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현대 가구의 문을 열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thonet

철은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재료다. 산업혁명은 주물이나 압형 같은 대량생산 기술로 물건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당대의 그런 첨단 기술은 철의 대량생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철과 같은 금속은 액체로 녹이고 다시 고체로 굳힐 수 있는 재료로 고대의 동전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금속활자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 이전에도 대량생산 기술에 늘 응용되었다. 그리고 18세기부터 더욱 발전된 제련 기술에 따라 다리와 같은 대형 토목공사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1777년 영국의 공업도시 슈롭셔(Shropshire)에 처음으로 주철 다리가 놓였다. 철로 만든 최초의 토목 건축물이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1851년, 런던에서 거대한 투명 전시장인 ‘수정궁’이 철과 유리로 단숨에 건설되면서 바야흐로 근대적인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했다.

철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만든 새로운 예술
토목과 건축 재료로서 철은 석재와 비교해보면 더 가볍고 더 강한 동시에 공사 기간을 훨씬 더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다. 즉 경제성이 우수하다. 이러한 장점을 가구에 적용한 최초의 건축가는 독일의 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다. 그는 1820년대에 주물 기술로 연철 의자와 벤치를 생산했다. 하지만 금속 의자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 그친다. 가구 재료로는 아니더라도 건축 재료로서 철은 19세기 말 아르누보 시대에 만개했다. 식물의 덩굴이나 채찍 같은 구시대적인 장식적인 형태와 선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이 양식을 ‘새로운 예술, 아르누보(Art Nouveau)’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바로 새로운 재료, 즉 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아르누보 건축은 철을 사용해 덩굴 같은 고전적인 장식을 표현하곤 했다.

아르누보 건축가들이 철에서 발견한 것은 ‘경제성’과 함께 철이 가진 ‘조형의 자유로움’이다. 그 결과 물결치는 기둥이 가능해졌고, 복잡한 곡선을 가진 의자도 탄생했다. 프랑스의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는 움베르 드 로망(Salle Humbert de Romans) 콘서트 홀에 쓰일 의자에 철제 프레임을 적용했다. 우아하고 유기적인 곡선의 프레임은 장식적이면서도 매우 튼튼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철이 의자 재료로 선택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콘서트 홀이라는 대형 공간에 대량으로 납품해야 하는 의자는 경제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관리가 편리해야 하고 주인이 없는 만큼 거칠게 다뤄질 수 있으니 강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재료로서 철의 선택은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철제 가구가 가정의 실내에 보급되기까지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철, 모던 가구의 문을 열다
본격적인 철제 가구의 등장은 유럽이 경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요로운 유럽을 끝장냈다. 특히 패전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독일은 어느 유럽 국가보다 합리적이고 기능적이며 경제적인 원칙을 건축과 디자인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런 열망이 철이라는 재료가 가구에 폭넓게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을 실현한 곳은 바로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교육 기관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디자인 교육기관이었던 이곳에서는 공장의 대량생산 기술에 어떻게 하면 예술적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철 등을 이용해 기능적인 디자인과 예술성을 조화시켰던 바우하우스.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생산 기술이 적용된 디자인은 귀족 사회의 실내를 흉내 낸 과잉 장식 스타일이었다. 반면 바우하우스에서는 과거 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조형을 추구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에서 더욱 진보한 20세기의 산업사회에 어울리는 양식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선과 형태로 표현한 기하학적인 디자인이다. 이런 조형의식에 따라 철을 재료로 하되 단순한 형태를 적용한 최초의 의자가 탄생한다.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었던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1925년 디자인한 B3 의자가 그것이다. 이 의자의 디자인에는 구시대의 장식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마치 모더니즘 미술의 추상주의가 가구에 실현된 듯 오로지 의자를 구현시키는 프레임이 전부다. 구시대의 의자가 물질감으로 꽉 차 있다면 선으로 구성된 철제 프레임이 조형의 전부인 B3는 비물질적으로 보인다. 이 의자는 실생활 면에서도 기존의 나무 의자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관리가 편하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바우하우스의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B3 체어.

