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자기 자신을 오해하며 산다”
<빛의 과거> 출간한 소설가 은희경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밀도 높은 이야기와 섬세한 필치로 발표하는 소설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가 은희경이 8번째 장편소설 <빛의 과거>를 출간했다. 언제나 독자들에게 웃음과 감동, 재미와 사색을 선물하는 소설가 은희경을 쇠부리 멘토 인터뷰에 초대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희경은 1995년 <새의 선물>로 등단한 이래 20년 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다.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중국식 룰렛> 등 소설집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등 다양한 작품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매우 잘 읽히고 재미있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어 긴 여운을 남긴다. 냉소적이면서도 정밀한 문체로 소통의 단절과 관계의 의미를 추적하는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독서의 계절 가을, 일산의 한 스튜디오에서 나눈 작가와의 이야기는 그의 소설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궁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요.
결국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 사이의 간격이 뭘 의미하는지 쓰고 싶었습니다.”

Q. 1995년에 데뷔한 뒤 꾸준히 활동 중이세요.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창작자 이전에 생활인이고 소설 쓰기는 제 직업이잖아요. 나름대로 성실한 직업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오래 해도 소설 쓰는 일이 늘 벽에 부딪히곤 합니다. 결국 저의 한계를 느끼면서 새로움을 찾는 고민을 키워나가는 게 꾸준히 소설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Q. 소설을 읽는 일은 작가의 호흡과 리듬을 따라가는 행위인데요. 선생님께서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가급적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요. 큼직한 망치질보다는 못 머리를 정확히 때리고 싶다고 할까요? 섬세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뜻밖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따라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즉,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반경 내에서 전개되는 것이 제 소설의 특징이죠.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정밀한 이야기가 좋다는 평가와 이야기가 좀 심심하다는 평가로 나뉘기도 합니다.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는 건조하게 쓰려는 것입니다. 소설이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매개체인데 문장에 내 감정이 많이 섞일수록 독자의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Q.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서나 경영 관련 서적을 주로 읽어요. 소설가 입장에서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사실 소설을 안 읽어도 사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분들에게는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죠. 사실 소설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인간이란 시키는 대로만 정해진 대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불편한 질문들을 통해 조금 다르게 살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늘 정답이라 여겼던 것을 조금 다른 입장에서 보게 되고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요.

Q. 한동안 소설 쓰는 의욕을 잃은 시기도 있었다고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소설을 읽는 것이 한가하거나 쓸데없는 행위로 치부되는 시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소설을 쓰는 일에 좀 위축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본질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실용과 효용을 중시하는 시대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꼭 이익이 되는 일만 하는 것 아니잖아요. 인간이 무의미한 일에도 행복해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면서 그런 것을 소설을 통해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쓸 이야기를 찾았고, 그렇게 의욕도 되살려 이번 소설을 냈습니다.

Q. 그렇게 나온 신간, <빛의 과거>는 어떤 소설인가요?
1977년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두 친구의 이야기를 40년 뒤에 반추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소설가인 주인공이 친구가 썼던 당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처음 읽으면서 서로 전혀 다른 관점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고, 서로 다르게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해석을 변주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Q. 왜 제목을 <빛의 과거>인지 작가 입장에서 의미를 소개해 주신다면?
단순히 1977년 이야기를 실감나게 복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그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를 보는 관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과거로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빛을 떠올렸어요. 별빛만 봐도 지금 우리가 보는 건 수백 광년 전 출발한 것이잖아요.

Q. 소설은 주인공 ‘유경’과 소설가 친구 ‘희진’의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편으로 억울한 주인공보다 독선적이고 얄미운 희진의 모습에서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주인공은 소극적인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이해하죠. 반면 친구의 소설 속에서는 내숭을 떨며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원하는 것을 얻는 인물로 묘사돼요. 각자가 자신의 편을 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대부분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어요.

Q. 다음은 어떤 소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3년 동안 단편소설을 쓰지 않아 이번에는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시간과 몸에 대한 고민 중이죠. 몸은 각자에게 평생의 관심이면서 외모와 변화, 늙음, 시간, 소멸, 죽음과 관계된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예요.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요.

Q.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왜 독서를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효용성과 이익이 되는 일을 찾아 익숙하고 유리한 위치만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타인의 생각을 알고 나와 다른 가치관과 기준을 이해해야 유연해질 수 있어요. 유연한 것은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고요. 사고와 관계가 굳어 버리면 인생도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가치관을 접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꼭 권하고 싶습니다.

Q. 한창 진행 중인 문예공모전을 준비하는 사우들을 위해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기가 아는 얘기를 다루고 느낀 생각을 써야 잘 쓸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가져야 해요. 가령 ‘나는 화가 난다’는 좋은 동기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없어요. 질문을 구체적으로 가질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요. 또한 쓸 때는 정확하고 건조하게 쓰면 좋겠습니다.

쇠부리토크 편집부
영상 제작 ATO STUDIO 임상현
사진 촬영 픽쳐쑈 김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