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위드코로나, 잃어버렸던 일상을 조심스레 찾아가는 듯하다. 게다가 지금은 소중한 사람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한잔하고 싶은 만추(晩秋)가 아닌가! 월드클래스 바텐더 임병진의 칵테일 한잔이 움츠렸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가 춤을 추듯 셰킷셰킷 완성한 칵테일을 한 모금 음미하자 생기가 감돈다.
저마다 아름답고 개성 있는 라벨을 몸에 두르고 반짝이는 술병들을 등진 채 때로는 격조 있게, 때로는 현란하게 몸을 움직여 한잔 술을 내어주는 사람들. (바)텐더 ‘Tender’의 어원인 ‘Tend’는 ‘가게를 돌보고 관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바텐더는 술을 만드는 사람이자 바를 돌보고 관리하는 총책임자에 가깝다. 바텐더 임병진 또한 바(Bar)라는 세계의 기획자로서 새로운 지형도를 독보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꾸준하고 치밀하게, 빛나는 상상력과 소울(Soul)로!
서촌에만 바 ‘참’과 ‘뽐’, 두 공간을 여셨는데요. 특별히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가 있을까요?
내자동이라는 동네를 전부터 좋아했어요. 우선 집을 구하고, 가게 자리를 같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자리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내자동 근처를 무작정 걷다가 지금의 ‘참’ 자리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서촌 한가운데 자리하게 된 셈이죠. ‘뽐’은 ‘참’과 3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요. ‘참’이 바텐더 자리를 중심으로 한 조금 더 내밀한 공간이라면, 이곳(‘뽐’)은 보시다시피 손님들끼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더 늘렸어요.
‘참’과 ‘뽐’, 둘 다 한 글자로 된 이름이라 기억하기 쉬운 것 같아요. 직관적이면서도 인상적이라고 할까요. 임병진 바텐더만의 네이밍 방식인가요?
엄청 계획적이거나 치밀한 사람은 아니라서요.(웃음) ‘참’은 ‘참나무’의 ‘참’이에요. 공간이 우드 톤이었고, 내부 가구와 마감에 모두 참나무를 이용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우스갯소리로 자작나무로 만들었으면 ‘자작’이었을 거라는 말을 해요.(웃음) ‘뽐’에서는 과일을 이용한 술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과일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과’의 프랑스어인 ‘뽐’을 사용했어요. 브랜딩 측면에서 이름을 고려하거나 이름을 먼저 짓고 공간을 기획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죠.
바텐더 하면 떠올리는 고정적인 역할과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보통은 바텐더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죠.
바텐더라는 직업의 정체성은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복잡한 것 같아요. 게임 캐릭터를 키울 때도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두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음료 자체에 중심을 두고 생각해보면, 셰프들이 다양한 불을 사용하듯 바텐더는 다양한 얼음을 사용해요. 셰프들이 넓은 불, 좁은 불, 센 불을 이용해 요리하는 것처럼 큰 얼음, 작은 얼음, 영하 10℃의 얼음, 영하 20℃의 얼음 등을 사용해서 차별화된 재미있는 맛을 만들어내죠. 이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바텐더라고 생각해요. 또 손님을 위한 서비스를 충실히 해야 하죠. 음료에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뉴판이 참 예쁜데요. ‘참’은 마치 앨범처럼 메뉴판에 1집, 2집, 3집이라는 이름을 붙이셨잖아요? 반응도 무척 좋았고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 때 그 흐름을 생각해보면, 1집은 대중적인 것에 포커스를 두고 2집 때에는 1집에서 성공한 부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죠. 그리고 3집쯤 되면 ‘나도 아티스틱한 것, 내 색을 내보겠어!’ 태도가 많이 보이는 듯해요.(웃음) 다른 걸 하고 싶은 거죠. 그 흐름을 차용해봤어요. 1집 메뉴판은 대중의 공감대 형성에 중점을 뒀고, 2집은 그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들에 집중했죠. 3집은 새로운 것과 공감의 키워드를 강조했어요. 메뉴 카테고리를 기분(무드)에 따라 나누었죠.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익숙한 것을 하고 싶을 때, 기분이 상쾌해지고 싶을 때 등으로 나누었어요. 4집은 ‘참’이라는 자체 즉, 나무를 주제로 나이테를 표현하는 메뉴들을 주로 소개했고요. 이제 5집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머리 빠지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여요. 그래서인지 임병진 바텐더가 만드는 바는 그 이상의 감각을 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할까, 그런 생각으로 브랜딩을 하진 않아요. 우리가 재밌는 것을 하고 싶고,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을 손님들에게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은 거죠. 인스타그램 관리도 잘 못해요. 브랜딩에 엄청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세계의 바 트렌드를 접목해서 우리가 무엇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함께 바를 만들어가는 동료나 멘토가 있으신가요?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동료들이 있어요. 각자의 가치관도, 생각이나 색깔도 모두 달라요. 그들이 가진 흥미와 장점,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과 ‘뽐’이죠.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각각 장단점이 다르잖아요. 그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거죠.
