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복잡한 미술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양정무 교수. 그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그림값의 비밀」 등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집필하며 대중에게 미술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미술 작품의 관람과 투자에 관심이 생기는 요즘, 우리는 어떻게 미술을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까? 그가 전하는 미술 이야기를 들어보자.
양정무 교수에게 미술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렸을 때 다락방에서 뒤적여본 백과사전을 통해 처음 미술을 알게 되었고, 대학생 시절에는 도서관보다 박물관에 더 오래 머물며 생생한 작품과 마주했다. 물 흐르듯이 그는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예술작품을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는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만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그 하나의 작품이 문이 되어 미적인 취향을 만들게 되고, 이를 발판 삼아 많은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될 거라고. 그리고 작품이 열어준 무궁무진한 세계는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 거라고.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략하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대제철 사우 여러분. 미술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저를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이른바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로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의 역사, 미술을 통해 보는 사회 등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양정무 교수입니다.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미술의 역사를 전공하시는데요. 미술사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요. 그때 백과사전을 많이 읽었어요. 보통 책을 보면 글보다 그림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잖아요? 이는 누구나 비슷할 거로 생각하는데요. 당시 저는 백과사전을 통해 동굴 벽화나 고전 미술품들을 많이 접하면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학창 시절에는 역사에 빠지면서 좋아하던 그림과 역사를 한데 엮어, 이렇게 천직인 미술사 전공자가 된 것 같습니다.
초보자들이 미술과 그 역사라는 방대한 이야기를 알아가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술을 직접 보는 것만큼 더 좋은 공부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영화관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아시나요?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갈만한 곳이 정말 많습니다. 자주 그림을 보다 보면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게 될 거예요. 그 작품을 시작으로 화가에 대해 알아보고, 그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미술사의 매력에 빠지게 되겠죠. 우선 그림을 많이 접하는 것을 추천해 드릴게요. 특히 여름과 겨울에는 큰 전시회들이 열리는데요, 그런 경우 오디오 가이드나 도록 등이 잘 되어 있어 보시기 더욱 좋습니다.
교수님은 당연히 전시회를 자주 다니실 텐데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전시회가 있을까요?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베르메르(Vermeer)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베르메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인데요. 본래 남긴 작품이 적은데, 그중 20점 정도를 모아 특별전을 한 거였습니다. 전시 작품 수가 적은데도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이 전시를 찾았고, 저도 어렵게 티켓을 구해 참석한 거였죠. 베르메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아 놓고 살펴보니 작가의 성격과 톤 등 작품 세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여러분도 꼭 가보고 싶은 미술전이 열린다면 그때 맞춰 해외여행을 계획해 보세요.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작품도 볼 수 있으니 훨씬 알찬 시간이 될 겁니다.
교수님이 좋아하는 작가들도 궁금합니다.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20세기 한국 작가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세대 작가들은 한국의 어려웠던 현대사를 몸소 겪으신 분들이에요. 1차·2차 세계대전부터 6.25 전쟁 등 역사를 살아온 분들이기 때문에 그림도 남다릅니다. 김환기 작가*나 그다음 세대인 김창열 작가**를 보면 엄청난 역사성이 그림에서 느껴져요. 굉장히 흥미롭죠. 그래서 한국 사람으로서 더 자주 보고 싶고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김환기 작가(1913-1974) : 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써 내려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창열 작가(1929-2021) :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 미술가
요즘 미술품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분들도 많죠. 교수님은 ‘아트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럽에서는 자산가들이 금융 포트폴리오를 짤 때 부동산 50%, 증권 30% 그리고 20%는 예술작품에 투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추세를 우리나라도 조금씩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품으로 돈도 벌 수 있으니 금상첨화의 재테크 수단이죠. 저는 이런 아트테크가 미술계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봐요. 좋은 작품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거고, 좋은 작가가 발굴될 기회도 많아지겠죠. 자연스레 작가들이 성장하며 한국 미술계의 부흥이 일 거라고 보고요. 아트테크가 이러한 건강한 문화로 견고하게 자리 잡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가치가 높아지는 예술품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일단 그림에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것, 또는 숨은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작품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많은 사람이 고흐의 이야기를 통해 고흐의 작품을 더욱 사랑하는 것처럼요. 미술은 미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명력을 가져야 명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디지털 작품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NFT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미술은 늘 시대에 맞춰 기술의 발전과 어우러지며 변화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미술이 인류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거죠. NFT 기술 자체가 예술이 될 순 없지만, 잘 연결된다면 작품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등 미술의 세계가 확장되고 새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현대제철 사우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음악은 다들 있으시죠. 그런데 좋아하는 화가는 없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좋아하는 화가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힐링 되듯이 좋아하는 그림으로도 그 기분을 한번 느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도 풍부해지죠. 현대제철 사우분들도 미술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늘려 나가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