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나이 육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귀가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해서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표현했다. 말하기를 배우는 데는 2년이면 충분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침묵 가운데 상대의 진실을 듣는 지혜를 얻는 데는 무려 6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많은 디지털 사회에서 차분히 상대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경청’의 중요성과 의미를 살펴보자.
성공하는 기업의 조건
얼마 전 한 기업의 초청을 받아 강연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50대 후반으로 구성된 수강생들은 그 기업의 지점장들이었는데 그들의 빛나는 눈빛과 열정에 놀란 기억이 있다. 그들은 최고경영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이제 당신들 목숨이라도 내 놓으시오!’라고 외치기라도 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 같은 열정으로 가득한 분위기였다. 실제 그 조직은 당시까지 수 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고 이는 사상 최고의 실적이었다고 한다. 강연 후 최고경영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이토록 놀라운 조직을 구축했는지에 대한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사실 톱 리더로서 제가 한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부임한 이후 한 가지 시도한 것은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준 것입니다. 말단 배달사원들 뒤를 오토바이를 타고 2주간 따라 다녔습니다. 그냥 따라다닌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는 창구 직원들 곁에서 2주를 함께 했습니다. 다시 전산실에 들어가 함께 2주를 보냈지요. 이렇게 몇 개월을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니 어느 순간 조직이 놀랍게 바뀌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나 자신이 먼저 조용히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마음 속깊이 감춰진 이유들을 이해해 주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강요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구성원들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리더에게 신뢰를 갖는다. 자신이 ‘이해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할 때 그 신뢰의 정도는 임계점을 돌파하고 그 순간부터 구성원들 각자는 내면의 보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법이다.
내가 먼저 이해하려는 실천이 필요
경청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런 능력을 폐기학습(unlearning)능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인식틀, 즉 자기 눈에 가장 잘 맞는 도수의(인식의) 안경을 끼고 있는 셈인데 이는 마치 지문처럼 누구도 동일하지 않다. 같은 상황, 사건, 사물을 볼 때 그 누구도 동일하게 이해하지 않는다. 세상에 지문이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듯,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누구나 조금씩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표면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당연한 진실인 양 소리 높이는 일은 마치 맑은 하늘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 먹구름으로 어느 순간 뒤덮이는 것과 같다. 결국 잘 들을 수 있는 비결은 내 인식의 틀과 무의식 중의 편견을 내려 놓고 상대 입장으로 슬며시 자리바꿈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침묵 가운데 내 생각을 멈추는 일이다.
둘째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듣기란 결국 상대를 ‘내가 먼저’ 이해해 주려는 갸륵한 실천이다. 이해를 영어로 under+stand라고 하지 않는가? 겸손히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보자.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듣되 도중에 한 번씩 피드백을 해 주는 것이다.
여기엔 세 가지 영역이 있다. 낮은 단계는 앵무새 반응이다. 이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반사해 주는 것을 말한다. 중간 단계는 그동안 상대가 말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주는 반응이다. 가장 높은 단계는 상대가 느꼈을 감정까지 피드백하는 반응이다.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화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쉽지 않은 과정이긴 하지만 들을 때 우리 두뇌에서 이런 회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경청의 뇌를 소유한 듣기의 달인이 될 수 있다.
경청이란 열 개의 눈으로 듣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거대한 빙산과 같은 내면의 구조를 갖고 있다.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도 수면 아래에 숨어있던 빙산의 돌출 부분을 피하지 못해 운명을 달리했다. 빙산 아래 내면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조직의 운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엄청난 시너지를 분출시키며 새로운 대로를 열어 가기도 한다. 모든 조직원이 경청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때 그 조직은 ‘고객’의 세밀한 음성을 놓치지 않는 위대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수많은 기관들을 상대로 한 강연 경험으로 깨닫게 된 사실중 한 가지는 2-3위 그룹에서는 ‘경청’이라는 주제를 별로관심없어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1위 기업들이 이런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상대를 먼저 이해하려는동기는 사실 ‘강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의 증거이기도 하다.
한자로 들을 청(聽)자를 새겨보면 흥미롭다. 귀(耳)아래임금 왕(王)이 자리하고, 열 십(十)자 아래 눈 목(目)자가뉘어져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한일(一)자와 마음 심(心)으로 되어 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서로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것 (一心)이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첫째 완벽한귀를 가질 것, 둘째 열 개의 눈을 가질 것으로 풀이한다.완벽한 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열 개의 눈으로 듣는 것은 내 생각과 말을 멈추고 침묵 가운데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세상은 오늘도 소음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바삐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치열한 세상 가운데,오늘만큼은 말하기보다 듣기에 집중하는 하루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열 개의 눈을 가진 것처럼 곁에 있는 이의눈빛과 입술의 떨림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침묵 가운데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들어주는 지혜를 배우는 것은 어떨까?
Columnist 조신영 J&P지식발전소 대표로 1997년부터 자기계발 분야의 국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홍콩 등을 순회하면서 수백 회의 자기계발 세미나를 진행했다. 2001년에는 세계 최초의 온라인 셀프리더십 게임을 발표하였고, 현재는 기업과 조직의 경청 문화 확산을 위한 ‘경청 워크숍’을 보급 중이다. 저서로는 『쿠션』,『중심』,『경청』,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나를 넘어서는 변화의 즐거움』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