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유해물질 정책 관련 스웨덴 화학물질관리청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정수기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친절한 말투로 탕비실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따라 마시라 했다. 회의가 끝나고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모두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고는 당연하게도 자기 컵에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그들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정수기처럼 사용했다. 식당에서는 유리병에 물을 담아줬는데,
역시나 수돗물이었고 공짜였다. 물은 누구에게나 공짜다, 수돗물은 마시는 물이다, 라는 개념이 스웨덴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듯했다.

스웨덴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온 날, 산더미처럼 쌓인 생수병들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우리 집은 다세대 빌라 4층인데 맞은 편 옆집에서 묶음 포장된 생수를 박스째 시켜 문 앞에 쌓아 두곤 한다.
일반적으로 생수는 산 좋고 물 좋은 자연의 대수층이나 지하수를 퍼 올려 생산된다. 지하수 채수는 강으로 흘러들 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거고, 억겁의 세월 동안 축적된 대수층을 일거에 채취하면 지반이 내려앉을 수 있다. 오랫동안 가정용수나 농업용수로 물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생수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지역에서 채취됐던 물은 다시 그 지역에서 사용됨으로써 되돌아왔었다. 그러나 유럽산 생수를 국내 카페에서 파는 현실에서 생수가 채취된 지역은 물이 보충되지 않아서 서서히 말라간다.사용한 물이 그 지역에 버려지는 것과 달리 생수는 시골에서 도시로, 제3세계에서 선진국으로만 향한다. 예를 들어인도에서는 코카콜라 사가 과도하게 대수층 물을 퍼 올려생수를 판 결과, 땅이 메말라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민들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산된 생수는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 병에 담긴다.

1리터 플라스틱 병 30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페트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는 원유 3리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물을 퍼내기 위해 땅을 파고 석유를 퍼내기 위해 지하를 파고, 결국 생수는 자연이 지하에 쟁여 놓은 선물이었구나. 이번 ‘쓰레기 대란’에서 알게 됐듯 페트병을 재활용 수거함에 넣는다고 재활용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플라스틱은 다른 종류끼리 섞이면 녹는점과 물성이 달라 재활용하기 힘들다. 외관상 투명한 페트와 똑같아 보이는 PVC가 페트에 조금만 섞여도 전체가 재활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수병 본체는 페트, 라벨과 뚜껑은 폴리에틸렌 혹은 폴리프로필렌 등 다른 재질이다. 라벨과 뚜껑이 일일이 분리되지 않으면 페트병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다. 재활용되지 않은 페트병은 소각 혹은 매립되거나 운송과정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플라스틱 소각 및 매립은 그 자체로 환경적 문제를 유발하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자잘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우리가 먹는 소금, 홍합, 가재, 굴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생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플라스틱에 든 생수를 먹고 그 생수에 다시 플라스틱이 새어 들어가고, 우리도 조금씩 플라스틱 인류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스웨덴에서도 생수를 팔긴 한다. 500밀리미터 한 병에 약 3,000원 정도 했는데, 물이 석유보다 훨씬 비씨다! 새삼스럽게 집에서 보리차를 끓여먹거나 수돗물을 정수해 먹는 행동이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상의 ‘공짜’들이 더럽혀지지 않은 채,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시원한 바람, 청량한 바다, 진심 어린 호의와 미소 같은 것들. 물은 너무 쉽게도 ‘생수’라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되돌리는 방법은 물을 구매하지 않고 자연에서 받은 선물로 소중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실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