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매일 마주해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상반기에만 3권의 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유연하게 오가는 작가 남궁인. 어떤 모습이건 남궁인의 시선은 냉철한 듯하지만 그 안에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위로가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의사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막연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날카로워 보이는 안경을 쓰고 근엄한 표정으로 의학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사람. 어떤 희로애락도 허락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사의 모습 말이다.
‘글 쓰는 의사’ 남궁인은 이런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로 활동 중인 그는 응급실에서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담담하게 에세이로 풀어낸다. 2017년 <만약은 없다>를 시작으로 <지독한 하루> <제법 안온한 날들> 등 총 7권의 책에 응급실 의사로 겪은 에피소드들을 담아냈다. 그의 에세이 안에는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더 슬픈 비극,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감동 스토리,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일상이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지금. 그의 에세이를 닫고 나면 더욱 일상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삶에 있어 ‘만약은 없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은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는 그런 가정이 사실로 일어나는 곳이다. 의사 남궁인에게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도 <지독한 하루>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일은 찾아온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된다. 의사 남궁인은 응급실에서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을 마주하며 기꺼이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Q. 인터넷에 코로나 관련 글을 올린 것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 차 중국 현지에 머무를 때였어요. 며칠째 촬영만 하느라 한국의 코로나19가 그렇게 심각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도 코로나19가 심해져 촬영이 통제됐고 꼼짝없이 호텔방에 머무르게 됐어요. 호텔에서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고 그저 사람들이 공포심에 떨고 있었어요. 그래서 의사로서 알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을 정리해서 SNS에 올렸습니다.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기 쉽게 써보려고 했죠. 갑자기 이 글이 화제가 되어 하루 만에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Q. 환자들을 만나며 ‘이 사람은 글로 남겨야겠구나’라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근무할 때마다 한 두 번씩은 찾아옵니다. 세상의 ‘기 막힌 사연’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니까요. 응급실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으니 그만큼 다양한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개인에게 큰 일이 발생하면 그 이후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응급실에 온다는 건 일상생활을 하며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큰 일을 겪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때마다 글로 적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Q. 응급실에서의 하루를 글로 적으며 한 번 더 리마인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힘들수록 직면해야만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그제 새벽에 한 환자가 응급실에 왔습니다. 20대 젊은 남자 환자였는데 사연이 이렇습니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새벽에 숨을 쉬지 않는 것을 여자친구가 발견해 실려온 것입니다. 술을 마시거나 특별히 무리를 한 일도 없었습니다. 너무 젊고 건강했던 환자였기에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 모두 살리기 위해 애를 썼고 심폐소생술 끝에 간신히 살려 놓고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인데 애인이 자다가 그렇게 쓰러지는 경험을 한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거죠.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이걸 글로 적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응급실 의사인 동시에 작가인 삶.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둘 다 정말 좋아하는 일입니다. 계속 의학을 공부했고 공부한 지식을 그대로 사람들을 위해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의사의 매력입니다. 사람들은 가장 불편하고 아플 때 저에게 오는데 그동안 배운 걸로 아픔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이 참 좋습니다. 작가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꾸어 왔습니다. 글 쓰기를 놓아본 적이 없어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도 있죠. 하지만 응급실 당직 후 집에 돌아와 잠이 들 때 ‘내가 작가로서 다시 눈을 뜨겠구나’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Q. 의사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응급실 의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10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인턴 시절 응급실에 근무하며 ‘나 스스로 자극이 되고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발전시킨다는 생각도 들었죠. 어머니도 응급실 의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고 힘든 일일수도 있지만 나를 달라지게 하는 일에 직면해보고 싶었습니다. 10년 전 대학병원 응급실은 20대 후반, 사회생활 1~2년차 한 의사에게 대학병원의 모든 응급실 환자를 맡기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뒤에서 도와주거나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너무 많은 책임과 비극들이 쏟아졌고 매일 집에 돌아와 울면서 글을 써서 남겼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 참 소중합니다.
Q. 의대생 시절 국토대장정을 비롯해 각종 아르바이트까지 섭렵했다고요. 어찌 보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평범한 의사이고 싶지 않았어요. ‘의사’하면 환자를 진료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식의 고정관념이 싫었습니다. 의사지만 일반적인 대학생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해보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세계일주도 몇 번씩 하고 중국 어학연수도 떠났던 것 같아요. ‘평범하지 않게 많은 일들을 하자’가 삶의 목표입니다.
Q. 의사, 작가 뿐 아니라 축구, 밴드, 요리까지 그야말로 다재다능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음악을 하는 사람 역시 목표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까먹거나 썩히지 않으려고 애를 썼죠. 어제도 시간을 내서 연주 연습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죠. 앞서 연장선상처럼 이야기하지만 좋아하니까 하는 활동들입니다. 모든 걸 잘하는지는 의문이지만요.(웃음)
Q. tvN 교양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지독한 삶의 현장’이라는 주제로 응급실에 대한 강연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강연 활동도 꾸준히 하고 계시죠?
강연에서는 주로 ‘응급실과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지난 달 사법연수원 강연에서는 판사 100분에게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처음 접하는 이야기에 상당히 놀라시더군요. 응급실은 병원이지만 그 자체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갖 사건 사고 후 찾아오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니까요. 학교 폭력이나 살인사건, 자살 등 다양한 원인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사회의 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사회적인 약자들을 많이 만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최근 에세이는 좀 더 가볍고 말랑말랑하다는 느낌이에요.
3월에 출간한 <제법 안온한 날들>은 제 나름대로 변신이었습니다. 지난 책인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의 경우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하게 응급실의 잔혹함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응급실의 잔혹함 속에서도 나름 피어나는 사랑이라든가 따뜻함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7월에 나온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겠니?’라는 마음으로요. 앞으로도 글은 계속 변해가고 또 다른 방향으로도 바뀔 수 있죠.
Q. 작가로서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 있나요?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지어낸 이야기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 그런 소설에 계속 관심이 가고 욕심이 납니다. 완벽한 이야기로 구성이 되면 소설을 써볼 생각입니다.
Q. 오늘도 ‘지독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을 위해 위로의 말을 해주신다면요?
코로나 시대에 다들 고생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픈 것이 국가적으로, 또 개인적으로도 너무 고된 일이기에 진정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의료진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 의료진이기에 신체적인 건강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생활속에서 나오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나봅니다. 좋은 글 읽었습니다
좋은글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