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숨죽인 순간, 화살보다 말이 먼저 과녁에 꽂혔다. “끝!” 피 말리는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확신에 찬 한마디로 오진혁은 모두를 열광하게 했다. 지난 2020 도쿄 대회 양궁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현대제철 양궁단 오진혁의 도전에 끝은 없다.
오진혁 선수에게 붙은 ‘불혹의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는 특별하다. 꾸준한 자기 관리와 쉼 없는 도전이 없었다면 이뤄낼 수 없는 타이틀이기 때문. 그는 목표 설정을 강조했다. 목표가 생길 때 꿈을 꿀 수 있고 비로소 도전할 동력이 생긴다고 했다. 초등학생, 여린 손으로 처음 활을 잡은 이후 ‘대회에 나가고 말겠다’는 꿈 하나로 30년을 달려왔다. 현대제철 양궁단 훈련장 잔디밭, 강렬한 여름 태양 아래 그을린 그의 얼굴은 든든하고 강인한 ‘철인(鐵人)’ 같았다.
지난 2020 도쿄 대회, 개최부터 쉽지 않았는데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오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예선 첫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물론 금메달을 딴 순간도 더없이 좋았지만 경기장에 들어가 첫 발을 쏠 때 느낌이 남달랐어요. 2012년 런던 대회에 출전하고 2016년 리우 대회에는 탈락했거든요. 그리고 다시 도전한 대회였는데, 예선 첫날 첫 발을 당기면서 이렇게 내가 다시 대회에 나와 또 한 번 활을 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개무량했죠.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가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 혹독한 대표 선발 과정을 이겨내는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하다 보면 잘 풀릴 때도 아닐 때도 있잖아요. 잘 풀릴 때는 흐름을 유지하면 되지만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반등시킬 기회가 중요하거든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게임이 있어요. 하지만 지더라도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려고 합니다. 생각대로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안 풀리더라도 오늘은 안 풀리는 날이구나, 내일 다시 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길게 보려고 합니다. 순간순간 결과에 얽매이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멀리, 크게 생각하는 타입이죠.
양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학교에 양궁부가 있었어요. 어느 날 교무실에 청소를 하러 갔는데 양궁부에 지급할 새 활이 진열된 것을 보게 됐어요. 제 눈에 그게 너무 멋있고 예쁜 장난감으로 보였어요. 그때 반해서 활을 갖고 놀 방법을 궁리했죠. 양궁부에 들어가면 된다는 걸 알고는 부모님을 졸랐더니 클럽 활동이라 생각하시고 쉽게 허락해주셨어요. 양궁부에 들어가면 바로 활을 쏠 줄 알았는데 활을 쏘기까지 6개월이 걸렸어요. 기본기를 먼저 다져야 하니까요. 그래도 활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장난감처럼 만지고 논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선수가 되어 시합을 나가고 있더라고요.
위기나 좌절의 시간도 있었을 텐데요.
고3 때 대표팀에 들어갔는데 그다음 해 선발전에서 탈락했어요. 돌아보면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태릉선수촌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죠. 그때는 활을 쏘고 싶지도 않았어요. 체육부대에 입대하고서도 제대만 하자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했던 것 같아요. 제대하고 실업팀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메달이 하나씩 따지는 거예요.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잘 나왔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때 선수촌에 다시 한 번 들어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죠. 목표가 생기니까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열심히 했어요. 그래도 대표팀 선발까지 7년이나 걸리긴 했지만요.(웃음)
목표 설정이 중요한 거네요?
맞아요. 누구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과정을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분명한 목표가 생기면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극복해나가는 방법도 찾게 되고, 다른 사람의 좋은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도 갖게 되죠. 그래서 목표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금메달이 목표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어요. 양궁을 시작하고서 대회에 한 번은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죠. 2000년 선발전부터 2008년까지 세 번을 연거푸 떨어졌어요. 그러다 2012년에 드디어 국가대표가 되어 대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완전히 만족했어요.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은 크게 없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무서울 정도로 활이 잘 맞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결과적으로 메달을 땄지만 대회 출전 자체가 목표였던 건 분명해요.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꿈 하나로 활을 놓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어깨 부상을 딛고 도쿄 대회에 출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회에 꼭 한 번은 더 나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2016년 선발전에서 시원하게 떨어진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착실히 훈련하던 와중에 어깨 부상이 생겼어요. 단순 근육통인 줄 알았는데 검사 결과 더 이상 활을 쏘다간 정상인으로 생활하기도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만 은퇴해야 한다는 거예요. 정신이 아득했죠. 정말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 다른 병원을 소개받았어요. 같은 결과였죠. 그런데 담당 의사가 저에게 마지막으로 묻더라고요. 치료를 하고 싶은지 활을 더 쏘고 싶은지요. 단번에 활을 더 쏘고 싶다고 했죠. 그래서 진통제 먹고 보강 운동 등 별의별 방법을 다 써가며 훈련하고 몸을 만들었습니다. 통증은 있었지만 통증을 무시할 만큼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2020년까지 끌고 왔는데 코로나로 대회가 연기된 거예요. 허탈했어요. 하지만 한 번 더 이를 악물었습니다. 꿈을 붙잡고 다시 1년을 더 버텼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정말 감사하죠.
운동선수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나 자질이 따로 있을까요?
신체조건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걸 자꾸 시도해야 발전할 기회가 생기거든요. 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요. 자세나 장비도 새롭게 시도해보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습관이나 징크스 같은 것도 없죠. 그저 목표와 꿈이 설정되면 그 꿈에 미쳐 달려가는 스타일이에요. 징크스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아요. 한때는 하얀 티를 입으면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바로 없앴어요. 지금은 아무거나 입어도 잘 맞아요.(웃음) 운동선수라면 자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불안심리 같은 건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결승전 3세트에서 점수가 확정되기 전 “끝”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10점 과녁을 맞혀 금메달을 확정 지은 장면이 화제가 되었는데, 마지막 화살을 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건 10점 아니면 안 되는 화살이었어요. 쏘는 순간 알았죠. 이건 10점이구나. 기술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100퍼센트 10점에 꽂히는 화살이었죠. 마지막 화살은, 그냥 나만 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사선에 들어가기 전에 우진이와 제덕이의 너무 애쓰는 얼굴이 보였어요. 간절함이라 할까요. 그 모습을 보고 활을 쏘는데, 그 애쓰는 걸 끝내주고 싶었어요. 이제 이걸로 끝났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라, 그런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에요. 우진이한테만 들리게 한 말인데 의외로 크게 들렸더라고요.(웃음)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합니다. 오진혁 선수의 새로운 목표, 도전은 무엇인가요?
우선 9월에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번 대회를 잘 준비해야 해요. 지난 대회에서 조금 저조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이번에 보여주고 싶어요. 대회 마치고 나서 어깨를 치료하고 향후 목표와 계획을 설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인터뷰에서 대회는 마지막이라고 했더니 은퇴 선언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던데 그건 아닙니다. 저는 아직 마지막 화살을 쏘지 않았어요. 아직은 활을 더 쏘고 싶어요. 우선 이번 대회를 충실히 준비해서 다시 한 번 좋은 결과로 성원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STUDIO INDIE 203)
영상 KIM FAME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현대제철 자랑스러운 이름 오진혁선수 도쿄올림픽의 금메달로 태극기를 휘날리는 모습 감동 그자체였습니다
이번세계양궁 선수권 대회에서도 올10 으로 금메달 따는 모습 기대하곘씁니다 화이팅!
친필싸인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멋있어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