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산업혁명을 주도해 패권국에 오른 영국과 대륙횡단철도를 놓으며 발전을 시작한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철강 산업을 일으켜 인류 역사를 바꿔놓았다.

#아이언브리지, 산업혁명의 상징이 되다
영국의 공업 도시 버밍엄 인근 콜브룩데일의 세번강. 이곳에는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길이 42.7m의 ‘아이언브리지(Iron Bridge)’가 서 있다. 다리 이름은 대개 다리가 세워진 지역의 이름이나 세운 사람의 이름으로 짓는다. 하지만 이 다리는 이름 자체가 ‘철교’다. 1779년 세계 최초로 건설된 철교이자 전 세계 철의 역사에 길이 남을 혁신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다리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다리가 건설된 18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혁명의 본격화로 인해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언브리지는 물건을 실은 선박이 다리 아래로 다닐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설계되었다. 철교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이는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 강철이 발명되기 이전인 데다 다리는 돌이나 나무로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던 당시 사람들은 주철로 다리를 놓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흔쾌히 동의하지 못했다. 상상 속의 아이디어로 끝날 수도 있었던 아이언브리지가 현실화된 것은 영국의 제철업자 에이브러햄 다비 3세 덕분이다.

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문가 다비 가문의 일원인 그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로 코크스 용광로를 만든 에이브러헴 다비였다. 다비가 개발한 코크스 용광로는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본격적인 제철 산업을 일으켰다. 그의 아들 다비 2세는 철의 정련 과정을 더욱 발전시키고 증기 실린더의 원리를 처음 밝혀낸다.

영국의 세번강에 있는 세계 최초의 철교, 아이언브리지. ⓒShutterstock.com

산업혁명에 관한 한 영국 최고의 명문가라고 할 다비 가문의 3세는 세계 최고의 철교를 짓기 위해 자기 재산 3,200파운드를 흔쾌히 내놓았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철교 아이언브리지는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대교가 탄생하는 기술적, 문화적인 배경이 되었다.

#와트의 증기기관, 제철 산업을 발전시키다
흔히 증기기관의 발명자를 영국의 제임스 와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트머스에서 철물상을 하던 토머스 뉴커먼이라는 사람이 증기기관의 최초 발명자다. 그는 18세기 초 콘월 지방의 주석 광산에서 물을 뽑아내기 위해 실린더 펌프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했고, 10여 년 간의 실험 끝에 초보적인 수준의 증기기관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오늘날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발명자이자 ‘산업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와트가 뉴커먼의 발명을 발전시켜 실용 기술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 조선소를 경영하며 각종 공구를 제작하던 제임스 와트는 오랜 연구 끝에 뉴커먼의 증기기관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이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와트는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어 대규모 철강 산업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증기기관과 제철 산업의 발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때 영국에서 막 일어난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의 제철업, 금속공업, 기계공업 등 철과 관련한 각종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때 뉴커먼의 방식보다 5배나 높은 효율성을 갖게 된 증기기관이 등장하며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차례로 개발되는 등 대규모 철강, 기계 산업이 성장하게 된 것이다. 1865년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에서 일종의 철갑선인 세계 최초의 전함 ‘모니터’가 등장한 것도 증기기관의 영향이었다. 결국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철강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이로 인해 산업혁명이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으로 확산되는 데 도화선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대륙횡단철도가 개시한 철마의 시대
남북전쟁 발발 이듬해인 1862년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을 통해 서구 사회를 뒤흔들었다. 같은 해 링컨은 또 다른 큰일을 벌인다. 바로 대륙횡단철도 건설이다. 그때 이미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믿을 수 없는 발전을 이룩했지만 미국은 남과 북의 대립과 혼란 속에 있었다. 거의 1세기 전 영국이 아이언브리지를 개통하는 동안 미국은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망은 커녕 역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일 정도로 뒤처져있던 것이다.

이에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참 뜨겁던 1862년에 ‘퍼시픽 철도 법안’에 서명한다. 캘리포니아주 세크라멘토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사이를 잇는 철도 건설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 중 벌이기에는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 하지만 남북 전쟁이 미국의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듯 이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

1869년 양쪽에서 건설해온 철도가 프로몬터리에서 만나면서 철마가 미 대륙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Shutterstock.com

링컨의 철도 건설 사업은 전 세계 철도 발전에 큰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가 유럽 쪽 러시아와 극동 지방 러시아를 잇는 대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러시아 서북부 우랄산맥 동쪽 기슭에서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까지 7,416km를 연결하는 역사적인 공사였다. 미국, 러시아 못지않게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캐나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존 맥도널드 총리는 국가 통합에 철도 교통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881년 캐나디안 퍼시픽 철도 공사에 착수했다. 이후 캐나다는 앨버타, 매니코바 등의 평원을 농토로 가꾸며 미국과 유럽이 부럽지 않은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무모해 보였던 링컨의 시도는 전 세계 철도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후 인류는 대륙과 대륙을 편하게 넘나들게 되었다. 교통수단이 다양해진 지금도 철도는 지구촌 곳곳을 누빈다. 비행기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지구촌 시대의 서막을 연 것은 바로 철이었다.

「쇠부리토크」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