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과일이 풍요롭게 익어가는 이 계절, 덩달아 맛 좋게 익어가는 게 있으니 바로 술이다. 물론 마트나 슈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술도 좋지만, 양조장에서 갓 길어 올린 술의 맛은 단순한 미각을 넘어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선사한다. 올가을, 지역 고유의 특색과 개성이 묻어 있는 양조장 투어를 계획해 보면 어떨까?

뉴노멀 여행, 양조장 투어

벌써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재택근무의 일상화, 비대면 소통의 확산 등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유발했다. 여행, 관광 업계 또한 마찬가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즐기는 캠핑이 붐을 이뤘는가 하면 해외여행이 요원해지면서 국내 여행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지방의 작은 소도시가 전에 없이 큰 주목을 받기도 했고, 유명 관광지보단 그저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걷는 소소한 여행이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에 따라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나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여행 테마가 있다면 바로 양조장 투어다.

실제로 프랑스의 와이너리 투어처럼 외국에서는 활발한 양조장 투어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백주, 대만의 고량주, 일본의 사케, 유럽의 맥주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게 마련인데, 이를 제조하는 양조장을 찾아 색다른 경험을 도모하는 이가 많다는 것. 그러나 부러워 마시라. 우리나라에도 외국 부럽지 않은 양조장이 차고 넘친다. 전국 곳곳에 새로운 맛과 로컬의 가치를 접목한 매력적인 양조장이 탄생 중인데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전국에 소규모 주류면허를 가진 양조장이 359곳에 달한다. 서울만 해도 소규모 주류면허를 취득한 양조장 수가 95곳에 이를 정도. 이러한 양조장에서 탁주, 약주, 맥주, 청주, 과실주 등의 다양한 술을 생산 중이니 각자 취향에 맞는 양조장을 찾아가 신선한 술도 맛보고, 다양한 체험도 즐기며 테마가 있는 여행을 계획해 보자.

사실 그전까지 양조장은 그저 판매에 필요한 술을 제조하는 곳으로 통했기 때문에 내부 시설을 외부인에게 공개하거나 즐길 거리를 갖춰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술의 제조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양조장을 여행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이 대표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5개의 양조장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총 55개 양조장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해 관리, 운영하고 있다. 관광 요소, 역사성, 지역사회 연계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하는 만큼 찾아갈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

만일 관심이 있다면 찾아가는 찾아가는 양조장 홈페이지에 접속해 권역별로 어떤 양조장이 있는지 살펴보자. 방문 전 미리 전화로 어떤 체험 행사가 있는지 등을 문의하면 금상첨화다. 수도권,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로 구분해 안내하고 있는 데다 양조장의 특징, 영업시간, 대표 상품, 체험 행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건 불변의 진리. 어떤 양조장에서 어떤 출생(?) 과정을 거쳤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면 술의 맛과 향이 한층 더 그윽해질 것이다. 아직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나만 알고 싶은 술’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할 것. 이렇듯 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양조장 투어를 떠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리 사업장 인근엔 어떤 양조장이 있을까?

인천

금풍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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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풍양조장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 특산주 면허를 취득한 강화도의 금풍양조장은 무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시대극 세트장을 연상케 할 만큼 레트로한 외관이 특징적인데, 근대 건축 양식인 트러스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어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높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총 2층 구조로 1층은 막걸리 시음 및 판매가 이뤄지고 있으며, 과거 밀가루를 말리던 2층은 전시장으로 활용 중이다. 특히 나무 기둥이며 바닥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2층에서는 술 빚는 항아리, 빛바랜 액자 등의 소품이 마련돼 있어 인증샷을 남기기에 그만이다.

한편, 금풍양조장에서 생산하는 탁주는 강화도에서 재배되는 친환경 쌀을 사용하고, 감미료나 기타 첨가료를 넣지 않은 천연발효 제품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탄산이 전혀 없어 누구나 무난하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다양한 도수의 제품이 구비돼 있으니 취향껏 골라보자. 막걸리 외에도 비누 등의 소소한 기념품을 판매해 둘러보는 재미를 높이며, 양조장 투어, 막걸리 만들기, 막걸리 핸드 스파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양조장 인근에 다방, 전파사 등 1970~80년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온수시장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삼랑성길 8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on_sul

