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비의 <깡> 뮤직비디오 댓글을 보며 킥킥대고 있다면, 단톡방에 갠소¹하고 있던 짤을 투척하거나 카메라 앞에서 OO챌린지 도전 영상을 찍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밈’을 실천 중이다.
온라인에서 ‘밈’은 온라인에서 파급력을 가진 콘텐츠, 혹은 이를 생성 소비하는 행위 등으로 폭넓게 쓰인다. / 사진출처 셔터스톡
신기한 일이다. 20년 전 방영된 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가 10대들의 개그소재가 되고,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펭수는 핵사이다 발언에 힘입어 뜬금없이 30대 직장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밈(meme)’이라고 정의한다. 2030으로 대표되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 + Z세대)에게 ‘밈’은 친숙을 넘어 일상 같은 존재다. 용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재미있는 짤², 유행, 영상 등의 개념을 대입하면 한결 이해가 쉽다.
원래 ‘밈’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의 DNA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처럼 문화 역시 모방을 통해 계속해서 널리 퍼진다고 주장했다. 이때 문화가 전파되는 최소단위를 모방(Mimesis)과 유전자(Gene)란 단어를 조합해 ‘밈(meme)’으로 규정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밈’은 문화를 모방하고 복제하는 유전자란 뜻이지만 요즘은 온라인상에서 파급력을 가진 재미있는 콘텐츠를 통칭하는 개념, 혹은 이를 생성하고 즐기며 소비하는 행위 등으로 폭넓게 쓰인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인터넷 밈’이란 용어로 따로 구분 짓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신박한 짤을 만들어 공유하거나, 드립력³이 묻어난 댓글을 달거나, 각종 챌린지에 도전하는 방식 등으로 알게 모르게 특정한 문화를 퍼뜨리고 공유하며 ‘밈’을 일으키고 있다.
#밈일까 아닐까?
중독성 있는 ‘재미’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덕분에 캠페인’ 역시 ‘밈’이다. 공감을 얻고 퍼져나가는 재미나 문화 등이 모두 ‘밈’의 영역에 있어 딱 잘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볼 순 있다.
발매 3년 만에 1일 1깡 신드롬을 일으키며 역주행한 비의 ‘깡’은 밈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 사진 출처 유튜브
‘밈’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가수 비의 ‘깡’이다. 2017년 발매한 이 곡은 당시 과한 자의식이 묻어나는 의상, 부담스러운 안무 등을 이유로 비웃음만 산채 조용히 묻혔지만 한 여고생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이를 패러디하며 이슈가 됐다. 급기야 중독된 나머지 하루에 한 번씩 댓글을 찾아보러 온다는 ‘1일 1깡’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인데 여기에 각종 패러디물이 양산되면서 비의 ‘깡’은 각종 드립이 난무하는 네티즌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 결과 강제 전성기를 맞은 비는 요즘 새우깡 광고를 비롯해 각종 방송을 휩쓸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챌린지 열풍을 불러 일으킨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 사진 출처 유튜브 캡쳐
챌린지도 ‘밈’의 대표적인 형태다. 올 초 ‘아무노래’란 신곡을 발표한 지코는 챌린지 마케팅을 펼쳤다. 화사 등 동료들과 노래에 맞춰 안무를 선보인 뒤 자신들처럼 춤 춰 보길 권했던 것. 이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수많은 도전 영상들이 붐을 이뤘다.
영상이나 사진 외에 다른 형태의 밈도 얼마든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성격을 유형별로 나눈 MBTI 검사다. MBTI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오는가 하면, 친구들끼리 “너 MBTI가 뭐더라?” 묻고 답하며 대화하는 상황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왜 밈에 열광할까?
‘밈’의 인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발적으로 즐거움을 찾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익숙한 MZ세대의 특징이 큰 몫을 한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즐긴다. 쉽게 말해 박수치는 방청객이 아니라 앙상블일지라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다.
무한 생성 중인 루피짤
이런 특성은 자연히 온라인에서 내가 어떻게 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밈’이 탄생한다. 예전 같으면 비의 ‘깡’ 영상을 보는 데서 그치던 사람들이 어설플지언정 안무를 따라해 이를 영상으로 올리거나 센스 넘치는 댓글로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는 식이다. ‘깡’이 음원 발매 3년 만에 역주행 하게된 데는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밈으로 작용을 하느냐 마느냐의 가장 큰 관건은 해당 콘텐츠가 ‘놀 수 있는 판’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다.
#마케팅까지 쥐락펴락?
‘밈’의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보니 유통업계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밈’과 경제학이 합쳐진 ‘밈노믹스’란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인데 비가 새우깡 모델이 되자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파맛 첵스’ 출시 배경도 ‘밈’과 관련이 있다. 2004년 농심 켈로그는 ‘첵스 초코’ 홍보를 위해 온라인 투표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벤트 골자는 초코맛 첵스와 파맛 첵스 중 더 많은 표를 얻은 첵스를 만들겠다는 것. 하지만 속내는 초코맛 첵스를 강조하고자 한 주최측(?)의 의도와는 달리 파맛 첵스가 몰표를 얻는 이변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농심 켈로그는 ‘부정 투표’를 이유로 초코맛 체크를 우승시킨다. 이에 네티즌들이 무려 16년에 걸쳐 ‘파맛 첵스 출시’를 요청한 결과 ‘파맛 첵스’가 시중에 등장하게 된 것. 한편 가수 선미의 신곡 ‘보라빛 밤’을 활용해 흑미밥을 홍보하려던 CJ 제일제당과 자사 직원을 ‘깡’ 뮤직비디오 속 비로 등장시켜 ‘깨수깡’을 홍보하려던 롯데칠성음료는 무단으로 컨텐츠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네티즌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잘하면 약이지만 까딱하다가는 독이 되는 ‘밈 마케팅’의 속성을 드러내는 사례다.
소비자의 끈질긴 요구에 16년 만에 ‘파맛’ 첵스를 출시한 농심 켈로그 / 사진 출처 농심 켈로그
#밈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렇듯 밈은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즐겁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줬다. 단순히 웃고 즐길 수 있는 ‘밈’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할 때 적절한 패러디를 등장시킨다거나 공익적 가치에 챌린지를 끌어들이는 식으로 활용할 여지도 무궁무진하다. 코로나 19로 살신성인 중인 의료진들에게 존경과 자부심을 담아 엄지를 치켜 올린 뒤 사진과 동영상을 업로드 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좋은 예다.
댕댕콘 짤 만들러 가기 http://jjal.download/
개비스콘짤 만들러 가기 https://soonsaturday.tistory.com/27
글 쇠부리토크 편집부
갠소¹: 개인 소장의 줄임말
짤²: 인터넷 공간에서 돌고 도는 각종 자투치 이미지 파일, 그냥 사진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드립력³: 재치있는 말이나 농담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인 ‘드립’에 힘 ‘력(力)’을 합성한 단어
자발적인 즐거움 밈의 가치~
뭔가 낯설지만 파급력만큼은 큰 밈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