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로 인사를 시작하는 엄홍길 대장의 마음은 늘 네팔을 향해 있지만, 코로나19로 네팔에 못 간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엄홍길 대장은 주말마다 산을 오르고 네팔 현지 학교 건립 사업을 추진하며, 인생 제2막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산 살이 59년 차 엄홍길 대장을 초록이 짙어진 북악산 자락 밑에서 만났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 엄홍길의 성취 뒤에는 뜨거운 열정과 함께 산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에게 산은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곳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에게 산을 오르는 것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잘 내려와야 진정한 성공’이라고 엄홍길 대장은 통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은 자신을 허락한 히말라야 산에 보답하기 위해 네팔 오지에 학교와 병원을 짓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도전의 아이콘’이다.
얼마 전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하신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외국인 4명이 24시간 안에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반에 도전하는 ‘쓰리픽스 챌린지’ 장면을 지켜보셨는데요. 소감이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신선하고 아름다운 도전이었습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 산악인구가 1500만 명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명산을 하루 만에 등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자체가 대단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방송에서 UDT 출신임을 공개해 패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5박 6일간 경주에서 독도까지 바다를 헤엄쳐 간 일화를 공개하셨는데요. 도전정신이 DNA에 새겨져 있나 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산을 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전정신이 제 몸에 밴 것 같아요. 어려운 고비를 하나하나 이겨나가 결국 원하는 결과물을 성취했을 때 맛보게 되는 만족감이 안주하는 삶보다는 계속 도전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도 UDT를 지원하게 됐죠. 사실 6개월간의 UDT 훈련 과정은 정말 혹독합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요. 그런데 우리 삶도 똑같습니다. 힘들다고 주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힘든 군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저를 단련시켰고, 이후 저의 산악인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도전을 즐기시는데 코로나19로 누구보다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산에 오르시나요?
저를 비롯해 모든 분들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네팔을 여러 번 다녀왔겠지만, 지금 1년 넘게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만저만 답답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주말에는 무조건 근교의 산을 오르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지방의 산들을 다닙니다. 하늘길로 이동할 수 없으니 산으로 바다로 나름 바쁘게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웃음).
젊은 엄홍길을 산에 오르고 바다를 헤엄치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구나 산에 오르지만 누구나 히말라야에 오르는 건 아니니까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9월 15일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상돈 선배님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큰 군용 무전기와 태극기를 들고 눈 속에 서있는 선배님의 사진을 보면서 ‘이 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막연하게 히말라야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고, 나도 저기를 올라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 16좌 완등’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닙니다. 수없이 산을 오르셨겠지만, 대장님 산악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산행을 꼽으신다면요?
안나푸르나죠. 해발 8091미터의 안나푸르나를 4전 5기 만에 겨우 올랐습니다. 사고도 당했고, 거기서 동료를 3명이나 잃었습니다. 특히 네 번째 도전할 때는 7600미터 지점에서 30미터 빙벽 아래로 추락해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큰 사고를 입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쪽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서 덜렁거리더군요. 후배에게 다리를 잘라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고통이 너무 심했어요. 다리를 고정할 부목도 없는 상황에서 2박 3일간 발꿈치로 기고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죽음의 사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구조되어 살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열 달 만에 다시 도전해서 결국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죠.
엄홍길에게 실패는 무엇이고,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실패의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많은 실패가 해내고 말겠다는 저의 신념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온도를 견뎌야 더 강한 쇠가 되듯이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은 성공의 밑거름이 됩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순 없습니다. 신이 받아줘야 오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안 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되 과욕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등정(登頂)보다 등로(登路)에 집중하는 것이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산의 중요성도 강조하셨고요.
성공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값어치가 떨어지는 성공이 있고, 실패하더라도 성공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경험이 있고요.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열심히 할 걸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죠.
인생에서 성공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상의 자리는 잠깐입니다. 죽을 각오로 정상에 오르지만 기쁨은 잠시고, 살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무사히 내려와서 출발 지점에 도착해 산을 올려다볼 때야 비로소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성취의 순간이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 이후의 뒤처리를 잘 하지 못해서 성공이 퇴색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행이든 인생이든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하산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인생 2막의 새로운 도전을 하고 계신데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주세요.
2007년 5월 31일, 평생의 염원이었던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하게 해주면 성공의 영광을 혼자 누리지 않고 봉사하며 살겠다고 신에게 기도했었죠.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자아도취에 빠져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히말라야와 약속한 게 생각난 거죠. 계약서를 쓴 건 아니지만요.(웃음) 열악한 환경에서 꿈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그것을 이루게 하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했죠. 네팔 오지에 학교를 세우겠다는 제 뜻에 지인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어 재단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2009년 5월 5일 공사를 시작해 매년 1∼2개씩 학교를 지어, 작년 1월 25일까지 16개 학교를 완공했습니다.
평생 도전을 하며 살아오셨는데요. 아직 아쉬움이 남는 도전이 있나요?
오를 수 있는 산은 다 오른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데도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투를 벌이며 산을 오르던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극한의 세계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때가 있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두 다리에 힘이 붙어 있는 한 산을 계속 오를 겁니다. 사실 저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까요. 그러니 감사하고 살아야죠.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에 등산만큼 좋은 것도 없을 텐데요, 건강하고 안전하게 등반하기 위한 팁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올라갈 일만 생각하지 말고 하산의 과정까지 생각해서 체력을 안배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STUDIO INDIE 203)
영상 더기스튜디오(Duk2studio)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 인생의 마무리도 중요하다” .말씀….감사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에 임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잘 보고 갑니다. 현대제철 화이팅~!!!
대장님의 말씀에서 잘배우고 갑니다
도전해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