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서부 헤센 주의 최대 도시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공업·상업 중심지이며, 독일의 경제 수도로 여겨진다. 여기에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이 더해져 일 년 내내 모든 분야의 박람회와 전시회가 열린다.
전 세계의 다양한 산업 종사자들과 물자들은 오늘도 프랑크푸르트의 박람회장으로 향한다.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의 기원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첫 박람회는 중세시대인 12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상인들은 황제와 국가가 직접 보호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내린다. 이에 비단과 모피, 향료, 와인 등 갖가지 물품을 싣고 온 각국의 무역 상인들은 군인들의 엄호 아래 무사히 국경을 넘어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인 뢰머 광장에 도착한다. 이렇게 시작된 박람회는 1330년 루드비히 4세 황제가 봄에 제2의 박람회를 여는 것을 허락하면서 봄과 가을 연중 2회 개최라는 박람회의 뼈대를 확립했다.
약 800여 년의 긴 전통을 가진 프랑크푸르트 박람회는 현대에 들어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전용 박람회장인 프랑크푸르트 메세에서는 매년 40여 개에 달하는 박람회가 열리는데 특히 세계 5대 자동차 전시회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모터쇼와 세계 최대 책 박람회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널리 알려져 있다.
↑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모습
독일의 자동차, 프랑크푸르트의 모터 쇼
자동차 강국인 독일답게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하는 모터쇼는 그 규모와 명성이 높다. 1897년 베를린에서 소수의 상류층을 위해 자동차 8대를 전시한 것이 세계 최초의 모터쇼로 여겨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52년부터 프랑크푸르트로 터를 옮긴 모터쇼는 전 세계 자동차와 관련 부품, 기술의 각축장이 되었다. 나날이 성장하는 규모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91년부터 승용차는 홀수 해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상용차는 짝수 해에 하노버에서 행사를 치른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독일의 강점을 살려 기술적 측면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모터쇼의 역사가 곧 자동차 기술의 발전상과 나란히 이어짐을 알 수 있다. 1923년엔 디젤엔진을 장착한 트럭, 1931년엔 전륜구동 차량, 1939년엔 독일 국민차로 불리는 폭스바겐 비틀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1961년에는 최초의 안전벨트가 공개되기도 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세계최고의
북페어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인해 인쇄·출판은 일대혁명을 맞이했다. 이후 1478년 프랑크푸르트로 작가와 관련업자들이 모여들어 책 시장을 이룬 것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의 시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에서 각고의노력을 기울여 도서전을 다시 열었고, 1993년엔 사회주의도서전이었던 라이프치히 도서전과 통합하여 세계 최대의책 박람회로 거듭났다.
1976년부터는 한 나라의 출판 세계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주빈국 제도와 당대의 사회적 이슈와 맞닿은 특별 주제 선정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주빈국으로 선정돼 한국의 책과 문화를 널리 소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또한 도서전이 열리기 직전 평화와 인권을 위해헌신한 인물을 선정해 독일 출판업 평화상을 수여한다. 이상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평화상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