당진

신평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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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양조장 공식 홈페이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가수 ‘성시경 막걸리’ 경(璄)을 출시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 전부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네임드 양조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만찬에 오른 ‘백련 막걸리’가 바로 신평양조장 제품이기 때문. 이곳의 시그니처인 백련 막걸리는 발효 과정에 백련(흰 연꽃)잎을 더해 붙여진 이름으로, 과거 사찰에서 연꽃을 넣어 빚던 백련곡차를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1933년에 창업해 벌써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신평양조장은 ‘최초로 선정된 찾아가는 양조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장인정신으로 술을 빚어 제조하는 한편 한국의 근현대 양조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 양조 문화기업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한편, 이곳은 관광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규모가 꽤 크기 때문에 이곳저곳 둘러볼 스팟이 많은데 창업 초기 사용하던 구공장에서부터 현대적 전통주 설비를 갖춘 양조센터, 양조의 원리와 역사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양조 갤러리, 과거 미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신평양조뮤지엄 등 공간마다 다양한 개성과 가치를 경험할 수 있다. 신평양조장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양조장에 대한 역사, 우리나라 주류 문화에 대한 흐름까지 두루두루 엿볼 수 있어 애주가라면 특히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게다가 예약하면 막걸리 빚기, 막걸리 소믈리에 클래스, 누룩 전 빚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신평로 813
홈페이지 www.koreansul.co.kr

순천

순천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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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양조장

순천역 부근에 위치한 순천양조장은 지역 농산물과 관광자원을 활용해 수제 맥주와 수제버거를 선보이고 있는 곳이다. 버려진 옛 건물과 곡물 저장 창고를 리모델링해 성수동 못지않은 힙한 매장을 꾸리는 등 로컬 여행을 경험하기에 꽤 좋은 선택지가 되어준다. 순천시에서 유일하게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는 양조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순천특별시, 순천만, 낙안읍성, 흑두루미 등 이름만으로도 벌써 흥미로운 10가지의 수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패션프루트,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순천특별시’가 대표 맥주로 꼽히지만, 그 밖에도 와온해변의 석양을 표현한 ‘와온’, 순천만 황금갈대밭을 담은 ‘순천만’, 순천만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한 ‘유네스코’ 등 오직 순천양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맥주가 가득하다. 게다가 시원한 수제 맥주와 곁들일 수제버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10일 숙성, 9시간 훈연을 거친 베이컨을 품은 크레인버거를 비롯해 쉬림프버거, 어니언버거, 스크램블버거 등 다양한 메뉴가 미각을 자극하니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수제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신선한 맥주의 맛, 육즙 가득한 수제버거, 힙한 분위기까지 두루두루 여러 종류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역전길 57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uncheon_brewery

포항

㈜포항수제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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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수제맥주 공식 홈페이지

포항 북구에 위치한 ㈜포항수제맥주는 ‘동빈나루’, ‘청룡’, ‘장기읍성’, ‘대보항’ 등 포항의 특색이 물씬 느껴지는 수제 맥주가 탄생하는 곳이다. 과거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갔다 그곳 수제 맥주에 푹 빠진 사장님이 고향인 포항에 돌아와 야심 차게 꾸린 브루어리가 바로 ㈜포항수제맥주라고.

미국 수제 맥주 장인들과 ‘온라인 소통’을 이어가며 홀로 맥주의 세계를 독학했던 사장님은 무엇보다 포항의 특징이 담겨있는 맥주 만들기를 고심했는데, 공교롭게도 포항에서 자란 쌀, 보리 등의 곡물이 과잉 수확되면서 지역 농민들의 고심이 깊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결과 포항산 쌀, 보리를 사용해 맥주를 개발했고 숱한 시행착오 끝에 동빈나루(포항산 쌀 50% 비율, 라거)·청룡(30%, 라이스 에일)·장기읍성(21%, 사워에일)·대보항(20%, 스트롱 에일) 등 총 네 가지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직접 ㈜포항수제맥주에 찾아갈 경우 신선한 맥주를 즐길 수 있을뿐더러, 건강한 재료로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드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가벼운 체험부터 수제 맥주의 생산, 음용 등 전 단계에 걸친 정보를 배울 수 있는 양조 전문가 과정까지 체계적으로 운영 중이다.

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중앙로294번길 10-7
홈페이지 pohangbrewery.modoo.at

판교

헤이스탁 판교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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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탁 판교 브루어리

서판교에 위치한 헤이스탁 판교 브루어리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소규모 양조장이다. 규모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힙한 분위기에 다양한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어 인근 주민은 물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 ‘판교에서 만들어지는 포틀랜드 & 오리건 스타일 맥주’를 표방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늘 새롭고 신선한 고품질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헤이지 IPA, 미국 서부 스타일의 밀 맥주 헤페바이젠, 묵직한 바디감과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로버스트 포터 흑맥주 등 최적의 배합을 찾아 선보이는 맥주가 다수. 특히 계절별로 새롭고 실험적인 맥주를 출시해 맥주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간단한 스낵, 피자 정도를 취급할 뿐 안주류가 풍성한 편은 아니지만 외부 음식 반입이 가능해 아쉬움을 달래준다. 바비큐 파티를 개최해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가 하면, 맥주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Brewing Camp를 열기도 하는데 미리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계정을 눈여겨봐도 좋겠다.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공원로3길 25, 101호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aystack_brewery

장혜정
사진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