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육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중식계의 대부다. 그는 만 60살이 되던 해인 2015년 1월 호텔 중식당 셰프의 길을 벗어나 서교동의 후미진 길목에 중식당 ‘진진’을 오픈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도전이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여전히 인생 제2막마저 찬란히 빛내고 있다.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오직 맛과 서비스라는 기본으로 성공 신화를 수십 년째 이루고 있는 왕육성 셰프를 만났다.
서교동에 위치한 진진(津津)은 아버지의 고향 중국 톈진(天津)의 ‘진’과 마포의 옛 이름 양화진(楊花津)에서 ‘진’을 따온 이름이다. 거기에 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다는 의미의 ‘진진하다’의 뜻도 담겨 있다. 서교동의 후미진 골목에 ‘진진’을 열었을 때 아무리 왕육성이라 해도 과연 어느 정도 성공할지 의문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상권을 포기하고 권리금이 없는 장소를 물색한 도전도 그러했으며, 그 유명한 짜장면과 탕수육까지 제외시킨 한정된 메뉴에 심지어 오후에만 문을 열고 회원제 운영까지 표방했으니 성공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권리금이나 인테리어에 돈이 들지 않아 고급 중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을 수 있었으며 한정된 메뉴에 집중하면서 좋은 재료를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만들 수 있었다. 진진의 매력은 SNS를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고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느새 서교동에 총 4개의 진진을 운영 중에 있다.
그는 말한다. 맛과 서비스는 결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고객이 행복할 때 비로소 셰프도 행복할 수 있다고.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는 대신 하나하나 보완하고 개선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결과는 반드시 뒤따라옵니다. 지금도 매일 배우고 매일 발전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Q. 중식당 진진은 2015년 오픈 당시부터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떤 확신으로 이런 모험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호텔 중식당 생활을 28년 하면서 그동안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음식값이 비싸 대중이 접근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호텔 음식을 대중에게 낼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 마침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오랜 꿈을 실현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술도 전수하면서 대중에게도 기쁨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상권이나 인테리어, 메뉴에 대해 걱정하셨는데 저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재료로 가성비 좋은 음식만 제공한다면 요즘 같은 SNS 시대에 어디서든 고객이 찾아올 거라 믿었습니다. 결과는 과연 예상대로였죠.
Q. 셰프님에게 진진은 어떤 장소인지 궁금합니다.
처음 구상할 때 잘 되는 식당보다는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공간, 내 기술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공간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더 기대했던 것은 서교동에 출판사도 많고 문인, 음악인, 미술인이 많은데 그런 분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덕분에 저도 덩달아 공부도 좀 하면 더 좋고요. 그런데 주변 분들이 너무 큰 사랑을 주셔서 부응하다 보니 어느덧 점포가 4개나 됐네요. 지금도 강남은 물론이고 지방, 심지어 LA에서도 출점해 달라고 요청이 있지만 일단 나와 제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 아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은 서교동에서만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Q. 1986년 코리아나호텔의 중식당 시절부터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 철학으로 유명하셨는데요.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하나하나 보완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뿐입니다. 호텔 중식당을 맡을 무렵에 영업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고가에 접근성 모두 문제였죠. 너무 양이 많고 코스가 길어 가격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두세 명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죠. 양을 줄이고 코스도 7가지로 줄인 이른바 ‘세븐 코스’를 당시 1만3천원에 출시했는데, 주변 회사원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3개월 만에 하루 100개를 돌파하고 6개월 만에 200개 돌파할 정도로요. 주5일제 도입으로 주말 매출이 떨어졌을 때는 이전까지 7만원 넘게 받던 코스를 반값으로 줄였습니다. 어차피 임대료나 인건비는 그대로인데 공치느니 재료 값에 조금만 더 받자는 심정으로요. 그게 또 고객들의 발길을 움직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살피면서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셰프님의 요리 철학이 궁금합니다.
