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을 땐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법’. 그러나 법은 세상을 나누는 기준인 만큼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단순히 법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곳인 법원에서 33년을 분투한 대한민국 법조인 박일환. 묵묵히 걸어온 그의 인생길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은퇴한 이후까지 법 이야기로 가득하다.
판사에서 대법관까지 지낸 박일환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 최초로 유튜브 채널 <차산선생법률상식>을 개설해 전문 분야 크리에이터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매 순간 충실히 임하는 그는 이제 전 대법관보다 실버 버튼을 받은 유튜버로 더 유명하다. 누구나 생각하고 맞이하게 되는 은퇴 후의 삶, 두려울 것도 막막할 것도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박일환 변호사를 만났다.
법원에서 일하실 당시 하루하루가 어떠셨나요?
대법관의 하루는 정말 무미건조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동일한 일의 반복입니다. 출근 후 퇴근까지 사건 기록을 검토해 판결문을 작성하고 결론을 내리는 일이 계속되니까요. 업무가 과중한 편이어서 사계절 내내 마음 편한 날이 드물지만, 가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며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판사였을 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재판은 판결 받는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압감이 컸죠. 게다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보니 간섭이 없어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혼자 헤쳐나가야 해서 더욱 어깨가 무겁기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이제는 거의 다 기억이 희미해졌는데요. 인상 깊었던 판결은 증거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진술 증거는 수집할 때 절차를 위반하는 등 위법을 범하면 증거 능력을 부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증거물 같은 비진술 증거는 수집 과정에 위반이 있어도 증거 능력을 인정해 왔었죠. 이와 관련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형사 사건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법률적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대법원에서 판례를 변경한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공정한 판결을 하기 위한 철칙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원고가 보는 공정과 피고가 보는 공정이 다르므로 판사는 항상 중립적인 제3자 입장에서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려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각 사람의 주장이 말이 되든 되지 않든 일단 마음껏 주장하게 하고 저는 경청합니다. 이후 그 주장을 잘 정리해 제 나름대로 판결문을 작성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사건이거나 단서가 많이 얽혀 있을 때는 판단하기가 복잡해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결론의 책임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온전히 저의 것이니까요.
이제는 판사에서 은퇴하시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한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오시면서 법조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법조인은 정확해야 합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적용할 법리를 판단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확하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나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 되물어 보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중하게 귀 기울여야 해요. 제 경험상 모든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사건을 정확하게 정리했던 사건은 승소 여부를 떠나 각자 주장의 부족함을 깨닫고 분쟁이 해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생활법률 책을 내셨는데요.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법은 사회생활 중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합니다. 예를 들어 민사는 남에게 빌려준 대여금, 거래에서 발생한 매매대금, 임대차 보증금 등을 청구하며 자주 발생하는데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등 재산 내용 외에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저작권, 특허 사건 등 굉장히 다양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잘 알기 어렵고, 법에 몸담은 사람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만큼 모든 분야의 생활법률을 다루기는 어렵지요. 저는 은퇴 후 3년간 유튜브 방송을 하며 생활법률 사례 등을 많이 다뤄 데이터가 충분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생활법률을 전하고 싶어 책으로도 발간하게 됐습니다.
유튜브를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계신데요, 생활법률 중 최근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사법적인 권리관계의 다툼을 해결하는 민사소송에 대한 관심이 많죠. 특히 상속에 대한 콘텐츠는 조회 수나 댓글도 더 많이 달립니다. 아직도 부모의 빚이 자식에게 상속된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이조시대까지만 해도 부모의 빚은 자연히 자식에게 상속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에는 부모와 자식도 별개로 보기 때문에 부모의 빚을 상속하고 싶으면 상속하는 것이고,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상속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재산과 빚을 모두 남겨줬다면 재산의 일부만 상속받는 한정 승인도 있습니다.
은퇴 후 멋지게 삶을 꾸려가고 있으십니다.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집과 직장을 왔다 갔다 하는 익숙한 루틴이 깨지고 은퇴한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좀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면 충분합니다. 이미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익숙해지는 것을 반복해 왔어요. 그 과정 속에 삶을 대하는 나만의 노하우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합쳐서 16년 정도 되는데요. 16년을 공부해서 16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부터 새로 배울 것과 여태까지 배우고 해온 것을 합쳐 또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보다는 의욕을 갖고 인생을 개척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현대제철 사우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예전에는 성공의 척도가 참 각박했는데, 이제는 취미 생활에 매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통해서도 성공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쉽게 낙담하지 마시고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서 미래를 설계하면 좋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저도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 나오니 직장 생활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자유를 주는지 알았습니다. 사우분들께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즐겁게 꿈꾸고 실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영상 안지수(스튜디오 인디203)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멋쟁이 ~~~
살의 멋쟁이시네요~~~
은퇴후에도 멋지시네요 ~
삶이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