모더니즘(Modernism) 하면 ‘과도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 그에 따른 ‘세련된 조형’이라는 시각적 특징을 가진다. 이것을 구현하는 데 속이 비어 있는 강철 파이프만한 재료가 또 있을까? 마르셀 브로이어는 B3 의자에서 발견한 철의 장점을 계속 실험했다. B3는 비교적 고급스러운 라운지 체어다. 그에 반해 철제 프레임 위에 목재 상판을 얹은 사이드 테이블은 형태적으로 최소한의 조형만을 남겼으며 대단히 실용적이다. 다양한 크기의 사이드 테이블은 바우하우스 작업실과 기숙사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930년에는 철제 책상도 디자인했다. 브로이어는 현대의 철제 가구를 보편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20세기 초반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철제 가구들. ©thonet

B3의 등장과 함께 강철관의 장점이 알려지자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앞다투어 철제 가구를 디자인했다. 브로이어와 동시대 인물인 마르트 슈탐(Mart Stam)은 최초의 강철관 캔틸레버(cantilever, 외팔보) 의자를 디자인했다. 캔틸레버는 하나의 기둥만으로 보를 지탱하는 것으로 철골조와 철근 콘크리트가 탄생시킨 현대적인 건축 구조를 말한다. 슈탐은 브로이어보다 간발의 차이로 앞서서 캔틸레버 의자를 디자인했다. 캔틸레버 의자가 가능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강철관이라는 재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철관은 가볍고 자유롭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시대 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역시 캔틸레버 의자인 MR10과 MR20를 1927년에 발표했다. 이 의자는 우아한 곡선 덕분에 조금 썰렁해 보이는 슈탐과 브로이어의 강철관 캔틸레버 의자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4 의자. ©cassina

더 실용적이고 간결하게, 20세기 철제 가구의 진화
독일에서 시작된 철제 가구는 프랑스와 이태리, 북유럽 모던 건축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비롯한 프랑스의 모던 건축가들 역시 앞다투어 철제 가구를 디자인했다. 단, 바우하우스의 가구들과 달리 프랑스 건축가들의 가구는 조금 더 고상하고 고급스럽다는 차별점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1929년 선보인 라운지 의자 ‘셰이즈 롱(LC4 Chaise Longue)’은 부드러운 곡선과 소가죽 처리가 돋보인다. 또 1928년 르네 엡스트(Rene Herbst)가 디자인한 안락의자는 우아한 곡선과 푹신한 쿠션으로 인해 장식성이 강한 프랑스 실내에서도 위축되지 않을 만한 디자인이다. 반면 장 푸르베(Jean Prouvé) 가 디자인한 일련의 철제 의자와 테이블은 견고하고 창의적인 구조에 더욱 매진한 결과 그만의 독창적인 조형을 탄생시켰다. 또 높은 실용성으로 인해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 널리 보급되며 철제 가구의 보편화에 기여했다.

철이 자동차, 선박, 건설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 때도 애용된다. 철제 가구는 이런 역사적, 기술적 배경 아래 탄생해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합판과 강철 프레임을 결합한 임스 부부의 의자 ©vitra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은 보편적인 양식이 된다. 이때 철제 가구도 우리 생활에 밀착하게 된다. 20세기 전반 강철관 가구 시대에는 대부분 프레임으로 철이 쓰이고 의자의 좌석이나 테이블 상판은 나무, 천, 가죽이 쓰였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강철 프레임과 합판의 결합이 보편화되었다. 이 결합이 20세기 후반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 된 것은 합판이라는 재료가 나무나 천, 가죽보다 훨씬 저렴하고 관리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실현시킨 사람은 미국의 부부 디자이너 찰스 임스(Charles Eames)와 레이 임스(Ray Eames)다. 철제 프레임과 합판으로 구성된 의자와 테이블은 그 뒤 덴마크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독일의 에곤 아이언만(Egon Eiermann), 영국의 어네스트 레이스(Ernest Race) 등 무수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활용했다. 우리는 특히 학교의 의자로서 그런 사례를 익숙히 보아왔다. 21세기에도 철제 가구는 그보다 저렴한 플라스틱 가구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가구로 각광받고 있다.

김신(디자인 평론가)

recommend 0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