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망적인 순간, 나는 웃는다
스마일 화가 이목을

지구상에서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뿐이다. 그렇다. 스마일은 인간의 강력한 능력이다. 스마일 화가라 불리는 이목을 화가는 ‘사진보다 더 실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극사실주의 대가로 알려졌다.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린 화가로 명성이 높지만, 그 이면에는 시련과 절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화가에게 눈은 세상을 보는 화업(畵業)의 창(窓)이다. 어릴 때 한쪽 눈을 실명한 뒤에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다른 쪽 눈마저 시력을 잃어가면서 인생의 변곡점을 맞는다. 그때 비로소 제대로 웃을 수 있었다고 말하며 절망 속에서도 스마일을 그리는 그의 웃음 철학을 들어보았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라는 말은 이목을 화가의 시그니처입니다. 슬픔과 웃음, 절망과 희망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이란 게, ‘힘들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요. 힘든 상태를 헤쳐 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가 필요해요. ‘그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입에 쓴 보약처럼 우리 마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슬픔과 웃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죠.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건 ‘희망을 향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절망은 포기를 먹고 자라는 잡초 같아요. 그러니 마음이라는 텃밭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자주 들여다보고 돌봐야 해요. 제아무리 힘겨워도 희망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한쪽 눈은 시력을 잃고, 다른 쪽 눈마저 좋지 않으신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시력을 잃었을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지요. 화가로서 내 삶뿐만 아니라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가 싶기도 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그러다 마음의 방향을 좀 달리해봤어요. “그래,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계속 꿈을 꿔보자!”라고 나에게 자주 말을 걸었지요. 그랬더니 몸은 여전히 극복하기 어렵지만, 마음은 결국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되더군요. 특별하게 일부러 막 용을 써가며 마음까지 힘들어지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온 것이라고 받아들였지요.

극사실주의 화법 대신 스마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찾으셨나요?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아기들이 보는 그림책이더군요. 시력을 잃어가는 몇 달 동안 서점에 가서 수백 권도 넘는 그림책을 살펴봤어요. 간혹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이지?”라고 오해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지요. 간절함은 절박함 속에서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어느 날 내가 본 그림책을 따라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평온함이 찾아오더라고요.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스마일 그림을 그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다른 사람보다 눈이 쉽게 피로해져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요. 언젠가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다루는 방법이 서툴러서 갈매기처럼 생긴 기호를 보냈지요.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웃음(^^)처럼 보이더군요. 그때 “쿵!” 하고 무언가에 받힌 느낌이었지요. ‘아, 그래! 기왕이면 웃으면 좋겠다. 그냥 웃자’라고 생각했고, 그게 처음 스마일 그림을 그린 계기였어요.

스마일마다 그 표정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스마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인가요?

‘스마일을 만난 뒤’부터 종일 그것만 그렸어요. 어느 날은 한 시간 동안 스마일 100개 정도를 그렸지요. 잠시 허리를 세우고 그림들을 봤더니 너무 놀랍더군요. 집중해서 그릴 때는 몰랐는데 100여 개의 스마일 그림, 그 표정이 저마다 달랐어요. 크게 웃는 스마일, 방긋한 스마일, 소심한 스마일, 새침한 스마일…. 그릴 때는 어떤 웃음이 담길지 몰라요. 색깔마다 다르고, 모양마다 다른 스마일이 그리고 난 뒤 태어나더군요. 문득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에는 결국 ‘나하고 스마일하고’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마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결국 타자와 나의 인연, 즉 관계 맺는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작업실에서 “고통은 하늘이 준 보약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소위 젊은 세대가 말하는 ‘갓명언’ 같은데요. 저 글귀에 대해 들려주세요.

살다 보면 간혹 자기암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시련과 고통 앞에서는 좌절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결국 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시력 상실이라는 시련 앞에서 가만히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스마일을 그리게 된 것도 ‘다 이런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어요. 그때 화방 벽면에다 쓴 글귀가 “고통은 하늘이 준 보약이다”였지요. “스마일 그 뒤에 내가 있다”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예요.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앞뒤 생각할 여유도 없이 계속 힘들어져요. 그럴 때 억지로라도 웃고 나면 마음이 좀 풀리거든요. 상처가 상처로만 남겨지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든, 가구를 만들든 나무를 다루는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나무옹이는 무늬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이지만,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잘려 나간 부분이자 가장 아픈 부분이기도 하지요. 인생의 아름다움은 나무의 옹이처럼, 아픔을 딛고 성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어른은 아닌 듯합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회나 국가에도 진짜 어른이 필요한 시기인데요.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진짜 어른의 기준은 책임을 지는 모습이지 않을까요. 어른도 아이들처럼 실수도 하고, 때론 잘못된 판단을 하지요. 그럴 때 반성할 줄 아는 태도도 어른의 모습이라고 봐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말과 행동, 생각과 마음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책임진다’라는 약속이거든요. 가정이나 사회, 국가도 어찌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른스럽게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쇠부리토크 독자들에게 힘을 주는 한마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어려운 환경에서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있는 현대제철 사우 여러분, 정말 노고가 크십니다. 여러분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대나무는 마디를 하나씩 만들면서 자라기 때문에 높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어요. 급하다고 한 번에 서너 마디를 만들 수가 없지요. 대나무처럼 우리 인생도 각각의 연령대에 맞는 ‘인생의 마디’가 있거든요. 내 인생의 마디는 어디쯤 와 있는지 꼭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보다’라는 어원에서 온 봄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영상 정성한(WITHENM)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웃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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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가가 나락을 쳐도 항상 하늘은 보며 웃는다. 언젠가는 오르겟지 . 항상 생각하고 웃지요. 내일은 오늘보다 많이 웃을거다.
    멍때리며 웃기 실없어 보여도 잼 날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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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 댓글:

    웃는 그림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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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sc***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기사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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