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MMORPG보다 좋다! 슬램덩크 매니아들을 설레게 만든 모바일 게임 ‘슬램덩크’. 사진 출처 디엔에이 제공
게임산업 역시 뉴트로의 영향을 세차게 받고 있는 곳이다.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했던 ‘슬램덩크’가 모바일 게임으로 등장해 다시 강백호, 서태웅을 자처하는 유저가 생겨나는가 하면, 2000년대 초반 대학생들을 도서관이 아닌 PC방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던 ‘카트라이더’도 다시금 전성기를 맞았다. 추억의 고전 게임이 1020에겐 신선함으로, 3040에겐 과거의 향수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피처폰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18년 만에 다시 돌아온 홀맨. 사진 출처 유튜브 캡쳐
그런가하면 그때 그 시절로 소환시켜주는 빛바랜 캐릭터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밀가루부터 떠오르던 곰표의 곰은 CGV팝콘,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캔 맥주 등과 콜라보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점령하는 가장 핫한 캐릭터가 됐다. 아버지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던 두꺼비 소주는 요즘 20대의 술상에 앉아 인증샷 세례를 받고 있으며, 유독 큰 머리를 자랑하며 어리버리한 컨셉으로 사랑받던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의 ‘홀맨’은 최근 18년만의 컴백을 예고해 전방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피처폰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던 홀맨은 몇 달 전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80바이트 이내 문자들을 소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누가 홀맨을 다시 소환시켰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과거 친숙했던 캐릭터의 재등장이 반갑기만 하다.
#왜 뉴트로에 열광할까?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통해 매력적인 뉴트로 감성을 표현한 방탄소년단. 사진 출처 BTS 공식 유튜브 캡쳐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를 통해 뉴트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레트로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지난날의 향수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를 모르는 1020 세대들에게 옛것에서 찾은 신선함으로 승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뉴트로 열풍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30~50대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뉴트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나 요즘처럼 안팎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즐겁고 무탈했던 과거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온통 세련된, 최첨단, 고도의 기술을 접하며 살아온 1020대에게 어설픔과 단조로움은 오히려 색다른 매력으로 어필 될 수 있다. 여기에 낡고 허름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을 발굴해 SNS에 알리는 것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요즘 세대들의 특질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뉴트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반짝했다 금방 시들해지는 유행을 숱하게 경험해왔다. 뉴트로 역시 ‘퇴물’로 취급받을 날이 올지 모르지만, 현재의 대세임은 틀림없다. 80년대 섬유산업 성지였던 대구는 산업이 쇠퇴하면서 버려진 폐건물을 이제는 음식점, 카페 등으로 개조해 핫 플레이스가 되었고, 인천은 뉴트로가 가미된 원도심 관광 콘텐츠 상품을 개발, 복고 여행의 유행을 견인하고 있다. 레트로가 전 세대들에게 나름대로의 친숙함과 신선함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레트로를 내세운 각종 상품이 만족스러운 품질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똑똑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레트로 상품의 특징인 지속가능한 가치와 진정성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성을 보다 발전시킨다면 세대와 세대의 소통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레트로에게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글 「쇠부리토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