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선으로 시간을 기록하는 일
인천공장 대형제강부 강민규 사우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이며 또 다른 세계를 응시하는 창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사진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과 삶의 윤활제가 되었다. 그런 덕에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즐겁게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인천공장 대형제강부 강민규 사우를 만났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업무 시간을 마치고 카메라 렌즈에 초점을 맞추고 피사체를 응시하는 시간. 오롯이 몰두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같은 장면을 수십 번 찍어도 언제나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도 사진의 더 없는 매력이었다. 우연히 시작한 취미였지만 어느새 삶의 자연스런 일부가 되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나만의 시선으로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셔터를 누르곤 했다. 수천 수만의 프레임으로 붙잡아둔 시간이 쌓여 어느새 정년을 앞두고 있다. 사진의 매력에 빠져 지낸 덕분에 오히려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활력이 되었다.

Q.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대형제강부에서 천장크레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1986년 4월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36년차가 되었네요. 중기부로 들어와서 처음에는 덤프차를 운전했어요. 그러다가 28년 간 크레인을 운전했고 지금은 크레인을 관리하고 보수하고 크레인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는 업무를 8년째 하고 있습니다.

Q. 정년 퇴직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35년 넘게 같은 일을 꾸준히 해왔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그런 점에서 내가 몸담은 회사에 만족감이 큽니다. 평생직장이라 여기며 지난 시간 즐겁게 일했어요.

Q. 사진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입사 후 4년쯤 지났을 때, 회사에 사진 동호회가 만들어졌어요. 사내 동호회 중에 가장 오래 되었는데, 그때가 1990년이었어요.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창립 멤버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죠. 니콘 FM2 수동 카메라 한 대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땐 다들 없는 형편에 장비 욕심은 있어서 표준 렌즈만 가지고 다니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카메라 장비가 너무 비쌌거든요. 입사할 때 월급이 16만원 정도였는데 이런저런 촬영 장비를 구비하기는 쉽지 않았죠. 몇 년 지나 연차가 조금 쌓이고 급여가 오르면서 여유가 생겨 장비도 사고 그랬죠. 동호회 활동을 하며 1992년부터는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근로자예술제 대상도 받고 그랬어요.

Q. 주로 어떤 사진을 많이 찍으시나요?
아무래도 풍경 사진을 많이 찍게 되지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찍고 싶어요.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근로자의 모습을 담고 싶죠. 사진은 시간을 기록하는 거니까, 그건 어떻게 보면 일생을 남기고 기록하는 것이잖아요.

Q. 특별히 의미가 있던 기록 사진이 있나요?
장례식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상여가 나가는 모습 같은 거요. 한 사람의 죽음과 이별의 장면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어요. 주위에서 장례가 있으면 카메라를 가져가 사진을 찍어주곤 했죠. 눈이 내리는 날의 상여.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 인생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고요. 누군가는 왜 그런 사진을 찍냐고 했지만 유족들이 좋아해요.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시간을 찍어서 영상으로 만들어서 주면 대부분 감동해서 울어요. 돌아가실 때 울고 장례 치를 때 울고 사진 받을 때 울고. 세 번 우는 거죠.

Q. 사진으로 봉사를 하시는 거군요?
그런 셈이네요. 아무도 찍어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지만 제가 찍어서 선물로 드리면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카메라 프레임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그림이 있거든요.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장면이죠. 그런 게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가족들이 좋아하면 저도 뿌듯하고 사진을 찍는 보람이 생기죠. 벌써 100번도 넘게 찍어 준 것 같아요. 저는 누구든 제 사진이 필요하다면 다 줍니다. 저작권 같은 것에 예민하게 굴지 않아요. 특히 미술하는 사람들이 원할 때가 있는데 대가를 받지 않고 다 줍니다.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잖아요. (웃음)

Q. 취미 때문에 가족들에게 혹시 소홀하게 되진 않나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해요. 내 입장에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요.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출사를 평일에도 나가고 주말에도 나가고 그랬어요. 주말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나갔어요.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게 아니라 바람을 쐬고 경치를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나가죠. 그러다 보니 집에서 크게 반대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제가 장비를 산다고 낭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Q. 취미가 회사 생활에는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근무 시간에는 늘 긴장의 연속이죠. 또 작업 환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고요. 아무래도 먼지와 소음, 가스 이런 것들에 많이 노출돼 있으니까요. 이런 곳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북성포구 저녁노을이라도 찍고 하면 하루의 느낌이 달라지곤 했어요. 뭔가 후련하고 확 터지는 느낌이랄까요. 우리 선배들은 특별한 취미도 없고 일 끝나면 술이나 한 잔 하거나 집에 가서 자거나 그랬어요. 그러다 퇴직하면 아무 것도 할 줄도 모른 채 늙어가죠.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취미를 가지라고 권해요. 우리 회사 동호회가 한 20여 개 됩니다. 이것저것 해보고 두세 가지 퇴직할 때까지 취미를 가지면 일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요. 물론 제 생각에는 사진이 가장 좋지요. 그래서 많이 추천합니다.

