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20세기 들어 예술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부상한 철.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예전 어린이들은 동네 공터에서 길가의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 이가 나간 그릇 같은 것을 가져와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형형색색의 장난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보석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예술가들이 만드는 작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꼭 맞는 것을 재료로 삼아 자르고 다듬어 모으기 때문이다. 그 재료가 우리가 익히 아는 물감이나 대리석이 아니어도 말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일상의 재료, 철
철은 우리 일상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다. 철이 없다면 집도 지을 수 없고, 자동차도 만들 수 없다. 하다못해 한국인은 수저도 철로 만들었다. 예술가들 역시 이런 철의 특성에 주목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돌이나 나무로 조각을 만들곤 하던 유럽의 조각가들은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철마가 다닌 지 오래되었고,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배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시대인데 왜 미술 작품은 철로 만들지 않을까?’ 처음 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러시아의 예술가 타틀린(Vladimir E. Tatlin)은 대표적인 산업 재료인 철이 예술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1백여 년이 지나면서 이제 철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우리 삶과 함께하는 재료가 되었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철이 예술의 미래’라고 주장했던 블라디미르 타틀린이 만든 ‘제8080803인터내셔널 기념탑’, 1919년.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가 철로 만든 세계는 현실의 모습이다. 보로프스키의 대표작품인 ‘해머링 맨(Hammering Man)’을 보자. 해머링 맨은 말 그대로 망치질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1980년부터 런던, 파리, 시애틀 등 유명 도시에서 세워졌다. 2002년에는 일곱 번째로 서울의 광화문에 세워졌다.

이 해머링 맨은 매일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함께 ‘실제로’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저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상이 아니라 실제 망치를 든 팔이 35초에 한 번씩 움직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머링 맨의 모습은 다양한 분야에서 규칙적으로 시간에 맞춰 노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해머링 맨은 비나 눈이 내려도, 태풍이 불어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모습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Hammering Man)’.

철, 공공예술에 적합한 재료로 부상하다
오늘날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예술작품에 철을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견고함과 안정성이라는 특징 덕분이다. ‘해머링 맨’이 세워진 광화문처럼 사람이 많이 오가는 야외에 세워진 작품은 쉽게 변하거나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철은 전통적으로 조각에 사용하던 돌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들 수 있으며 나무나 청동에 비해 견고하다. 이 같은 특성 덕에 철로 만든 조각은 대중이 자주 다니는 공공의 장소에 세워져 누구나 쉽게 예술을 감상하고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금속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최만린 작가의 ‘태(胎)’, 1986년.

그러나 견고한 철을 재료를 사용해 공공장소에 설치한 미술 작품 중에는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해 논란이 되었던 경우도 있다. 먼저 강남 테헤란로의 빌딩 앞에 놓인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아마벨(Amabel)’은 산업사회의 폐기물인 고철들을 모아 꽃처럼 만든 작품이다. 지금은 강남을 상징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지만 처음 세워졌을 때는 흉물스럽다는 비난이 있었다. 또 뉴욕의 연방플라자 광장에 설치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아치(Tiltled Arc)’는 아예 설치 8년 만에 철거됐다. 아무런 형상도 없이 그저 기울어져 있는 거대한 철판이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표현하고 마음을 달래주는 재료, 철
철은 금속 특유의 가소성(可塑性, 외력에 의해 형태가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의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예술가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한국 작가 중 철을 이용한 조각을 선보인 1세대 작가는 최만린이다. 1977년 주공아파트 단지 앞에 청동으로 주조한 ‘태’를 시작으로, 그는 금속성 재료를 마치 흙을 다루듯 부드러운 형태로 빚어냈다. 또한 동판이나 철을 용접봉으로 녹여 연결하거나 철을 쌓아 올리고 이어 붙여 원하는 형태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냈다.

이런 가소성과 견고함 덕분에 굳건한 예술작품이 되는 철은 우리 삶 속에서 더 가깝게 말을 걸기도 한다. 요절 작가 구본주는 ‘미스터 리’ 시리즈를 통해 도시의 삶에 쫒기는 우리의 일상을 보여준다. 특히 H빔을 사용한 작품에서는 마치 평균대를 건너듯 위태롭게 시간에 쫓기는 우리의 모습을 왜곡된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나라의 흔한 성씨 중 하나인 ‘이’씨 성을 가진 남자를 부르는 ‘미스터 리’이다. 하지만 왜 이토록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지가 정말 ‘미스터리’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 모습을 과장해서 해학적으로 표현한 구본주 작가의 ‘미스터 리’, 1999년.

구본주의 작업이 철을 통해 우리의 힘든 삶을 보여준다면 유영호는 ‘그리팅 맨(Greeting Man)’을 통해 바쁜 도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히는 푸른 빛깔의 ‘그리팅 맨’은 그 대상이 누구든 ‘당신은 존중받을만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결이 아닌 화합을 의미하는 유영호의 인사하는 남자는 한국을 넘어 에콰도르의 분쟁 지역 등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또한 얼마 전 헐리우드 영화 <어벤저스(Avengers)>에도 등장했던 ‘미러맨(Mirror Man)’ 역시 유영호의 작품으로 영화를 통해 대중과 더 익숙해지게 되었다. 붉은 사각형을 사이에 두고 마치 거울 속 이미지를 보듯 마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문화 혹은 가치관 등의 만남을 보여주는 듯하다.

철제 예술 작품은 이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H-STEEL 아뜰리에의 시민 참여 조형물, ‘Let’s Fly 날개로, 희망으로’.

철제 공공예술 문화공간으로 아름다움을 나누는 현대제철
작년, 현대제철이 당진시의 삼선산수목원 내에 ‘철제 공공예술 문화공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도 현대제철은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사업의 하나로 철제공공예술 프로젝트 ‘H-STEEL 아뜰리에’를 진행하며 철을 기반으로 한 예술조형물 제작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원에 설치된 철제 공공예술 작품을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철은 이제 예술작품으로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선물하고 있다. 철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더 없이 소중한 재료가 될 것이다.

허나영(미술 평론가)

  • 철은 인간과 뗄 수 없는 소중한 재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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