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유난히 답답하게 보냈던 탓인지 시원한 바람과 푸른 하늘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럴 때도 집에 있어야 하는 우리의 쓰린 속을 달래줄 말랑말랑한 멜로 영화를 추천한다. 한국영화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멜로 영화들을 한데 모았다. 주말엔 이 영화들을 보며 추억 여행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전지현, 이정재가 역대급 비주얼을 선보인 영화. 당시에는 두 배우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을뿐 대중에게는 외면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안개가 둘러싸인 바다에서 주인공 은주(전지현)이 편지함이 편지를 넣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2000년에 살고 있는 은주의 편지를 1998년에 살고 있는 성현(이정재)이 받고, 미래의 은주와 과거의 성현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편지는 고사하고 메일도 주고 받지 않는 요즘, <시월애>는 느리지만 진심을 다해 전달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영화다. 차분한 영상미와 OST까지 모두 갖춘 영화 한 편이면 다가오는 10월을 좀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로 시작하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영화. 지금은 한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이 함께 출연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중년까지 폭넓은 시간을 연기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우산 대용으로 쓰고 달리던 지혜(손예진)와 상민(조인성)의 캠퍼스 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영화는 안 봤어도 OST와 그 장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1인 2역을 맡은 손예진이 연기한 1968년의 주희는 시골 삼촌댁에 놀러온 준하(조승우)와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연애 세포도 죽어 감정이 한껏 메말라져 있다면 마음의 동요가 일 수밖에 없는 <클래식>을 추천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공간 미술관과 동물원. 미술관은 아름답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가선 안 되는 공간이다. 반면 동물원은 동물들의 소리와 냄새, 사람들의 소리까지 가득한 살아있는 공간. <미술관 옆 동물원>은 미술관처럼 고여있고 멈춰있는 사랑을 하는 춘희(심은하)와 동물원처럼 생기있고 활기찬 사랑을 하는 철수의 짧은 동거를 그린 영화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심은하의 아름다운 시절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예뻐보이려 애쓰지 않아서 예쁘고,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춘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그렸다. 이성재 역시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의 신인남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와 각본, 영상미 모두 훌륭한 영화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태어나는 이후부터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청춘이 시한부를 선고받으면서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그린다. 주차단속요원인 다림(심은하)과 동네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정원(한석규)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된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정원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온 인물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일상에는 그 어떤 동요도 없다. 하지만 다림을 만나게 되며 그 초연함에는 파장이 생긴다. 영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정원이 아버지(신구)에게 리모콘 작동법을 알려주며 화를 내는 모습을 눈물이 터져 나오는 명장면이다.
취재_유하용(인천공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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