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 베뉴, 셀토스 등 콤팩트 SUV 열풍이 심상치 않다. 중형, 대형 등의 SUV도 인기다. 전 세계적인 SUV 열풍의 원인은 과연 무얼까?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SUV가 쏟아져 나온 때가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판매 승용차의 40.1%는 SUV였다. 올해는 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싹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비중이 커진 데는 콤팩트 SUV의 역할이 컸다. 작고 값싼 차로 여겨졌던 콤팩트 SUV가 달라진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엔트리라고 하기엔 호화로운 편의장비도 가득하고 쓰인 소재나 마감도 고급스럽다. 대표적인 모델이 현대차 코나와 베뉴, 그리고 ‘크기는 작지만 하이클래스’임을 내세운 기아차 셀토스다. 허투루 만든 구석이 없다. 중형 이상의 SUV에나 탑재됐던 편의사양을 전부 갖고 있다.
콤팩트 SUV가 견인하고 있는 SUV 열풍
SUV 열풍은 우리나라에만 부는 게 아니다. 전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를 조사해 발표하는 베스트셀링 카스 블로그(bestsellingcarsblog.com)는 2016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SUV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봤다.
첫 번째는 유가의 안정과 맞물린 미국 경제의 호황이다. SUV는 상대적으로 연비가 낮은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됐다. 또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세계 경기도 살아났다. 이 두 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각 제조사마다 SUV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기술 발전이다. 과거 SUV는 트럭을 바탕으로 만들어 승차감은 둘째고 어떻게든 목적지에 가는 게 첫 번째 목표인 운송수단이었다. 그런 까닭에 커다란 타이어를 끼우고 차 바닥을 높게 들어올렸다. 또 네 바퀴에 구동력을 모두 전달해 일부 바퀴가 헛도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접지력을 발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SUV들은 곧잘 세단에 버금가는 승차감을 보여준다.
최근 출시되는 콤팩트 SUV의 승차감은 세단이 부럽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가장 크게 변화한 부품은 섀시다. 과거 SUV는 대부분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방식을 썼다. 거친 오프로드를 달릴 때 비틀어지기 쉬운 하체를 강하게 만들어 주행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 방식은 매우 무거울 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 확보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최근 SUV는 대부분 모노코크(Monocoque) 방식이다. 모노코크는 단단한 보디 셸(Body Shell)이 외피 역할과 뼈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덕분에 프레임을 따로 제작할 필요도 없고 무게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게다가 프레임이 차지했던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늘어난 면적만큼 시트와 트렁크를 더욱더 여유롭게 뽖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SUV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집에 대한 소유의 개념이 옅어지는 지금,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는 자동차만 한 게 없다. 더 이상 SUV는 ‘짐차’가 아니다. 기술과 사회의 발달이 ‘SUV=고급차’라는 공식을 성립하게 만들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는 SUV도 고급차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유가 안정,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이 SUV 열풍의 근원
사회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일 게 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족 구성원이 적어진다는 것. 싱글족, 비혼, 욜로, 딩크란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SUV의 필요성이 더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책임질 가족이 줄었다고 즐거움을 찾는 것도 줄어들진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가 화두가 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서핑, 사이클, 캠핑 등 여가를 즐기는 방법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발전한다. 이런 다양한 레저 활동의 급성장도 SUV의 폭발적 인기에 한몫 단단히 했다. 무엇보다 뒷좌석을 접으면 나타나는 넓은 트렁크가 일등공신이다. 각종 장비를 실을 수 있고 ‘차박’도 할 수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SUV의 매력은 여전하다. 유모차를 쉽게 넣을 수 있는 넓은 트렁크, 카 시트에 아이를 태울 때 허리가 아프지 않을 만큼 높은 2열, 아이를 뒤에 태우고 운전할 때 상대적으로 운전이 쉬운 껑충한 운전석 시트 포지션 등 다른 장르의 차로는 튜닝을 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SUV만의 장점이 가득하다.
코나는 가솔린, 디젤, 일렉트릭에 이어 하이브리드까지 갖췄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이런 시장 분위기에 발맞춰 다양한 SUV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 내놓은 팰리세이드와 최근 선보인 베뉴가 좋은 예다. 팰리세이드는 그동안의 현대차 SUV 중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고급스럽다. 출시 전부터 2만 대 이상의 사전 계약을 기록하며 시장의 지대한 관심을 받더니 아직까지 대기가 한참이다. 사실 현대차의 고급차 제작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대형 세단을 만들며 쌓은 노하우를 SUV에 고스란히 이식한 만큼 고급 대형 SUV는 현대차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2017년 뉴욕 오토쇼에서 선보인 GV80 콘셉트카는 전례 없는 시장의 기대를 끌어 모았다. GV80은 뉴욕에서 소개된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대거 활용했다. 네 개의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 그리고 크레스트 그릴을 넣어 전형적인 제네시스의 얼굴을 가졌다. 또 여느 SUV와 달리 보닛을 길게 빼고 트렁크 리드를 짧게 빼 스포티한 형태를 강조했다. 올 10월 출시 예정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콤팩트 SUV
가장 최근 현대차에 합류한 SUV인 베뉴는 팰리세이드나 GV80과는 완전히 다른 콤팩트 SUV다. 크기는 작지만 겉에서 봤을 때는 단단해 보이도록 디자인했으며 콘셉트와 스타일링을 주로 ‘싱글족’을 위해 맞췄다. 1열 승객 위주로 공간을 구성하고 반려동물 전용 카 시트와 오토 캠핑을 위한 공기주입식 에어 카 텐트까지 준비하는 등 밀레니얼 세대의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콤펙트 SUV로 만든 것이다.
베뉴는 지난 4월 뉴욕 오토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눈에 띄는 것은 플럭스(FLUX)와 베뉴 전용 튜익스(TUIX)옵션 패키지다. 플럭스는 현대자동차가 처음 선보이는 트림의 한 종류다. 전용 라디에이터 그릴과 리어 스키드 플레이트를 붙이고 C필러 뱃지를 제공해 기본 트림과 차별화된 디자인을 갖는다. 튜익스 옵션 패키지는 총 여섯 가지다.
먼저 적외선 무릎 워머 패키지는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편의사양이다. 운전대 하단의 적외선 복사열 장치가 히터 바람 없이도 운전자의 허벅지와 무릎을 따뜻하게 해준다. 두 번째는 최첨단 사물인터넷 패키지다. 운전자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윈도우, 아웃사이드 미러, 선루프 등의 편의장치를 통합 제어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차에 꼭 맞는 3D 매트인 프로텍션 매트 패키지, 인테리어의 고급감을 끌어올리는 컨비니언스 패키지, 프리미엄 스피커 패키지, 디자인 휠 패키지 등이 마련되었다.
베뉴는 싱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조준한 새로운 콤팩트 SUV다.
유가 안정, 자동차 구입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분위기 변화 등으로 비롯된 SUV 열풍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인가족 증가와 함께 콤팩트 SUV의 인기도 한동안 상종가를 기록할 것이다. 크고 작은 세단이 지배하던 20세기에 지금처럼 SUV가 인기를 얻어 세단의 지위를 위협하리라고 내다본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마찬가지로 이 전 세계적인 SUV 열풍이 언제 식을지 속단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글 이재림(자동차 칼럼니스트, 전 <모터트렌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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