Q. 다른 취미도 있으신가요?
패러글라이딩도 10년 이상 했어요. 한창 패러글라이딩 붐이 일 무렵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특기를 살려서 같은 특전사 출신들끼리 우리도 뭔가 만들어보자 했지요. 퇴직하신 분과 제가 둘이서 기초교육을 받고 시작해서 5~6년 끌고 갔고요, 후배 동호회원들이 더 배워서 국제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그랬어요. 지금도 활동 중입니다.

Q. 장비 값이 만만치 않게 들 거 같은데, 어떤 카메라를 주로 쓰나요?
다른 취미도 그렇지만 사진이 은근히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렌즈도 비싼 건 몇백만원씩 하니까. 그런데 장비 산다고 집에 있는 돈 갖다 쓰고 그러진 않았어요. 지금 니콘 D800E를 주로 쓰는데, 이것도 제가 틈틈이 모은 용돈으로 샀어요.

Q. 드론 촬영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사진을 하면서 드론은 언젠가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봤는데 다른 세상 사진 같았어요. 항상 내 눈 높이에서만 풍경을 보다가 하늘에서 보니 완전히 다른 거죠. 패러글라이딩 할 때 풍경을 보면 정말이지 놀라워요. 새처럼 나는 기분. 드론 사진이 그런 기분이에요. 너무 멋있어요. 그래서 거금을 들여 장비를 하나 샀는데 외국 여행 가서 그만 바다에 빠뜨려 잃어버렸어요. 아내에게는 고장 나서 애프터서비스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장비를 또 샀지요. 국내에서 드론을 많이 찍을 수 있는 여건은 안 되더군요. 위험해요. 그런데 외국여행 갈 땐 꼭 가지고 갑니다.

Q. 자격증도 필요하지 않나요?
드론 촬영을 하려면 이제 자격증이 필요해요. 지금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필기는 붙었고 실기는 한 번 떨어졌는데 이번엔 꼭 붙어야죠. 젊은 사람들은 20시간 기본만 연습해도 잘 붙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잘 안 돼요. 시력 때문인지 15미터 전방 사방 2미터 착륙장에 착륙시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교관 과정까지는 하려고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Q. 앞으로 어떤 대상을 찍고 싶은가요?
사람 사진을 많이 찍어보고 싶어요. 일하는 모습이 자꾸 관심이 갑니다. 삶의 현장이지요.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시장이나 논밭에서 힘들게 일 하는 분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민망하지요. 그래도 그런 사진을 많이 찍어보고 싶습니다.

Q. 사진이 주는 매력, 묘미는 무엇인가요?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 찍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잘 안 되지요. 시흥 관곡지 연꽃을 찍으러 자주 갔는데 집에 와서 컴퓨터에서 보면 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러면 다음날 가서 그 꽃을 다르게 또 찍어 보죠. 그 다음에 또 가고, 이렇게 서너 번까지 찍고 그랬어요. 거기 다른 세계가 있더라고요.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세계. 렌즈로 보면 다른 세계가 있어요. 빛에 대한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빛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하는 고민도 하고요. 꼭 작품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즐긴다는 생각으로 찍습니다.

Q. 최근에 색소폰도 시작하셨다고요?
퇴직하면 고향에 가서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려고 하거든요. 일도 도와드리고 밥도 제 손으로 해드리려고 틈틈이 한식요리도 배우고 있어요. 시골 가면 다들 농사만 지을 줄 알지 변변한 문화 혜택이 없잖아요. 동네 어르신들 모아놓고 돼지고기 삶아 대접하면서 색소폰이라도 불며 봉사하고 싶은 게 저의 작은 꿈이라면 꿈입니다.

Q. 본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생활의 일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즐기려고 하죠. 한동안은 남을 가르쳐 보겠다고 강사 과정도 배워보고 고려대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강의도 듣고 했는데, 크게 남는 것은 없더라고요. 나이 들면 몸보다 입으로 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6~7년 쫓아다녔는데 요즘은 전 국민이 강사다 보니 쉽지 않아요. 저는 머리가 나쁜 게 참 다행이다 싶어요. (웃음) 만약 머리가 좋아서 공직이나 다른 직장 다녔다면 이렇게 즐기며 살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제가 50개국 여행을 했는데, 다른 직장이면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제가 현대제철에 다니니까 가능했던 일이죠. 회사 덕분에 감사하게도 그간 즐겁게 직장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쇠부리토크」 편집부
사진 촬영 김대진(지니에이전시)
취재_유하용(인천공장 기자)

  • 멋있으세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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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sc*** 댓글: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다음번 내용도 기대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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