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감수성 업데이트하기

누군가에게 듣기 불편한 그 단어, 혹시 내가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일상 속 끊임없이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고, 요즘 세대들이 사용을 지양하는 다양한 표현을 살펴본다. 더불어 나의 언어 감수성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만들어지고, 유행하는 단어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된다. 언어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단어가 어느새 쓰임을 다해 사라지는가 하면, 하루가 다르게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하면서 사회적 약속이 되는 언어.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언어는 예전부터 쓰던 말이든 새로 생긴 말이든 편견이나 차별, 시대착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일까, 듣기 불편한 단어들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움직임도 생겼다.

‘O린이’ 사용하면 어린이들 뿔나요!

대표적인 신조어를 소개하자면 부동산, 주식, 골프 열풍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부린이, 주린이, 골린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린이의 ‘린’ 앞에 특정 분야를 뜻하는 음절을 붙여 만드는 이 단어는 그 분야를 잘 모르거나 미숙한 사람을 의미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22년 어린이날을 맞아 ‘O린이’의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 어린이가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 단어가 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O린이를 대신하는 표현으로는 (해당 분야) 초보자/입문자가 적당하다. 주식 초보자, 부동산 입문자,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마약 마케팅? 마약과의 전쟁 중!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약 OO’이다. 간판이며 메뉴판에 버젓이 적힌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마약 토스트를 보고 기함하는 것이다. 한 번 먹으면 중독될 만큼 맛있다는 의미에서 붙인 수식어지만, 음식을 넘어 생필품에까지 마구잡이로 사용되면서 슬쩍 겁이 난다. 마약이란 단어를 긍정적이고 친밀하게 사용하는 건 옳은 일은 아닐 터. 작년 특허청에서 마약 상표등록을 거절한다고 발표했고, 최근 마약으로 인한 사회 문제마저 커지고 있으니 마약 단어에 대한 내 감수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화이트닝, 이제 우리 헤어져

미(美)의 기준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중 희고 깨끗한 피부는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여겨왔다. 뷰티 제품에 화이트닝, 화이트, 미백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미국에서는 2020년도부터 피부를 밝게 해준다는 의미로 화이트를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제품명 변경을 압박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백을 강조하고 있지만 조금씩 백인 우월주의와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의미를 지우기 위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요즘처럼 자외선 지수가 높은 봄철에는 화이트닝 아니고 브라이트닝에 신경 써서 피부 미남, 미녀로 거듭나보자.

내가 장애인 차별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자주 사용하는 차별 언어가 있다. “짬뽕이냐, 짜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망설이기만 하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표현하는 ‘결정 장애’가 그것. 장애를 놀림거리로 사용해 비하하는 결정 장애보다는 결정 느림보, 우유부단하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뿐만 아니다. 신체장애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차별적 표현도 오래도록 사용해 왔다. 예를 들어 벙어리장갑은 옛날 사람들이 언어 장애인에게 갖고 있던 편견에서 비롯된 ‘벙어리’를 사용해 언어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에 ‘손모아장갑’이라고 부르자는 캠페인이 지속되고 있으며, 유사한 논리로 반팔 티셔츠는 반소매 티셔츠, 외발자전거는 외바퀴/한 바퀴 자전거 등으로 대체하는 추세이다.

가족 형태의 다양성 이해

드라마 속 범죄자는 으레 보육원 출신이거나, 할머니나 한 부모 손에 자란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들을 부르는 결손가정, 편부가정, 편모가정 단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손’은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돼서 불완전하다는 뜻을, ‘편’은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뜻을 가졌다. 즉 부모 양쪽이 모두 없는 가정은 완전하지 않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편견을 심어주는 말이다. 한부모가족, 비혼 동거 가구, 1인 가구 등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는 시대인 만큼 결손가정보다는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등으로 고쳐 쓰는 것이 부정적 시선을 배제한, 더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차별, 혐오 없는 표현의 자유

미처 몰랐거나 습관적으로 써왔던 잘못된 단어가 있다면 적절한 대체어로 바꿔나가는 일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문학계의 사례에서도 그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의 연작 「007」이 현대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만한 인종차별적 표현을 수정해 올 4월 중에 개정판을 낼 예정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시각에서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에서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운동으로 대폭 수정해 출간했던 영국 아동문학가 고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은 원작 표현을 그대로 살려 출간한다.

우리는 문학가는 아니지만, 편지와 서류와 같은 인쇄물이나 전화로 의사소통해온 예전과 달리 내 생각과 의견을 전할 다양한 매체를 가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며 적재적소에 던지는 ‘말맛’을 느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영어보다 한국어 사용은 어때?

1990년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는 언어 감수성이 뛰어난 세대이다. 출처와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 불합리하게 느끼게 하는 단어 사용을 지양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기업과 브랜드도 제품명, 광고 문구 선정에 주의를 기울이며 Z세대의 가치 소비에 부응하고자 한다.
국가 차원의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외래 용어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제공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다듬은 말’ 사이트(클릭)를 통해 다양한 대체어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1164호_트렌드이야기_04

임상범 (칼럼니스트)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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