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 얼마의 노력이 필요할까. 대중 앞에 드러나는 결실의 꽃은 찬란하지만 그 이면에는 짧지 않은 인내의 기간이 있다. 박혜경은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가수다. 그녀의 목소리는 봄의 화사함뿐 아니라 계절을 돌고 돌아 또다시 꽃을 피우는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닮았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꽃을 곁에 두며 다시 노래할 용기를 얻었다는 그녀. 겨울을 지나 생명력이 움트는 봄처럼 생기가 가득하던 박혜경과의 반가운 만남을 전한다. 꽃보다 혜경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꽃과 함께 플로리스트로 일상을 보내고 있고요. 또 저의 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강현민 작곡가와 신곡 작업도 하고 있어요. 요즘은 디지털싱글을 많이 내잖아요. 그래서 저도 부담 없이 한두 곡 정도 내보려 해요. 그리고 책도 썼는데요. 거창한 건 아니고 제가 사랑받았을 때,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일기처럼 적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제 책을 보고 제 노래 같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최고의 가수가 어느 날 플로리스트가 되어 나타나셨어요. 플로리스트에 도전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태어나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오직 노래하는 사람. 그것만 바라보면서 인생을 살았죠. 몇 년 전에 성대결절이 오면서 한동안 노래를 할 수 없었어요. 평생 노래만 생각하고 노래 속에서 살고, 노래가 인생의 전부였거든요. 앞날이 막막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내가 노래 다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꽃’이 떠오르더라고요. 좀 바보 같긴 한데요. 그 뒤부터 앞뒤 따지지 않고 플로리스트에 도전했어요.
‘꽃’에서 어떤 힘을 느끼셨나 봐요.
우리가 꽃을 딱 보면 ‘아~ 예쁘다’라는 감탄이 나오잖아요. 저도 꽃을 보고 있으면 예쁘다는 말만 연달아서 하곤 해요.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리고 있다 보면 마음속 불안이 가라앉고 평화가 찾아와요. 마음도 꽃처럼 예뻐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꽃과 함께하다 보니 저한테도 예쁜 날들이 찾아오더라고요. 그게 꽃의 힘인 것 같아요.
플로리스트도 참 멋진 직업이네요. 가수와 플로리스트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플로리스트는 백조 같아요. 꽃 만지는 직업이 우아해 보이긴 하지만, 새벽 꽃 시장도 가고 무거운 식물도 나르고, 다듬고 하는 일이 정말 힘들어요.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밑에서는 힘차게 발장구를 치고 있는 백조랑 비슷하죠. 게다가 요즘은 플로리스트도 경쟁이 심해서 마냥 즐길 수는 없어요. 뭐든지 돈 버는 일은 녹록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꽃이 좋으니 어쩔 수 없죠. 반면 가수는 저에게 찾아온 행운이었어요. 운이 좋아서 앨범을 내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좋은 노래도 참 많이 냈죠.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준 큰 선물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노래도 꽃도 너무 중요한 것들인데요, 가수를 ‘나’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면 꽃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혜경 플로리스트만의 꽃 스타일링 비법이 있을까요?
느낌 가는 대로 해요. 어떤 공식이 있어서 그걸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하다 보면 작품이 완성돼 있어요.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저는 파리에서 꽃을 배웠기 때문에 프렌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프렌치 스타일이 꽃 위주보다는 잎, 가지, 열매, 이런 것들을 조화롭게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을 보면 꽃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있다면요?
클레마티스요. 클레마티스에도 종류가 많은데 저는 아주 조그맣고 종처럼 생긴 클레마티스를 좋아해요. 꽃말은 ‘아름다운 마음’이에요. 꽃을 보면서 제 마음도 아름답게 변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의미 있는 꽃이죠.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만큼 시련을 이겨내는 노하우도 남다른 것 같아요. 혹시 지금 마음이 힘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저는 ‘나를 위해 사치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치’라고 해서 꼭 명품을 사라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 아까워서 못 했던 것을 한번 시도해보라는 의미예요. 저는 플로리스트가 되기 전에 ‘꽃’이 저에게 사치였어요. 그리고 ‘꽃’으로 희망을 얻었죠. 평소에 갈망했던 것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꽉 막힌 마음이 좀 풀어져요.
현대제철 사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로 ‘안녕’을 고르셨는데요. 이유가 궁금해요.
봄에 잘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제 노래가 다 봄에 잘 어울리더라고요. ‘고백’, ‘주문을 걸어’, ‘레몬 트리’ 등등이요. 고민을 좀 했죠. 그러다가 생각한 게 ‘안녕’이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제가 IMF 극복 의미를 담아 작사했던 곡인데요. 위기일 때 만든 곡이어서 그런지 ‘코로나 시국’에 이 곡이 딱 생각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안녕’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코로나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후배 가수 조이가 이 곡을 리메이크했어요. 정말 좋았죠. 현대체절 사우분들도 힘들고 어려웠던 일과는 안녕하시고 이 찬란한 봄을 마음껏 즐기시라는 의미에서 ‘안녕’을 골랐어요.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영상 정성한(WITHENM)
촬영 협조 듀오데플뢰르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옛날모습 목소리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