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 전승돼 내려온 판소리 가락은 삶의 희로애락을 풍부한 창과 말, 몸짓으로 담고 있다. 이는 분명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한정된 이야기로는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어려울 터. 그래서일까, 12살부터 판소리의 길을 걸어온 박인혜는 전통이란 단어를 살짝 떼어내고 자신만의 판소리를 창작 중이다. 구성진 목소리와 흥겨운 리듬은 살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각색해 관객들에게 판소리의 매력을 색다르게 선보이고 있는 박인혜. 그녀에게 판소리란 무엇일까.
박인혜의 손에서 창작의 도구가 된 판소리는 다채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전한다. 인간의 본성을 깊게 파고드는 모파상의 단편소설들은 1인극으로 연극적 매력을 더하며 편마다 다른 구성의 악기로 질감의 변화를. 제주도 무속 신화 문전본풀이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소리꾼들의 합창을.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공감할 영역은 강조하고 판소리의 리듬을 살려서일까, 박인혜의 작품은 더 깊숙이 마음을 파고든다.
음악 장르가 참 많은데요.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나요?
어머니가 국악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게 됐죠. 처음에는 가야금 연주를 시작했는데요. 제가 굉장히 외향적인 아이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판소리를 시작했는데, 원래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하면서 점점 재능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판소리를 하고 있네요.
판소리의 어떤 매력에 푹 빠지셨는지 궁금해요.
판소리는 마치 맥가이버 칼 같아요. 맥가이버 칼에는 여러 가지 무기들이 많잖아요? 적재적소에 맞는 무기를 꺼낼 수 있는 맥가이버 칼처럼 판소리의 매력은 정말 무궁무진해요. 그중에서도 어렵게 가장 큰 매력을 꼽아보자면, 판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비 전승되면서 계속 쌓이고 변화한 적층* 예술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니 판소리에는 사람들의 공동체적인 희망과 바람, 그 시대의 시대상이 잘 담겨있죠. 이런 판소리의 매력이 저에게는 매일 새롭게 다가와요.
*적층 : 층층이 쌓이다
판소리를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판소리는 굉장히 밀도가 높은 음악이에요. 그래서 어려서 배울 때 문장, 단어, 더 작게 쪼개 들어가 음절 하나하나까지 미세하게 연습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이러한 작은 부분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 전체적인 정서가 형성되고 이야기에 전달력이 생기거든요. 판소리하면 주로 한의 정서를 떠올리시겠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정서를 담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해요. 그래서 늘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음악적, 연극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전통 판소리로 시작하셨을 텐데요. 창작 판소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판소리는 당시 유행하던 한국 전통음악의 성악을 다 포용해서 만들어진 음악이에요. 당연히 전통 판소리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충분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잖아요? 국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업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죠. 저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판소리로 새롭게 창작된 노래를 불러야 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내가 직접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알게 됐죠. 새로운 이야기 혹은 기존의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요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며 소리 하는 사람으로도 자부심을 느껴요.
판소리 쑛스토리 공연 모습(좌) 오버더떼창:문전본풀이 공연 모습(우) ⓒ나승열
최근까지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篇>을 공연하셨어요. 많은 이야기 중 프랑스 작가인 모파상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판소리 창작 작품을 고를 때 “이 이야기가 나를 움직이게 하나?” 그리고 “관객에게 유효한 이야기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요. 그런데 모파상*의 작품이 이 질문에 답을 주더라고요. 오래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짧은 글임에도 인간의 다면성을 잘 담고 있고, 우리의 본성을 깊게 파고드는 스토리의 힘이 전해지거든요. 이러한 점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기 드 모파상(1850-1893) :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실주의 단편 소설가
그동안 다양한 창작 판소리를 공연 해오셨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직접 극작하고 연출한 작품이라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제주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무속 신화를 판소리 합창극으로 만든 건데요. 어렸을 적 어른들이 “문지방 밟지 마라, 신이 노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한국 정서상 집안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 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공연이에요. 이 작품이 제 창작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시야를 넓혀줬기에 참 감사한 작품이에요.
요즘 취미로 노래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요. 판소리도 누구나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 선생님이셨던 작고하신 인간문화재 명창께서 판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불러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직접 불러보면 판소리에 대한 매력을 온몸으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요즘에는 정말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쉽게 접근하실 수 있으니까 용기 있게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박인혜의 꿈과 이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거창한 건 없어요. 단지 10년 후에도 제가 판소리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으면 좋겠고, 20년 후에도 공연하며 관객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역량을 유지하도록 저 스스로를 잘 갈고닦아야겠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관객들이 판소리를 더 많이 찾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지성종 사진가, 김성헌 사진가
영상 안지수(스튜디오 인디203)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판소리 매력이 정말 좋은거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기사도 부탁드립니다
매력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판소리 공연 지접 한 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