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닿은 카메라로 보는 세상
사진작가 박형근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눈으로는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세계의 한 부분을 잘라 담는 사진은 보이는 것을 넘어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한 장의 사진에 눈물을 흘리거나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유일 터. 그래서일까, 세상의 모든 것이 무한한 관계를 갖고 얽혀 공존하고 있다는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박형근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이 느껴지는 듯한다.

좋은 구도, 좋은 색, 좋은 카메라가 있다지만 예술에 기준이나 규칙은 필요 없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이 가장 소중하다. 마음을 울리는 사진이라면 그 사진이 바로 A컷이라고 말하는 박형근 작가. 30여 년 동안 사진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그를 송도의 전시회장에서 만났다.

30년 동안 많은 사진 작품을 촬영하고 전시해오셨는데요. 처음 사진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고향이 제주도입니다. 제주도 정말 아름답잖아요?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진작가들도 알게 되고, 더 많이 사진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작가님의 첫 카메라는 어떤 종류였나요?

작은 소형 필름 카메라 니콘 FM2의 표준 단렌즈 하나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작은 카메라로 제주도의 풍경을 담다 보니 제가 몰랐던 다른 삶의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제 시선으로는 보지 못했던 상을 사진을 통해 보게 된 거죠. 그렇게 작은 카메라 하나로 인생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Tenseless-101, Jungjungmujin(중중무진), 140x288cm, C print, 2022-s

지금 진행 중인 개인전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전시장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제가 약 20여 년 동안 진행해 왔던 ‘텐슬리스(Tenseless)’ 프로젝트의 최신작입니다. 텐슬리스 시리즈는 눈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세계의 이면을 담아내고자 시작했던 프로젝트인데요. 그래서 텐슬리스 작품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진만이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중무진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은 다양한 레이어로 이루어졌는데요. 일반적으로 보면 하나의 회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죠. 색감이나 구성으로 인해 동굴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전혀 다른 비현실적인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박형근 개인전 Rainbow / 2023.03.20.~07.20. / 인천 연수구 하모니로 184, 1층 스페이스 문

이번 텐슬리스 연작의 주제는 ‘중중무진’이라고 들었습니다. ‘중중무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최신작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에 의해 우리 삶이 크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은 이러한 저의 깨우침을 표현하는 단어인데요, 불교 용어 중 하나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상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제 사진에서도 대립이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Tenseless-93, Melting, 120x154cm, C print, 2022-s(좌)
Tenseless-99, Temporary monument, 120×154.5cm, C print, 2022-s(우)

텐슬리스 사진들은 참 멋지면서도 오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결정하고, 작업이 구체화되기까지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거칩니다. 어느 정도 구상이 잡히면 장소를 물색하고, 자료도 준비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죠. 현장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이야기가 잘 담길 수 있도록 제 개입을 통해 피사체를 연출합니다. 그래서 제 작품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담았지만, 저를 통해 재구성된 세계이기도 하죠.

자연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작가님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자연은 우리의 터전이자 토대입니다. 인간의 발전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었던 것으로부터 시작됐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빠른 속도로 자연이 망가지고 있죠. 우리가 자연과 공존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와 공존하는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자연을 포함해서 우리 밖의 다른 대상들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진 작품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수동적인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관객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해요.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느끼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좋죠.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가 보세요.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고, 작품 감상이 점점 재밌어질 겁니다.

작가님에게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요?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예술은 주관적인 거죠. B컷으로 분류되어 있던 사진도 시간이 흘러서 A컷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진이 가장 좋은 A컷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사진은 제가 작가로서 원하는 방향, 추구하는 세계 같은 지점들에, 제 태도와 실천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만큼 쉽게 충족되지는 않겠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통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은 카메라를 통해 밖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고, 그 카메라가 나의 안을 향하게 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국 좋은 작품을 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게 어떤 기억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철학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나만의 시선을 통해 카메라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남들과는 다른 시선을 담아낼 수 있게 될 것이고, 사진이 더욱 재밌고 즐거워질 것입니다. 모두 행복한 사진 하세요!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지성종 사진가, 김성헌 사진가
영상 안지수(스튜디오 인디203)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 아름다움 많이 남겨주세요
    부럽네요~~저는 사진을 잘 못찍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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