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사랑을 통해 꿈을 찾아가는 루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코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뜻한다. <코다>에서 농인과 농인의 딸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말 한마디 없이 농인이 내뱉는 작은 소리와 수어를 나누는 손짓의 움직임만으로 가득 채워진다. 들리지 않는 세상 속에도 언어가 있고, 치열한 소통의 과정이 존재한다. 권동호 수어통역사는 그 세계를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 그들은 단지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이라고. 수어는 마치 손짓으로 수놓는 아름다운 그림 같다고 말하는 권동호 수어통역사. 6월 3일 농인의 날을 맞아 수어 이야기를 듣고, 다름을 넘어 함께 나아가는 내일을 꿈꿔보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어통역사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수어통역사는 한국어를 농인의 모국어인 한국 수어로 통역해서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수어와의 만남은 우연이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해서 친구 사귀려고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 동아리가 수어 동아리였죠. 처음부터 수어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친구를 사귀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수어를 시작하게 된 거죠. 그렇게 조금씩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수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수어를 할 때 즐겁고 재밌더라고요. 대학 졸업할 즈음에 전공이랑 수어 두 개를 놓고 진로를 고민했는데요. 더 재밌고 즐거운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수어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어통역사를 시작하게 됐죠.
수어를 시각언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우리는 보통 음성언어를 사용하죠. 반면에 수어는 일반 음성언어와 다르게 도상성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조금 어려운 말이기도 한데요. 도상성은 사물을 이미지화해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해요. 예를 들면 수어로 물고기를 표현할 때 물고기가 팔딱거리는 움직임을 표현해서 뜻을 전달해요. 그런 시각적인 특성이 수어와 일반 음성언어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이 농인과 의사소통할 때, 가장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농인분들이 처음 우리에게 다가올 때 손짓으로 안 들린다는 표현을 먼저 하신다는 점이에요. 또는 문자로 ‘청각 장애인입니다’라고 써서 보여주시죠. 그래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말부터 나가거든요. 이제는 그러지 마시고 농인분들을 만나면 스마트폰에 있는 메모장 앱을 켜서 문자로 소통해보세요. 혹은 말을 하려고 하기보다 몸짓으로 뜻을 전달해보거나, 종이로 글을 적는 필담 형식으로도 쉽게 소통할 수 있어요. 이런 방법으로 농인분들과 소통하시면 꼭 수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통할 기회가 많아질 거예요.
수어통역사로 참 오랜 기간 활동해오셨는데요. 수어통역사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직업으로서 수어통역사의 매력을 이야기하자면 수어의 매력을 먼저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언어는 소리로 표현되지만, 수어는 그림처럼 표현이 되거든요.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말이 아닌 손으로 공간에 그림처럼 표현하는 걸 보면 수어라는 언어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가끔 농인분들이 수어하는 걸 보면 황홀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이런 황홀한 언어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수어통역사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아무리 즐거운 일도 힘든 점이 있기 마련일 텐데요. 수어통역사를 하며, 남들은 모르는 고충은 없었나요?
수어통역이란 것이 어떤 언어를 다른 언어로 통역을 하는 일이거든요.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겠지만 통번역을 하다 보면 배경지식이 없을 때에는 번역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자주 생겨요. 예를 들면 제가 2년 전부터 공공 수어통역사로 정부 브리핑 통역을 해왔는데요, 처음 정부 브리핑을 통역할 때 경험해보지 못한 전문 분야라서 그런지 통역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전문지식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상당한 배경지식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점, 그게 수어통역사의 고충일 수 있겠네요.
수어로 사랑해(좌)와 박수(우)를 표현하고 있는 권동호 수어통역사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청각장애인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요. 이때 관객들이 수어로 손뼉을 치던 장면이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것 같아요.
수어통역사로 생활한 지 16년 정도 됐는데요, 사실 수어와 수어통역이 이렇게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게다가 미디어에 수어통역사가 나오는 비율이 이렇게 높았던 것도 처음인 것 같고요. 저는 이런 움직임이 반가워요. 수어를 통역하는 입장에서 농인들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도 뿌듯하고요. 하지만 아직까지 수어를 조명하는 것이 수어통역사가 보여주는 이미지에 그친다는 것, 그건 좀 아쉬운 일인 것 같아요. 수어통역에 대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농인의 의사소통 한계라든지, 농인들의 언어생활 같은 것이 더 조명돼서, 농인분들과 소통할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수어통역사님이 생각하시는 농인분들의 고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농인들의 가장 큰 불편함은 마스크 착용이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는 입 모양을 보고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이야기하다 보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에서 고충이 발생하죠. 아직은 농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말소리와 소리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고, 농인분들은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손과 몸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언어의 온도 차이가 너무나도 크잖아요. 그래서 더욱 농인분들의 생활과 고충이 조명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차별이 없어지려면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아요. 휠체어를 타는 분이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나 그리고 수어를 사용하는 분이나 각자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 것일 뿐이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건강한 사람들이 주류인 사회이기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가 모두 동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을 전환하다 보면 차별이 조금은 없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현대제철 사우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현대제철 사우 여러분,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아마도 현대제철 사우님들 곁에도 소리 없이 살아가는 농인분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들이 혹시나 그분들을 주변에서 만나게 된다면 인사를 할 때 간단한 수어로 표현해주시고, 소통하고 싶다면 먼저 메모장을 열어서 대화를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영상 정성한(WITHENM)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농인들의 마음을전하는. 당신은
짱짱 짱!
자랑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