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산업혁명을 통과하며 과학과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서구 문명은 엄청난 철기 문명을 발전시켰다. 도구를 기준으로 역사를 구분할 경우 현대 인류는 여전히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

#철제 군함 네메시스호, 아편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대항해시대는 유럽에는 승리의 역사지만 아시아 입장에선 뼈아픈 침탈의 역사다. 아시아라는 ‘금광’을 발견한 서구인의 탐욕은 멈출 줄 몰랐으니 1840년 영국과 청국 사이에 벌어진 아편전쟁은 그 욕망의 결정판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강철을 대량생산하게 된 영국은 동인도 회사가 만든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호를 통해 아편 전쟁에서 승리했다. 당시 청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 몰래 청국으로 수출, 수많은 청국인들이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다. 이에 청국 정부가 아편을 몰수하고 아편 무역 금지 조치를 행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자 영국은 이를 명분으로 청국에 군대를 보낸다. 이것이 아편전쟁의 시작으로 이때 영국이 보낸 군함이 바로 네메시스호다.

청국 군대는 거칠 것 없이 중국 내륙으로 올라오는 네메시스호를 ‘악마의 배’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다.

전함 네메시스호는 길이 56m, 폭 8.8m의 작은 군함이었지만 증기기관을 이용해 매우 날렵하고 빨랐다. 무엇보다 나무 대신 강철만으로 만든, 한마디로 철갑을 두른 증기선이었다. 목선을 내세운 청국 해군은 산업혁명의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네메시스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네메시스호는 주장강과 창장강을 거슬러 오르며 청국 내륙 깊숙이 침투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결국 1842년 영국 함대의 갑판에서 남경 조약이 체결되며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난다. 이 조약으로 청국은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고 상해, 광동 등 5개 항구를 개방하게 된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떨어진 전투력, 식량 부족,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인 강철 제작기술과 증기기관이 탄생시킨 네메시스호 덕분이었다. 아편전쟁은 철을 가진 문명과 그렇지 못한 문명의 향후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철을 앞세운 서구 사회의 발달한 문명은 세계를 좌지우지했다.

1899년에 세워진 에펠탑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철의 아이콘이다.

#에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제 탑을 세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파리. 이 도시를 빛내는 상징물은 여럿이지만 에펠탑의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연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이 탑의 아버지는 프랑스의 공학자 구스타프 에펠. 그가 오늘까지 ‘철의 마법사’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제 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에펠탑은 금속공학과 건축학의 빛나는 합작품이다. 격자 구조로 철골을 엮어 만든 높이 300m의 철제 탑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도 화제였지만 목재나 콘크리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강철로만 만든 철제탑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구스타프 에펠은 국립중앙공예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이 철교를 연구하며 포르투갈과 프랑스 등지에 강철 다리를 놓았던 ‘강철 전문가’였다. 하지만 박람회를 위해 그가 내놓은 철제 탑 구상은 격렬한 찬반양론을 일으켰다. 당시로는 너무 파격적인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실현가능성 없는 황당한 헛소리라 여겼다. 한 수학자는 공사 중 200m 높이 정도에서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철탑의 무게를 지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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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내부에 놓인 구스타프 에펠의 흉상.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를 위해 정부가 주도한 공모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에펠의 철제 탑은 보란 듯이 완벽한 자태로 세상에 선을 보인다. 에펠탑은 만국박람회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후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에펠탑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에펠탑이 꼴 보기 싫어 매일 탑 안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모파상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레스토랑은 그에게 ‘그 빌어먹을 것’이 보이지 않는 파리의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마천루의 시대를 열다
1931년 미국 뉴욕에 철근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지상 102층, 높이 381m의 마천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현대판 바벨탑으로 불리며 마천루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 이보다 더 높은 빌딩들이 많지만 여전히 ‘마천루’ 하면 사람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릴 만큼 그 상징성은 굉장하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어진 이 아름다운 빌딩은 1970년 세계무역센터가 들어서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자리를 지켜왔으며 20세기 건축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문화계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매달려 헬리콥터와 싸우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으로 등장했다. 앤디 워홀은 1964년, 8시간 5분 내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 보여주는 영화 <엠파이어>를 찍기도 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은 마천루의 출생의 비밀은 바로 철근 콘크리트다.

현대식 마천루를 세우게 한 일등 공신은 바로 철근 콘크리트다. 뜻밖에도 이 철근 콘크리트를 개발한 사람은 원예가였던 프랑스의 조셉 모니에였다. 평소 도자기로 만든 화분이 툭하면 깨지는 것이 불만이었던 그는 화분을 만들 때 그 속에 철망을 넣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후 이 방법이 다양한 곳에 활용되다 건축 기술과 만나게 된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에 기반한 고층 빌딩들이 처음으로 들어선 도시는 사실 뉴욕이 아닌 시카고였다. 1871년 10월 대화재가 발생해 도심의 3분이 2가 폐허가 되자 시카고시는 불에 타지 않고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도시계획을 구상한 것이다. 이 모습은 이후 뉴욕의 모델이 되었다. 급속히 발전한 철강 기술을 바탕으로 1930년대 초반 뉴욕에는 트럼프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차례로 들어서며 오늘날 고층 빌딩 숲의 틀이 만들어졌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고대 바벨탑부터 현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까지 하늘 끝에 닿으려는 인간의 꿈은 변하지 않았으니 그 꿈은 ‘철’이라는 날개를 만나 계속 비상하고 있다.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