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엄마랑 팔도비빔면 한 그릇 깨끗이 먹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어” “귀엽겠다. 그런데 솔직히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거든. 굳이 안 알려줘도 된다!”
위 문장의 해석본이다. 분명 한글은 한글인데 외국어만큼이나 ‘번역’이 필요한 단어와 문장들.
창조주(엄마)/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 완면하고(한 그릇 깨끗이 먹고)/ 음쓰(음식물 쓰레기)/ 뽀시래기(귀여운)/ 댕댕이(강아지)/ 커엽(귀엽다)/ 버트(그러나)/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넘(너무)/ TMI(Too Much Information 지나치게 많은 정보)
신조어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그중 많은 단어들이 어느새 표준어가 되는 과정을 거쳐왔지만 요즘 신조어는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고, 전파 속도도 5G급. 신조어의 중심에는 10대들이 있다. 그 때문에 한편에선 요즘 신조어를 ‘급식체’라 부른다. 학교에서 도시락이 아닌 급식을 먹고 자란 또는 자라고 있는 세대, 1020 세대들이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통화나 문자보다 ‘카톡’에 익숙한 이 세대는 특히 단톡방에서 자신의 의사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줄임말을 쓰거나, ‘제발’과 ‘뭐임’의 오타인 ‘젭라’ ‘뭥미’같은 단어를 그대로 쓴다. 이러다 보니 어제의 신조어는 오늘은 일상어가 되어 TV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아무 설명 없이 등장하곤 한다. 아직은 따끈따끈한 2019 신조어들을 3가지로 묶어 보았다. 5분 뒤엔 당신도 ‘급식체’ 알아듣는 ‘인싸’가 될 수 있다.
신조어 익히기 STEP 1_줄임말
얼죽아, 오놀아놈, 복세편살, 만반잘부, 자만추, 연서복, 낄끼빠빠, 인싸, 마상, 문찐, 버카충, 인구론
‘깜짝 놀랐다’와 ‘핫 플레이스’를 줄인 ‘깜놀’ ‘핫플’ 같은 줄임말은 이제 신조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어색한 말 때문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는 ‘갑분싸’나 ‘너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뜻의 ‘취존’ 같은 말도 TV나 인터넷에 익숙한 이라면 더 이상 어려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음식물쓰레기의 줄임말인 ‘음쓰’ 등등 새로운 줄임말은 쏟아져 나온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겨울에도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 것)/ 오놀아놈(오~ 좀 놀아본 놈인데?) /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 자만추(소개팅이 아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 / 연서복(막 제대해서 연애에 서툰 복학생)/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 인싸(인사이더 줄임말. 아웃사이더와 반대로 세상에 잘 적응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 마상(마음의 상처) / 문찐(문화찐따. 즉 새로운 문화에 적응 못하고 뒤쳐지는 사람),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인구론(인문계의 90프로는 논다).
이밖에 혼틈(혼란을 틈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빠태(빠른 태세 전환), 애뻬시(애교 빼면 시체), 지뺏(지인 뺏기), 초반(초면에 반말), 비담(비주얼 담당), 갑통알(갑자기 통장 보니 알바 해야겠다),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 등 줄임말은 오늘도 우주처럼 팽창 중이다
신조어 익히기 STEP 2_야민정음
세종머앟, 괴꺼솟, 띵작, 띵언, 커엽다, 괄도네넴띤, 머전, 윾튺브, 댕댕이, 롬곡
세종대왕이 들으면 탄식하겠다는 말도 옛말. 창의력 넘치는 ‘야민정음’의 세계는 세종대왕도 감탄할지 모른다. ‘야’자가 붙어 왠지 ‘야매 한글’ 같은 느낌을 주며 널리 퍼졌다. 야민정음은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끼리 서로 바꿔 쓰는 것이다. 상당한 수준의 한글 파괴지만 그저 유머로 받아들인다면 그리 얼굴 붉힐 일도 아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이상한 말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것이 특징.
세종머앟(세종대왕)/ 괴꺼솟(피커솟)/ 띵작(명작)/ 띵언(명언)/ 커엽다(귀엽다)/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 머전(대전)/ 윾튺브(유튜브)/ 댕댕이(멍멍이)
이밖에 롬곡(눈물)처럼 글자를 180도 회전하거나, 숲튽훈(김장훈)처럼 한자와 한글을 맞바꿔 장난을 치는 등 야민정음의 세계는 넓고 깊다. 그런데 이걸 다 알려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싸는 커녕 아싸(아웃사이더)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 유의하자.
신조어 익히기 STEP 3_변종 신조어들
무민세대, 뇌피셜, 혼바비언, 빼박캔트, 아이앰그루트, 뽀시래기, 핑프
특정 카테고리에 묶기도 어려운 변종들도 넘쳐난다. 이들은 줄임말이나 이른바 ‘야민정음’ 같은 특정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더 어렵다.
무민세대(한자 무(無) + 영어 mean의 합성어. 자극없고 의미도 없는 무위의 휴식을 꿈꾸는 세대), 뇌피셜(뇌 + 오피셜의 합성어. 객관적 근거없이 자신의 생각만을 근거로 한 추측이나 주장), 혼바비언(‘혼밥’ + 특정 출신, 인종 등을 가리키는 영어 ~ian, 혼자 밥 먹는 종족), 빼박캔트(빼도박도 + 캔트(못한다와 영어 can’t의 합성어)), 아이엠그루트(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캐릭터 그루트가 하는 말. 주로 욕을 해주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참아야 할 때 대신 사용), 뽀시래기 (부스러기를 이르는 전라도 사투리로 귀엽고 앙증맞은 사람, 동물)/ 핑프(핑거 프린세스의 준말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사람).
이렇듯 한글과 한자, 한글과 영어, 한자와 영문을 섞어버리거나, 이도 모자라 기존 줄임말에 영어를 섞는다. 특정 드라마나 영화 속 명대사를 관용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규칙이나 문법 같은 건 당연히 없으니 그저 외우는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음 조어가 채우니 시간을 들여 외울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밖에 초성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파생되고 있다. ㅇㄱㄹㅇ(이거레알), 일겅(이거레알의 줄임말), ㅂㅂㅂㄱ(반박불가), ㅈㄱㄴ(제곧네) 등은 이제 어지간한 40~50대도 아는 초성어의 고전. 올해엔 ㅇㄷ 와 ㅁㄴㅇㄹ이 각광받는다. ㅇㄷ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어디야?’라고 상대방의 위치를 묻는 질문형을 비롯해, ‘이득’ ‘개이득’의 줄임으로도 쓰인다. 상대의 안타까운 상황에 ‘너를 애도한다’는 의미로도 쓴다. 젊은 엄마들은 ‘아들’을 부를 때도 쓴다니 그야말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만능어. ㅁㄴㅇㄹ은 더한 만능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딱히 할말이 없을 때 키보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그대로 치는 것으로 특별한 의견이나 생각이 없을 때, 또는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쓰니, 알아두면 유용하겠다.
세조대왕이 보시면 놀라시겠네요. 신조어 참 문제가 심각합니다. 할많하않하지만 갑분싸 각이라 대유잼으로 받아들이고 진지충 댓글은 달지않겠습니다
재미있네요..세대차이 생길 수 밖에없죠.. 간격을 좁히고 소통할 수 있게 노력해 봅시다..
세대 간의 차이가 이런 문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