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새해, 설날도 지났다. 떡국과 함께 또 한 살 먹으며 생각한다.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여기, 누구보다 힙하고 지혜로운 ‘K-할배, 할매’의 띵언으로 갓생 계획을 세워보자! 세뱃돈보다 든든하다.
쇼미더 지혜~ K-어르신 전성시대
‘꼰대’보다 존재감이 없었다. 이 할배, 할매들 말이다. 78세 할배 오영수, 75세 할매 윤여정은 지금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윤여정은 55년 연기 내공으로 노바디가 되어 미국으로 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오일남 역할을 맡은 오영수는 ‘깐부 할아버지’로 골든글로브에서 텔레비전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1963년 극단 생활을 시작한 이후 60년 가까이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았다. 이 원로 배우들은 월드 클래스(월클) 인생 전성기를 맞은 당당한 현역이다.
이들의 하루하루는 슬기롭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먼저 듣고 배운다. 이들의 말은 구구절절 자기 자랑 늘어놓는 ‘라떼’ 잔소리가 아니다. 호통치지 않고 스며드는 띵언이다. 이들이 담담하게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헤아릴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캡처
‘골든글로브 시상식’ 홈페이지 캡처
이기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이들은 세계가 먼저 알아봤다. 오스카 여우주연상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나는 경쟁은 믿지 않는다”로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훌륭한 연기를 봤던 글렌 클로즈를 이길 수 있겠는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각자가 승자다. 오늘 이 자리에 그냥 운이 좀 더 좋아 서 있는 것 같다.”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영수도 다르지 않다. “<오징어 게임>에 사람들이 몰입하는 이유는 단 한 사람만 승자가 되는 세계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1등이 아니면 존재하면 안 되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는 이긴 것이다. 다 승자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갖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승자가 아닐까 싶다.” 이들은 최고가 아니라 최중(가장 귀하고 중요함)을 지향했다.
서로 존중하며 싸우자! 우린 깐부잖아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고 우리는 서로 다르다며 어색해한다. 윤여정은 꼰대 마인드를 거부한다.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이 있다.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된 거지.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이야.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는 평등한 친구가 되길 권한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게 깐부(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하던 짝꿍을 뜻하는 우리말) 정신이다. 부모와 자식 간 갈등, 정치적인 갈등, 남녀 갈등, 이런 갈등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것 같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깐부 정신’이 필요하다.”
어른의 품격은 겸손함이지
아는 척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본다. 윤식당을 왜 그렇게 열심히 했냐는 질문에 “못하는 거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잘은 못해도 음식이 뜨끈뜨끈할 때 나가면 웬만큼 맛있다는 건 알거든. 칼에 베이고, 불에 데고, 온몸이 상처야. 감사하게도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봤어요. 그러니 노력했지. 알고 보면 사람들도 내가 안 예쁘니까 멋지다고 하는 거잖아.” 겸손함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윤여정은 치열하고 쿨하기까지 하다.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를 거절하고 조용히 연극판으로 돌아간 오영수는 공익광고는 하고 싶다며 “인생이 그런 것 같다. 크든 작든 많이 받은 삶, 이제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될 수 있으면 되돌려주자 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전한다.
tvN <윤식당> 캡처
묵묵히, 하지만 열심히 살아
tvN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은 “예순을 넘어도 인생 몰라. 나도 67세가 처음이야. 처음 살아보는 오늘, 하루하루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세요. 첫 하루를 느끼며 살아보세요”라며 시작하는 자들의 성실함을 강조한다. “잠도 안 자고 대본을 닳도록 보고 또 봐요. 집에 와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해요. 오늘 미션을 내가 잘 끝냈구나. 그럴 때 행복해요.”
오영수는 “내가 <오징어 게임>을 만난 것도 묵묵히 제 몫을 해오며 걸어온 것에 대한 하나의 보답인 것 같다”며 자신이 평행봉 사나이임을 밝혔다. 그는 10대 때부터 60년 넘게 평행봉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20분이면 집에서 나와 20분을 걸어 남한산성 초입에 도착한 다음 평행봉을 50개 한다. 늘 새로운 하루 속 성실한 하나 덕분에 그들은 성공한 게 아닐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그런데 그 서러움은 우리가 같이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 언제나 최고로 노력하고, 다 같이 중간이 되었으면 하는 윤여정의 속마음은 무뚝뚝해 보이는 겉과 달리 깊이 들여다볼수록 다정하다. 오영수도 다르지 않다. “산 속에서 꽃을 본 후 50대까지는 꺾어가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대로 놓고 온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보는 거다. 좋은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있는 자체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래 볼수록 멋진 ‘찐어른’의 모습 속에서 하루하루를 꾸준히 살아온 성실과 다정함을 배우기 바란다. 우리도 여든에 빛날 수 있다. 아니 이런 삶의 태도라면 그 과정 자체로 빛날 것이다. 그때 인생은 아름답다.
MBC <놀면 뭐하니> 캡처
글 배수은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영화 <미나리> 스틸 컷,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틸 컷, 해당 프로그램 캡처
건강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따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