우선 당연히 제대로 된 재료만을 써야 합니다.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쓰는 건 기본이죠. 재료만 좋아도 요리는 50%는 성공입니다. 그다음에는 기법에 따라 맛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가장 나쁜 건 실력도 없으면서 재료도 안 좋은 것입니다. 저는 좋은 재료를 쓰기 위해 인테리어에 투자하지 않고 권리금이 끼어 있거나 임대료 비싼 장소를 다 배제했어요. 대신 거기서 절약한 값을 재료에 투자하고 가격을 낮추는 데 썼습니다. 또 몇 가지 메뉴만 집중하는 것도 좋은 요리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진진을 예로 들면 저는 우럭 찜을 늘 자신 있게 추천하는데, 무조건 활우럭을 구입해 피를 빼서 숙성시켜 만듭니다. 대량 구입하고 과정을 철저히 거치는 것 모두 메뉴를 한정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전복도 오직 바다에서 바로 건져 수족관을 거치지 않은 활전복만 씁니다. 그래야 살이 토실토실하고 생기도 살아 있죠. 수족관에 들어가면 생물이다 보니 생을 유지하려고 지방 등 영양 성분을 연소시켜 진이 빠지고 살이 마릅니다. 또 하나 언급하자면 많은 식당이 손님이 원하는 맛을 쫓아가지만 저는 현지 스타일로만 갑니다. 즉 우리 식당만의 맛을 만드는 것입니다.
Q. 50년 가까이 요리에 삶을 바쳤습니다. 셰프님께 요리란 무엇입니까.
사실은 너무 가난했고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에 일단은 생존의 도구였죠. 그게 솔직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를 행복하게 해주고 타인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를 통해 작으나마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자체가 굉장히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중식 셰프로 활동하는 후배와 제자들이 더 좋은 여건에서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어서 만족스럽고요. 이게 다 요리를 통해서 얻은 것이니 행복의 도구인 셈이죠.
Q. 성공을 꿈꾸고 준비하는 현대제철 사우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조금 전 말씀 드렸다시피 생계 때문에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고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말씀을 조금 하자면 저는 월급이나 대우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오직 기술만 배울 수 있으면 무조건 행복했습니다. 요리를 하나 배우면 그날은 최고의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오늘 하나 더 배웠으니 내 목표를 향한 길이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이죠. 그래서 저는 출근하는 게 유난히 즐거워 남들은 9시에 출근할 때 7시면 나가 닫힌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장 보는 선배님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 할 일을 부지런히 끝냈죠. 제가 맡은 바 임무를 빨리 처리해야 나머지 시간에 요리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이런 삶이 과연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행복하게 일하고 그 일에 빠져들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Q. 요즘 중식이 아주 인기인데요. 사우들에게 중식을 맛있게 즐기는 팁을 소개해주세요.
보통 ‘중식’ 하면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라고만 생각하시는데 범위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제가 하는 요리는 극히 일부 아마도 중식 전체의 100분의 1도 안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양하게 즐기되 어느 곳이건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를 드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중국 음식에 대한 통념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자신이 드시고 싶은 메뉴를 고르는데, 그러지 말고 그 식당에서 잘하는 메뉴를 드세요. 그렇게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중식의 매력에 푹 빠지시리라고 생각합니다.
Q. 또 어떤 도전을 하실 계획인가요?
성공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스스로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성공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곳곳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인정받으면서 저의 요리 철학을 군데군데 뿌리내리면 그때 성공했다고 감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목표랄까, 도전 과제라면 사실 늘 한 가지입니다. 제가 요리에 입문할 때 책에서 본 내용이 있습니다. 음식은 예방의학이라는 구절이었습니다. 1970년이 아닌가 싶은데, 굉장히 충격을 받고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지금 의사가 될 순 없지만, 제가 만든 음식으로 인해 사람들이 몸으로는 더 건강해지고 마음으로는 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유일한 목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영상 제작 ATO STUDIO 임상현
사진 촬영 NAME STUDIO 박현진
배워보고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