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이 납작해진다. 새로 나온 세단 대부분이 그렇다. 세단의 쿠페화. 그 이유는?
요즘 세단을 보면 트렁크 부분이 있는 듯 없는 듯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짧다. 탑승 공간과 트렁크가 딱 구분되던 예전 모습과 달리 뒷부분은 세단의 특성이 옅어졌다. 누군가는 세단의 특성이 명확하지 않아서 어색하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세단보다 날렵해 보여서 좋다고 반긴다. 요즘 세단은 왜 뒷모습이 달라졌을까? 바로 ‘쿠페(coupe)’ 라인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쿠페는 자동차를 구분하는 형태 기준 중 하나다. 마차가 다니던 시절 마부 뒤로 승객석을 한 줄만 배치한 마차가 쿠페였다.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문이 두 개 달리고 차 높이가 낮고 지붕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의 경사가 완만한 차를 쿠페라고 불렀다. 쿠페는 크게 두 종류다. 세단과 비슷하게 트렁크 부분이 튀어나온 노치드(notched) 쿠페와 지붕 선이 트렁크 끝부분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패스트백(fastback) 쿠페로 나뉜다.
요즘에는 세단을 쿠페처럼 다듬은 ‘쿠페형 세단’이 인기다. 쿠페형 세단은 ‘4도어 쿠페’라고도 한다. 문이 네 개이므로 엄밀히 말해 세단이지만 쿠페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붕 선이 쿠페처럼 완만하게 흘러내리고 일부 모델은 트렁크 튀어나온 부분이 거의 없는 패스트백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쏘나타(DN8)는 본격적인 쿠페형 세단의 특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쿠페형 세단의 원조는 2004년에 나온 메르세데스-벤츠 CLS다. 동급 세단인 E-클래스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높이가 낮고 지붕이 완만해 더욱더 날렵하고 매끈한 자태가 두드러진다. 틈새 모델로 시작한 쿠페형 세단은 CLS 이후 여러 모델이 나오고 인기를 끌면서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았다. 국산차 중에는 현대자동차 쏘나타(YF, 2009년)와 아반떼(MD, 2010년), 기아자동차 K5(1세대, 2010년)가 쿠페형 세단의 특성을 일부 보여줬다. 이후 기아차 스팅어(2017년)와 지난해 선보인 현대자동차 쏘나타(DN8)와 기아자동차 K5(3세대)는 본격적인 쿠페형 세단의 특성을 드러낸다. 제네시스 브랜드 역시 G70과 조만간 나올 신형 G80에 쿠페형 세단 특성이 두드러진다.
세단의 쿠페화는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세단은 왜 쿠페를 닮아갈까?
1. 시장은 새로운 차를 원한다
자동차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시선을 끌 수 있다. 전통적인 형태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따른다. 자동차의 형태는 세단, SUV, 쿠페, 해치백, 왜건 등으로 정해져 있다. 바퀴 네 개 위에 사람이 타고 짐을 싣는 공간을 얹는 구조 특성상 기본 형태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신선한 감각을 보여주려면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지는 분야를 키워야 한다. 쿠페는 대중적인 차가 아니다. 디자인은 보기 좋지만 2인승이라 실용성이 떨어진다. 4인승도 있지만 문이 두 개라 뒷좌석에 타기도 불편하고 지붕이 낮고 경사져서 세단과 비교해 뒷좌석이 좁다. 쿠페는 혼자 또는 둘이 타는 차 성격이 강하다. 쿠페형 세단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쿠페의 단점을 세단의 장점으로 상쇄해 대중성을 높였다. 세단을 쿠페화 해서 새로운 차를 찾는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이다.
신형 K5(3세대)는 쿠페처럼 미끈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으로 임팩트를 준다.
2. 누구나 자동차의 본질에 끌린다
사람마다 자동차 취향이 다르지만 본질에 대한 호감은 대체로 비슷하다. 자동차의 본질은 역동성이다. 매끈하게 잘 빠진 차에 호감이 간다. 쿠페는 자동차의 본질인 역동성을 잘 드러내는 차종이다. 뒷문이 없어서 디자인 자유도가 높아 지붕 선을 날렵하게 그릴 수 있다. 스포츠카가 대부분 쿠페인 점도 쿠페가 얼마나 역동적인 차인지 증명한다. 세단은 뒤에도 문이 있고 보닛과 탑승 공간, 트렁크가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에 뒷부분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쿠페형 세단은 세단에 쿠페 라인을 입혀서 역동적인 감성을 키웠다. 용도가 같다면 보기 좋은 물건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3. 장르 경계가 허물어진다
쿠페형 세단의 원조인 메르세데스-벤츠 CLS가 등장한 2004년 무렵은 틈새 시장 개척이 시작된 때다. 자동차 회사들은 시선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차를 내놓기 위해 세단, SUV, 해치백, 왜건 등 전통적인 분야의 장점을 합친 혼종을 만들어냈다. CLS는 대중성과 실용성이 높은 세단과 역동적인 감성을 가진 쿠페의 장점만 골라 담은 틈새 모델이다. 이런 장르 파괴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인 트렌드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쿠페형 세단 외에도 쿠페형 SUV와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혼종이 등장했지만, 장르 파괴 모델이라도 익숙해야 선택받는다. 세단형 쿠페는 세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어색함이 덜하다. 덕분에 장르 파괴 모델 중에서도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새로 나온 제네시스 G80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쿠페를 만들어온 해외 럭셔리카 부럽지 않은
쿠페형 디자인으로 격찬을 받고 있다.
4. 자동차 수요층이 젊어진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젊음의 기준도 높아졌다. 이제는 40대~50대도 젊은 층 취급받는다. 취향이 젊어지면서 자동차도 젊은 감각을 추구한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평균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국산 중형 세단은 확대 초창기인 1980년대~1990년대만 해도 주요 구매층이 50~60대였다. 지금 중형 세단은 30대가 주요 구매층이다. 젊은 층은 역동적인 감성을 더 따진다. 젊은 가장은 가족차를 사더라도 역동적인 차를 선호한다. 전통적인 세단보다는 역동적인 감성이 풍부한 쿠페형 세단에 관심을 둔다. 시장 전반에 걸쳐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자동차 회사들도 세단에 쿠페 감성을 불어넣어 젊은 층을 공략한다.
5. 고급화의 키워드는 쿠페 라인
세계 자동차 시장 트렌드는 고급화다. 고급차의 요건은 여러 가지지만 역동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급차 브랜드가 내놓는 세단은 예로부터 스포츠 세단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역동적인 감성이 두드러졌다. 시장 전체에 걸쳐 각 브랜드가 고급화를 추구하면서 필수 요건인 역동적인 감성을 강화한다. 역동성을 잘 드러내는 요소는 쿠페 라인이다. 뒤쪽 라인을 날렵하게 뽑아낼수록 역동적인 감성은 짙어진다. 세단뿐만 아니라 SUV와 해치백과 왜건 등 여러 분야에 쿠페 라인을 도입한다. 세단은 쿠페와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차종보다 쿠페 라인을 집어넣기가 수월해 쿠페화가 빠르고 넓게 진행된다.
글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