음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국내의 다양한 전통주나 지역주를 소개하고 활용하는 바텐더로 잘 알려져 있어요.
해외의 수많은 술을 공부하는데, 정작 한국 술들을 잘 모르는 게 창피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한국 술을 공부하게 됐어요. 최소한 외국 바텐더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우리나라 술 문화에는 이런 게 있고, 이렇게 즐기면 된다고 자신 있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어요. 우리나라 술이 정말 다양하고 멋지다는 걸 알게 됐죠. 제가 우리나라 술을 대표해서 알리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참’의 중요한 숨겨진 키워드는 ‘공감’인데요.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서비스와 음료를 제공할 생각이에요. 어떤 지역의 특산품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술이라고 소개하면 손님들이 더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이어서 ‘뽐’의 주요 키워드인 ‘팜투바(Farm to Bar)’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소비자들이 내가 먹는 식재료가 얼마나 신선하고 투명하게 생산돼서 오는지 궁금해하는 시대잖아요. 파인 다이닝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된 거라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선택한 식재료들을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한 키워드예요. 팜투바에는 여러 형태가 있어요. 제 경우에는 지역마다 유명한 특산물을 보러 직접 찾아가서 생산자가 어떤 가치관으로 이 상품을 생산하는지 확인하고, 지역의 특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봐요. 재료를 찾을 때마다 직접 생산지에 가서, 생산자랑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이죠. 팜투바는 제로웨이스트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직접 생산자에게 농작물을 가져오는 만큼 그 재료를 남김없이 써낼 방법을 더 고민하게 되니까요.
코로나19 이후로 술을 즐기는 문화도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음료(술)로 인한 중요한 사건사고가 많았죠. 필록세라 같은 포도나무 진드기가 유행하면서 포도나무가 멸종할 뻔한 적이 있어요. 그로 인해 브랜디가 유행하던 주류 시장이 위스키로 넘어가게 됐고요. 1900년대 초반 미국 금주령이 가져온 술과 바 문화의 변화처럼, 코로나19도 10년, 50년, 100년이 지난 후에 회자되는 시기가 될 것 같아요. 부정적인 현상도 많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보자면 낮에 술을 마시는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낮에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해지고 개방적인 편이 됐죠. 이탈리아나 그리스 해안에서는 낮에 스파클링 와인 등을 즐기는 것에 이미 익숙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바를 운영하는 것 외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취미가 있나요?
음료를 공부하거나 새로운 것을 생각해보는 것 외에는 사실 그다지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이걸 좋아해서 굳이 다른 취미를 찾는 것도 이상한 것 같고요.(웃음) 이제는 그냥 일이 곧 취미라고 인정하고 있어요. 취일합체라고 하죠.
마지막으로 임병진 바텐더님의 새로운 목표와 꿈 그리고 꿈꾸고 있는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능력이 부족하지만, 10년 후에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느낌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로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야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지고 고유의 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것일지는 아직 추상적인 느낌이라 계속 노력해가는 중이고요. 전기만 들어오고 수도만 들어오면, 산 중턱에 오픈할 수도 있어요.(웃음)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ChadPark(wavefilm)
영상 정유라(wavefilm)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블랙러시안 한잔 주세요~~~^^
멋지네요
묘한 매력이 느껴지네요~^^
종일이기사만 잃엇는데 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