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가 새겨진 ‘대한민국 명장’. 뜨거운 철과 불꽃같이 만난 지 38년, 이광택 사우는 마침내 숙련기술인 최고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구하며 달려온 결실이다. 정년퇴임을 코앞에 두고 이룬 쾌거이기에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는 당진제철소 철근압연부 이광택 사우를 만났다.
그에게 철은 숙명이었고, 철강인은 천직이었다. 1984년 철강회사에 입사해 용암 같은 불과 단단한 철을 친구 삼아 지금껏 달려왔고 결국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누구나 장인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 길은 멀고 험난하다. ‘묵묵한 한길 인생’은 조금씩 인정받아 2008년 국가품질명장, 2018년 우수숙련기술자, 2020년 충청남도명장에 선정됐으며,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과 충남교육감상 등을 수상했다. 나아가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이자 선배로서 노하우를 전수하며 후배 양성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누가 뭐래도 불과 씨름하는 현장에서 가장 행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년퇴임을 몇 달 앞두고 맺은 결실로 그의 마음은 퇴임이라는 아쉬움, 명장이 된 기쁨,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이 바쁘게 교차하는 중이다.
Q 금속재료분야 소성가공직종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셨습니다. 숙련기술인의 최고 영예로 불리는 ‘대한민국명장’이 되신 소감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말 기쁘지요. 대한민국명장은 숙련기술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니까요. 제아무리 최고라 자부해도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또 다르지요. 그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Q 코로나19 시국인 만큼 시상식이 축소됐다고 들었어요. 살짝 서운하셨겠어요.(웃음)
아무래도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웃음) 어쨌든 이전 두 번의 도전에 실패하고 삼수 만에 성공한 터였고, 무엇보다 아내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소식을 듣고서 눈시울을 붉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좀 덤덤한 편이었는데 가족과 회사 동료 등 주변의 환호가 커서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Q 당진제철소 철근압연공장의 산증인이라고 들었습니다.
1994년에 입사해 공장 터를 닦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했지요. 이번에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면서 새삼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 철근압연공장은 제 손으로 직접 시공, 가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기술 개발로 공장 캐파(공장 생산 능력) 연 100만 톤 대비 25% 이상을 생산하고 있지요.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 1750억 원 이상의 매출증대를 가져온 것입니다.
Q 그간 압연공정, 압연패스스케줄, 압연롤가공 부분에서 8개의 특허, 1개의 실용신안, 디자인 1건을 등록하셨습니다.
저의 핵심 보유기술은 패스스케줄 개발입니다. 관련 기술 개발로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해 연 25만 톤 증산과 연 7억 원 원가절감을 이루었지요. 또한 철근압연 템프코어 냉각기술 개발을 통해 불량품 생산을 방지하고 생산 강종의 확대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Q 정말 많은 활약을 펼치셨는데요, 많은 성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012년 4월에 ‘조압연 카리버’를 개발한 것입니다. 처음 설비 도입 때 적용한 카리버레스 타입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롤 마모로 인해 제품 형상이 변하고 압연 사고의 원인이 됐습니다. 이에 1~8번 스탠드 카리버를 개발해서 앞서 말씀드렸듯 생산성을 25%까지 대폭 증가시킨 것이죠.
Q 출퇴근만으로도 빠듯한 회사 생활 속에서 정말 큰일을 해오셨어요. 비결과 노하우가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저는 제가 불편하면 못 참는 성격입니다.(웃음) 일을 하다 힘든 문제가 생길 때 바로바로 해결하면 좋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일단 일하는 당사자가 불편하고, 무엇보다 현장 안전에 위험 요인이 됩니다. 그걸 해결하면 안전과 함께 생산성도 좋아지고 원가도 절감되니 일석삼조지요. 또 하나는 수첩입니다. 늘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불편한 사항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하고 정리해 현장 개선으로 연결합니다. 후배들에게도 자주 조언하는 저만의 팁입니다.
Q 그렇게 하기까지 특별한 계기나 원동력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안전이었습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요. 불편한 점들은 꼼꼼히 메모한 뒤 바로바로 해결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제 경우 그런 것들이 세월과 함께 노하우로 쌓이면서 많은 특허를 낼 수 있었고 명장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후배들을 위해 압연기술 서적만 6권을 발간하고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서 중소기업이나 학교에서 지도를 하는 등 멘토링, 청소년 진로지도에도 앞장서고 계십니다. 후배 양성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길에는 지름길과 에움길이 있습니다. 누구나 선배들이 닦아놓은 매끈한 도로를 달리면 좋겠지만 그 도로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에움길이라도 가면서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술과 노하우 전수겠죠. 아무리 좋고 빛나는 기술이라도 고려청자처럼 전승이 끊어진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제가 현장에서 38년간 익힌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면 후배들은 우리가 했던 실수를 하지 않고 보다 편안한 길을 가겠죠. 그런 사명감이 있습니다.
Q 명장 선정과 함께 정년퇴임을 앞두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궁금합니다.
국가 기반산업의 뿌리 기술인 금속재료 소성가공분야 조업기술의 표준화 및 기술 전수, 나눔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후진 양성과 소성가공분야 국가기관 연계 등을 통한 기술 전수 활동도 꾸준히 해야겠지요. 특히 공부를 좀 더 해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생각입니다.
Q 평소 후배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조언이 있나요?
보통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안전, 두 번째는 불편한 현장의 적극적 개선입니다. 기존의 시스템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일하기 불편한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앞서 말씀드린 현장의 안전, 생산성 향상은 물론이고 다른 부수적인 부분들도 함께 좋아집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를 꼭 명심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사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제철인, 아이언맨입니다.(웃음) 아이언맨답게 우리 모두 좀 더 강인한 정신으로 자기 계발에 투자, 본인과 회사가 모두 발전하며 윈윈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대진(지니에이전시)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