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단어 하나가 유행과 현상을 절묘하게 설명한다.
지난달에 이어 올해의 새로운 트렌드를 담은 키워드들을 소개한다.
1.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_멀티 페르소나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 본업과 다른 새로운 분야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가장 떠오른 직업은 단연 ‘유튜버’일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취미를 토대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해진 SNS 채널과 취향 공동체 속에서의 개인은 그동안 학교나 직장에서 요구되어온 모습과 다르게 지낼 수 있다. 평일에는 직장인, 퇴근 후에는 댄스 동아리 회원으로, 주말에는 좋아하는 맛집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려 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맛집 유튜버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추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멀티 페르소나’는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편이기도 하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국민 MC 유재석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과 라면 가게 사장으로 변신해 새로운 자아를 지닌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개발하듯 말이다.
2. 나이는 숫자일 뿐_오팔세대
유튜브와 구글 CEO가 앞다투어 만나고자 한 한국인의 나이는 73세.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막례 할머니다. 손녀가 만드는 유튜브 채널에서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고 하루하루를 새로운 도전으로 채우고 있는 그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16만 명이다. 또 모델로 또 다른 인생을 찾은 65세의 김칠두, 77세 최순화 씨에게 패션 브랜드들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사회 약자로 여겨지던 노년층이 전에 없던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김난도의 <트렌드코리아>는 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ve)’을 ‘오팔세대’라고 정의했다. 이제 5060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를 의미한다. 직장을 떠났지만 새 일자리에 도전하고 나이 들수록 매 순간이 중요하다며 여가 생활을 활발하게 즐기는 ‘오팔세대’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젊은이 못지않게 모바일과 SNS에 익숙하며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할 수 있는 ‘오팔세대’는 새로운 실버 파워를 보여줄 예정이다.
3. 혼자 시대의 가족_느슨한 연대
결혼하는 이들이 줄고 1인 가구가 느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1인 가구라 해서 반드시 고립되어 사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외로움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맺는 다양한 친구와 이웃 같은 사회적 관계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관계의 변화는 주방, 욕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의 증가로도 알 수 있다. 2012년에 시작한 한 셰어하우스 스타트업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셰어하우스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건설사들도 셰어하우스 사업과 아파트의 커뮤니티와 공용공간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김용섭의 <라이프 트렌드 2020>에서는 모르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고 서로를 알아 가는 관계를 일종의 대안 가족과 같은 ‘느슨한 연대’라고 해석했다. 가족만큼 책임과 의무를 지진 않지만 함께 마음과 나누고 외로움을 달래기엔 충분한 관계다. 가족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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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두가 환경운동가 되기_플뤼그스캄
작년 <타임>에서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였다.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매몰차게 꾸짖던 그는 기후 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10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는 대서양을 기차와 태양광 요트를 타고 15일에 걸쳐 건넌다. 스웨덴어로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이라는 의미의 ‘플뤼그스캄(flygskam)’이라는 단어가 유럽을 휩쓸게 된 계기였다. 항공 여행에 소요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차에 비해 20배가 더 많다. 그동안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 소극적인 행동만으로 지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해왔다면 이제는 아예 비행기를 타지 않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 등 보다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그만큼 환경문제는 더 이상 방관할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우리 삶을 통째로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을 세계 곳곳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는 자연재해 소식과 매일 숨쉬는 공기를 통해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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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별의 벽을 깨다_젠더 프리
성별로 나뉘어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는 패션은 물론 문화계에서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젠더 프리(gender free)’는 성별을 벗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변화를 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화장하는 남자가 늘거나 남성복 재킷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즐기는 여성이 늘어나는 현상을 떠올리면 되겠다. 올해 패션업계에서는 남성복에도 핑크색이나 허리 라인을 추가하는 등 ‘젠더 프리’ 현상에 따른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공연계에서 성별과 무관하게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았던 역할을 여자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젠더 프리’라는 단어는 앞으로 문화예술계에서 꽤나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